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제6주일(가해)
복음(요한 14,15-21)은 부활하신 예수님의 현존인 진리의 영에 대한 첫 번째 약속입니다.
최후의 만찬에서 하신 말씀입니다. 제자들에게 아버지의 일(10,10; 11,52)에 대한 확신을 주신(14,12-14) 예수님께서는 승천하신 뒤에도 제자들 안에 머무르실 당신의 현존을 약속하십니다. 하느님께서 영원히 함께해주심은 인간이 늘 그리워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아들)께서 제자들을 떠나시더라도 아버지께 청하면 다른 보호자인 진리의 영이 제자들 안에 머무르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세상은 진리의 영을 보지도, 알지도 못하기 때문에 쉽게 받아들이지(믿지) 못하지만, 성령과 함께 계신 예수님께서(1,33) 제자들과 오랫동안 함께 지내셨기(14,9) 때문에 제자들은 이미 진리의 영을 알고 있다고 하십니다. 그런데도 진리의 영을 보내주신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뒤에 “새 마음”“새 영”(에제 36,26)인 성령을 넣어주시겠다(20,22)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계명(말씀)을 지키면서 예수님을 사랑하는 이에게만 진리의 영, 즉 성령께서 머무르신다고 하십니다.
제자들은 진리의 영을 알고 아버지의 말씀(계명)을 지켰기에(17,6) 예수님께서 진리의 영으로 그들과 함께하실 것입니다. 그런데 계속해서 예수님을 사랑해야만 예수님의 계명을 지킬 수 있습니다. 사랑이 식으면 예수님을 보내신 아버지의 말씀인 예수님의 계명을 지키지 못하기 때문에 진리의 영이 머무르지 않습니다. 믿음과 사랑과 계명을 지키는 것은 분리될 수 없습니다(14,23-24). 계명을 지키는 이야말로 예수님을 사랑하고, 믿음이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진리의 영과 하느님 아버지와 예수님의 사랑을 받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이 세상에 보내신 하느님 아버지께서 명령하신 대로 아버지의 말씀을 전해주신(12,49) 예수님의 말씀을 지키는 이는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입니다(6,40.47; 8,51). 예수님의 계명을 지키라는 것은 “자애를 베푸시는 진실하신 하느님”(신명 7,9)을 믿고 따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계명은 곧 하느님 아버지의 명령이고, 영이며 영원한 생명이기 때문에(6,53; 12,50) 당신께서 떠나시더라도 제자들을 고아들처럼 버려두지 않으실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진리의 영께서 제자들과 함께하시기 때문에 예수님의 계명을 지키는 이들에게 사랑과 말씀으로 함께하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아들이 아버지께 청해서 진리의 영이 오시고, 그 영이 제자들과 함께하게 되면 예수님께서도 제자들과 함께하기 위해 다시 오시겠다고 하십니다. 조금 있으면 다시 보게 될 것이라는 말은 아버지의 집에 거처할 곳을 마련한 뒤 제자들을 데려가기 위해서가(14,2-3) 아니라 죽었다가 부활하실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부활하시는 그날(20,19.24)이 오면 “아버지께서 당신 안에 생명을 가지고 계신 것처럼, 아들도 그 안에 생명을 가지게 해주셨다.”(5,26)는 것을 제자들은 알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예수님의 이 말씀이 무슨 뜻인지 도대체 알아듣지 못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신다고 한 말을 믿어라. 믿지 못하겠거든 아버지께서 하시는 당신의 일들을 보아서라도 믿으라고(14,10-11) 하셨습니다. 결국 이 말씀을 깨달으려면 믿음이 필요합니다. 예수님의 죽음 때문에 흩어지지 말고, 진리의 영께서 가르치고 기억하게 해주시는(14,26) 예수님의 계명(말씀)을 잘 지킨다면 제자들은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이고,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을 사랑하고, 그들에게 당신을 드러내 보일 것입니다. 이 약속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진리의 영으로 제자들 안에 머무르실 것입니다(15,1-17).
제1독서(사도 8,5-8.14-17)는 사마리아에 필리포스가 복음을 선포하자 받아들입니다.
사도들이 기도와 복음 선포에 전념하기 위해 가난한 이들에게 식탁 봉사를 할 수 있도록 선발된 일곱 부제(6,1-7) 가운데 필리포스가 사마리아에 가서 처음으로 복음을 선포합니다. 유다인과 사마리아인은 서로 멸시했기에(2열왕 17,24-41) 예수님을 배척했지만, 사마리아의 시카르 지역 사람들은 예수님을 “세상의 구원자”로 받아들였습니다(요한 4,1-42). 아직도 적대감이 있는 곳에 진리의 영을 받고 예수님의 말씀(계명)을 기억해낸(요한 14,26) 필리포스가 사마리아에 복음을 전하러 갔습니다. 필리포스가 선포한 복음을 사마리아 사람들이 받아들일 때 일어난 이적과 표징을 보고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의 계명을 잘 실천 합니다. 불가능하다고 여겨졌던 사마리아에 필리포스의 노력으로 복음이 선포되자 예루살렘 교회는 베드로와 요한 사도까지 파견하여 성령을 받도록 기도했습니다. 사도들이 파견되어 성령을 받았다는 것은 오늘날 견진성사를 받았다는 것입니다.
제2독서(1베드 3,15-18)는 베드로 사도가 신앙생활의 원칙을 제시합니다.
베드로 사도는 박해를 마치 그리스도의 환난에서 모자란 부분을 그분의 몸인 교회를 위하여 자기 육신으로 채울 수 있게 하는 하느님의 뜻(콜로 1,24)으로 받아들이라고 합니다. 박해 때문에 신앙생활이 어렵더라도 세례를 받았으므로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거룩히 모시는(사랑하는) 이들이며, 영광의 성령께서 함께해주시므로 구원에 대한 희망을 포기하지 말고 하느님을 찬양하라고 권고합니다. 그리스도인이 견뎌내야 하는 비방과 중상과 부끄러운 일이란 그리스도의 이름 때문에 당하는 모욕이고(4,14),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구원의 희망이냐고 비아냥거리는 것이므로 예수님과 그분의 계명에 대하여 누가 묻더라도 언제든지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도록 잘 준비하라고 합니다. 또한 바른 양심을 가지고, 온유하고 공손하게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고백하라고 합니다. 아주 일찍부터 세례의 조건으로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과 부활, 그리고 승천과 성령께 대한 신앙고백을 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계명(말씀)을 잘 지키는 사도들에게 다시 오실 것을 약속하십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겠다.”라는 것은 죽기 전의 모습이 아니라 성령과 말씀(계명)을 통하여 영적으로 제자들 안에 머무르시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이들에게 그분께서 다시 오신다면 아들과 아버지가 함께 새로운 방식으로, 다른 보호자이신 진리의 영을 통하여 영원토록 사도들 안에 머무르실 것입니다. 진리의 영은 하느님 아버지와 아들(그리스도)이 나누는 사랑이며, 우리에게 다가오는 하느님 아버지의 사랑, 그리고 동시에 우리를 향한 예수님의 사랑입니다. 이 사랑은 “당신을 믿게 될 이들이 받게 될 성령을 가리켜 하신 말씀입니다.”(요한 7,39)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죽을 것이지만 예수님의 영적인 현존이신 진리의 영은 또 다른 보호자로서 영원히 제자들과 함께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계명(말씀)을 지키지 못하고 사랑을 실천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 안에 진리의 영이 머무르지 않을 것이므로 예수님의 현존을 체험할 수 없을 것입니다.
아버지와 아들이 하나이듯이 예수님과 제자들은 진리의 영(사랑)을 통하여 예수님과 하나가 될 것입니다. 아들이 아버지의 뜻을 이루면서 아버지와 하나가 되셨듯이, 제자들도 예수님의 계명을 지키고 사랑함으로써 예수님과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이 살아가야 할 새로운 삶의 방식은 진리의 영께서 가르치시고, 기억하게 해주시는 예수님의 계명(말씀)을 지키면서 예수님은 물론 믿는 이들끼리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진리의 영께서 예수님의 모든 말씀(계명)을 기억하게 해주셨기 때문에 필리포스는 원수처럼 지내던 사마리아에 들어갈 수 있었고, 그들을 성령 안에서 새롭게 태어날 수 있게 했습니다. 베드로 사도 역시 성령을 받은 신자들이 사랑을 실천하면서 예수님의 계명을 지키고, 언제든지 누가 묻더라도 예수님의 가르침을 당당하게 설명하고 선포하라고 권고합니다.
오늘날 사랑을 고백하는 표현 가운데 “네가 내 안에 있어!”라고 합니다. 그런데 미움이 넘칠 때도 “네가 내 안에 있어!”라고 합니다. 당연히 물리적으로 들어온 것이 아니라, 사랑 때문에, 그리고 자기도 그 사람의 사랑을 받고 싶어서, 또는 미움 때문에, 그리고 저주하고 싶은 복수심 때문에 자기 마음과 생각에서 떠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사랑으로 마음에 들어오면 둘을 하나로 묶어주지만, 미움으로 마음에 들어오면 둘을 갈라놓습니다. 사랑은 게으름을 몰라서 가까이 다가가게 하지만, 미움은 꼴사납고 마음에 들지 않아 싫어하기 때문에 멀어지게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과 하느님 아버지, 그리고 성령께서는 사랑 때문에 서로 “네가 내 안에 있어.”라고 하십니다. 우리도 예수님께 “당신이 내 안에 계십니다.”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 방효익 바오로 신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