아무 해도 끼치지 않는 암소
주민현
파티에 초대된 여러분
모두 모이세요, 나는 말했구요,
맛있겠다, 보자마자 소리친 것은 당신이었어요.
그림같이 멋진 암소 한 마리가 우리 집에 있었는데요,
칼을 들고 설친 것은 당신이었구요,
뒤에서 프라이팬으로 후려친 건 나였는데요,
암소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방귀를 뀌며 나를 보고 있었는데요.
맛있겠지, 낄낄댄 것은 당신 친구들이었구요,
소파에 앉아 나체의 여자 사진을 여기저기 자랑하고 있었는데요,
커다란 샹들리에가 흔들린 것도, 암소가 뛰기 시작한 것도
나의 탓이 아니었는데요,
아주 멋진 정원에서의 식사,
암소를 구운 스테이크와 와인을 곁들인 식사, 그리고 여자들과의 하룻밤을 기대하고 왔다면,
그렇다면 아주 잘못된 생각이었을 텐데요,
모두 축 늘어져 있는 걸 보니
파티의 주최자로서 죄책감을 느꼈어요.
그러나 암소는 아주 윤기 나게 멋지고,
또 파티가 끝날 때까지 시간은 아직 많이 남아 있었는데요.
샹들리에 몇 개는 계속 흔들리고 있었는데요,
건물의 어디선가 피가 흐르기 시작했는데요.
ㅡ월간 《시인동네》 2019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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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현 / 1989년 서울 출생. 아주대 국어국문학과 졸업. 2017년 《한국경제신문》신춘문예 시 당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