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것이 사랑이다-12
20.
그들은 서로의 얼굴을 쳐다 보았다. 지선경의 맑은 눈 속의 호수면 위로 하얀 새 한마리가 날아갔다.
“천지수! 어디를 그렇게 유심히보고 있는거 예요?”
지선경이 놀란듯 벗어서 검을 싼 셔츠로 가슴을 가리며 말간 눈을 크게 뜨고 물었다.
“아니야. 당신 눈 속에 날아가는 새를 보고 있었어. 근데, 배고프다.”
“어휴~ 당신은. 끝까지 감동적이질 못해요. 꼭 이렇게 여심을 깨버린다니까. 그게 당신 매력이지만요. 알았어요.먹을 걸 만들께요. 좀 기다려요.”
“그래. 당신이 만든건 뭐든다 맛있을테니까. 근데, 여기서 기다려 아니면, 안에서 먹을까?”
“우리 소풍 온 것같이 밖에서 끝없이 넓은 자연을 바라보며 자연속에서 먹어요. 조금만 기다리세요. 곧 나올께요.”
지선경은 울루불루 추장에게서 받은 것들을 소중히 다루듯 가슴에 안고 들어갔다. 지선경의 등은 햇살을 받아 눈부셨다. 천지수는 울루불루 추장이 앉았던 침낭을 거두어 전망이 좋은 바위를 찾아 둘이 앉기 좋게 다시 잘 깔았다. 쏘울나들목에서 약 10미터 떨어졌으며, 키 큰 유카리 나무가 잎을 무성히 달고 그늘을 만들어 놓은 곳이었다. 울루불루 추장이 올라 온 길에서는 우측이었으며 나무 아래 두 사람이 넉넉히 누울 수 있는 넓적바위가 있었다. 그늘은 그곳을 다 가리고 있었다. 시야를 가리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늦은 점심을 지선경이 만들었다. 소고기 말린 것과 양고기 말린 것. 둘 중 하나를 택하여 씹어 넘겨야 했다. 소금에 저렸기에 먹기는 좋았다. 야무지게 조금씩 입에 넣고 씹던 지선경이 천지수를 멀건히 보며 낮게 말했다.
"아주 먼 옛날에는 이렇게라도 먹었을까요? 먹는 재미를 빼고는 살 수가 없잖아요."
"가능해. 지금 인간들이 추측하고 생각하는 것 보다 더 진보적이었을 수가 많으니까. 먹는 것 쯤이야 그 이상일 수가있을거야."
"아이~ 그러면 우리는 먼 옛날에 먹든 음식보다 못하거나 같을 수 있다는 말이예요?"
"그건 생각하기에 달렸어. 지금 우리는 자연속에서 자연을 호흡하며 생애에 두번 다시 없을 수도 있는 체험을 하는거야. 지금 이렇게 먹을 수 있는 것도 역시 체험 중 하나라 생각하면 귀중하게돼. 그러니, 지선경. 열심히 온 힘을 다하여 해 나가자. 알았지?"
"이럴 수가. 결국은 제가 또 배우게 되는거잖아요. 알았어요. 열심히 할께요. 근데, 뭘 열심히하죠?"
지선경은 그 말을 하고는 후회했다. 이곳에서 열심히 할 것이라고는... 그녀가 천지수를 쳐다 봤을 때 이미 천지수는 미소를 짖고 있었다. 그녀는 처음 그의 미소를 보았다. 음흉하다고 느껴지는 그러한 미소를. 그러나 웃음이 같이 나왔다. 그것을 알 수있는 자기는 무엇이란 말인가. 이미 그의 다음 의도를 알고 있음에 스스로 놀라서 웃음이 나왔던거다. 그녀는 둘이서 아직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하여 다시 돌아가 준비한 것들을 가죽 주머니에 넣어서 밖으로 나왔다. 천지수가 보이지 않았다.
"천지수! 어디있어요?"
"여기야. 이리로와-"
그의 톤이 맑고 우렁찬 목소리가 우측 유칼리 나무 쪽에서 들렸다.
"으아악~ 천지수! 뭐예요? 거의 발가벗고 있잖아요?"
"응. 어서 이리와. 선경아. 당신도 그것 이리주고 입은 옷 다 벗어버려. 찬란하고 순수한 자연속에서 자연이 되자는거야. 날아가는 새들도 우리를 보고는 '아! 저기 자연 두개가 사랑을 하고 있구나' 생각할거야. 어때. 멋지지않아?"
"천지수. 당신은 정말 특이한 생각을 가진 사람이예요. 어떻게 그렇게 아름다운 생각을 하였고, 그것을 과감하게 실행한거예요? 당신 정말 영혼이 순수한 사람임이 틀림없어요.”
그렇게 말한 지선경은 다시 동굴로 들어가서 물을 준비하여 기다리고 있는 천지수 곁으로 갔다.
"뭐야! 당신. 이래도 되는거야? 나는 팬티라도 입고 있는데... 당신은 완전하게 다 벗었잖아."
"여보! 그러면서 어디를 봐요. 저는 요 당신말을 듣자 곧 자연이고 싶다는 생각이 짜릿하게 몸을 가득 채웠고, 행동으로 옮기자는 야성이 이렇게 만들었어요. 당신도 어서 그 덧없는 천조각 벗어 버려요."
"당신은 학습력이 너무 뛰어나서 내가 걱정스러워. 이제는 나 보다 더 야해지고 있어."
"여보~. 나 하나도 야 안해요. 그냥 자연인거예요."
"음~. 알았어. 나도 자연이되자. 당신과 쌍자연으로."
하늘이 너무 높고 맑으면 푸른 코발트색이 되고, 그 푸르름을 보노라면 눈에 눈물이 인다. 두 사람은 유칼리 나뭇잎 그늘에 펼쳐 깔아 놓은 켕거루 가죽 위에 누웠다. 두 사람은 그늘 아래서 하늘을 보고 바로 누웠다. 그리고 하나의 오른손 왼손은 서로 악수하여 잡았다. 다른 하나의 오른손과 왼손은 각자의 배꼽위에 살며시 놓았다. 그들 각자는 나뭇 잎 사이로 하늘을 보았다. 그리고 눈이 시리자 다시 스르르 눈을 감았다. 동시에 그들은 그렇게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21.
하늘이 열렸다. 투명한 초록색의 공간이었다. 스스로가 잡은 손을 의식하여 옆을 보았다. 똑같이 안도의 숨을 내 뱃었다. 잡힌 손의 주인은 지선경이었다. 잡은 손의 주인은 천지수이었다. 둘은 놀랐다. 상대의 배꼽아래가 안개에 휩싸인듯 잘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흐르듯 움직이고 있음을 느꼈다. 지선경이 생각을 오른쪽으로 돌렸다. 오른쪽으로 형체가 움직였으며 천지수도 가볍게 따라 움직였다. 천지수가 조금 앞으로 라고 생각을 하였다. 두 형체는 앞으로 조금 움직였다.
"천지수!"
지선경이 겁에 질린듯 아주 작은 소리로 불렀다. 천지수는 고개를 돌려 지선경을 봤다. 탄성이 절로 튀어나왔다. 이렇게 맑고 청순하고 아름다운 사람이 있었다니. 지선경의 목은 청아한 우유빛 색갈이었다. 그 아래 젖가슴이 있었다. 욕정과는 전혀 관계없듯이 탱탱하고 싱싱한 복숭아였다. 그는 손바닥을 펴서 그 한 가슴을 감쌓다. 탄력이 느껴졌다. 따뜻하였다.
"여보. 천지수! 왜 그래요?"
지선경이 놀라며 아주 작은 목소리로 힘주어 속삭였다.
"여보! 천지수. 우리가 죽은거예요? 아니면 어디에 있는거예요?"
"나도 모르겠는데, 아마 죽은 걸거야. 영으로 움직이는 것 같아. 그래도 다행인 것은 당신과 함께 있다는거야. 죽어서도 함께라니 이게 바로 행복인게야. 그지?"
"맞아요. 이제는우리 떨어지지마요. 근데, 왜 우리가 죽었죠?"
"알려고 하지마. 죽어서 이렇게 같이있고 생각하고 말 할수 있다는 것에 대해서도. 그런데 저쪽 아래에 움직이는것 보여?"
"예. 보여요. 웅성대는 소리도 들리는걸요. 우리 저 곳으로 가봐요."
그들은 원앙새가 높은 곳에서 하강하듯 부드럽고 거침없이 흐르듯 내려갔다. 10분쯤 그들은 소리나는 곳으로 내려갔다. 소리는 점점 가까이서 들려왔지만 그 소리는 전혀 짐작할 수 없었다. 전파가 충돌하는 음과 가열된 바람이 틈사이로 새어 나오며내는 소리 혹은 섬광이 진공을 가르는 소리일 수도 있겠지만, 그 소리들은 싸우고 있었다. 형체가 보였다. 열 둘, 아니면 열 넷 정도였다. 그들은 대단히 빨리 움직였으며 연기처럼 흩어졌다 다시 모이고 하였다. 그 움직이는 형체들 아래는 호수였다. 육안으로도 한 쪽 끝이 보이는 그다지 크다고 할 수 없는 호수였지만 맑았다. 호수 주위로는 초록색 풀로 덮힌 들판이었다. 그 들판 넘어로 푸른 잎으로 덮혀있는 키 작은 나무 숲이 보였다. 싸움은 들판과 호수와 작은 나무 숲 위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그들은 걷는 것 같았으나 날았고, 뛰는 것 같았으나 흘렀다. 지선경과 천지수는 들판 가운데에 있었다. 왜 그곳에 서있게 되었는지는 몰랐다. 착륙감도 느낄 수 없었다. 그들은 아직도 서로 손을 잡고 있었다. 특별히 하늘이라고 할 수없을 정도로 사방이 맑고 투명하였다. 바람도 없었다. 기온은 아주 적당히 좋았다.
"여보! 천지수. 어떻게해요. 어서 피해야 하잖아요?"
지선경이 어리둥절하며 조그맣게 말했다.
"그런데, 남성으로 보이는 십 수명이 한 여자와 싸우고 있어. 어떻게 저럴 수가 있는거야?"
"여보! 지금 우리 처지에 대해서도 잘 모르잖아요? 당신은 지금 전혀 용감할 필요가 없어요. 어서 저 쪽 숲속으로 가서 숨어요. 네?"
천지수가 주변을 둘러 보았으나 완전히 노출된 들판에 서 있음을 알고는 움직이려는 순간, 여자의 낮은 말소리가 들렸다.
"어머니! 아버지! 너무 멀리 가지는 마세요. 저예요.초령이. 천초령! 이 놈들을 제거하고 따라 갈게요."
천지수와 지선경은 놀랐다. 분명히 여자의 음성이었다. 천지수는 알 수 있었다. 그 목소리를. 지선경과 똑같은 음색에 감미롭고 형언할 수 없는 매혹적인 목소리. 그러나 좌충 우돌 부딪쳤다 떨어져 날으는 여자를 볼 수가 없었다. 4개의 개체가 천초령을 도와 싸우고 있었다. 지선경이 놀라서 천지수의 왼쪽 팔을 꽉 잡았다.
"지금 말 소릴 들었어요? 초령이래요. 분명히 들었죠?
"응. 분명히 들었어. 천초령. 저 사람이 우리 딸이라니. 그건 나중에 확인하고, 우선은 저 사람을 구해야돼."
"그래요. 여보. 그런데 어떻게 우리가 구하죠. 여보! 천지수. 당신은 할 수 있을거잖아요. 어서요."
그렇게 말한 지선경은 갑자기 전신을 차갑게 흘러 감도는 전율을 느꼈다. '어떻게. 어떻게 그것이... ' 지선경은 놀라움에 정신을 잃고 있었다.
천지수. 그는 네사람이 하늘을 날며 싸우는 광경을 유심히 보고 있었다. 지선경이 재촉하는 말은 이심전심이었고, 그 천지수는 지금 처한 상황을 이해하려 애썻다. 현재가 사 전 인가 사 후인가 를 먼저 알아야 했다. 그들의 싸움은 이상하였다. 그들의 손에는 무기같은 것은 보이지 않았다. 무협지의 장풍 같은 것도 아니었다. 삶의 내공이 깊은 천지수로도 짐작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두 사람이 숨어있는 숲속 가까이 그들이 왔을 때는 알지 못할 힘에 의하여 나무숲이 요동을 쳤다. 지선경은 그런 순간에도 초령이의 모습을 보았으면 하고 바랐다. 그녀가 그 간절함을 견디지 못하고 숲에서 머리를 조금 내밀자 그녀를 겨냥한듯한 차거운 힘이 얼굴로 몰아쳤다. 그와 함께 찟어지듯한 여자의 비명이 울리며 뜨거운 바람과 함께 지선경의 몸은 다시 숲으로 밀려 들어갔다. 지선경은 놀라서 눈을 질끔감았다.
"너희는 이 사람들을 절대 다치게 해서는 안돼!"
그 외침은 날카로웠다.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지옥에서 솟구친 찟어지는 듯한 명령이었다. 그 외침에 변화가 있었다. 그 외침이 끝남과 동시 12개의 무형의 오라같은 개체는 사라졌다. 그리고 평화스러운 기운이 온 몸으로 느껴왔다. 지선경이 감았던 눈을 뜨자 놀라운 상황이 벌어졌다. 믿기가 어려웠다. 핑크빛 오라에 싸여있는 여자애가 서 있었다. 머리칼은 검은 색이었고, 얼굴의 피부는 희고 투명하듯 맑았다. 눈은 컷으며 눈동자는 검고 너무 맑았다. 지선경은 놀랐다. 대학입학식을 이틀 남겨두고 용기를 내어 사진관에서 찍은 스스로의 사진을 보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 얼굴에서 천지수가 느껴졌다.
"어머니! 괜찮으세요?"
초령이 놀람과 걱정과 반가움이 섞인 미소를 띄며 지선경의 팔을 가볍게 잡았다. 찬기운이 잡힌 왼손을 통해 가슴까지 전해왔다. 지선경은 멍한 얼굴로 앞에선 천초령을 뚫어져라 쳐다 보고만 있었다.
"당신이 초령이라고? 우리 딸 천초령이라고?"
언제 왔는지 천지수가 옆에 서서 두 사람을 놀란 표정이 가득한 얼굴로 보고있었다.
"이해가 되지 않아. 이 아이가 우리 딸이라니."
천지수는 초령의 앞에 서서 찬찬히 그녀의 얼굴을 살펴보고 있었다. 지선경도 역시 믿기지 않은 것 같은 표정이었다. 그러나 여자의 본능은 예기치 않은 상황에서 나타났다. 지선경은 온 몸에 가벼운 전율이 흐름을 느꼈다.
"그래. 맞다. 초령아. 네 이름은 아빠 네 옆에 계시는 천지수가 지어주었다. 놀랍구나. 너가 이렇게 성장했다니.초령아~ 너를 좀 안아도 되겠니? 내 자식을 품으로 느끼고 싶구나."
"예. 어머니."
두 모자는 누가 먼저라고 할 수 없는 순간에 서로의 벌린 팔로 서로를 안았다. 초령이 무릅을 조금 굽히고 어머니와 눈 높이를 맞추어 힘껏 안았다. 초령이가 엄마 지선경보다는 컷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잠시 두 모자는 서로를 가슴에 담으려듯 힘주어 안고 안았다. 지선경은 그의 가슴에 안긴 초령이를 한손으로 힘주어 안았고 다른 한손으로는 얼굴을 쓰다듬었다. 눈물로 얼굴은 흠뻑 젖었다. 할말이야 억겁이었지만, 지선경은 초령이의 젖은 얼굴을 손바닥으로 훔치며 돌려세워 아버지인 천지수에게 보냈다. 짧을 것 같은 상봉을 같이 나누고 싶었다.
"초령아~”
“아버지.”
부녀의 상봉을 감격으로 보고 있는 지선경은 말을 마치지 못하고 목이메었다. 어머니 가슴에서 떨어져 나온 초령이는 아버지 가슴에 안겼다. 처음 안기는 아버지 이자 이성의 가슴은 초령을 감동하게 하였다. 따뜻하였다. 포근하였다. 아주 잠깐 평화를 느꼈다. 이런것이 아버지의 가슴이구나 하고 초령이는 아버지를 온 몸으로 느꼈다. 고개를 들어 아버지를 바라 보았다. 가슴이 메어 말이 나오지 않았다. 초령이는 아버지의 눈을 보았다. 그 눈동자 속에서 부녀는 대화를 하였다. 지선경은 눈물을 닦으며 두사람을 멍하니 보고 있었다. 초령이가 다시 아버지의 가슴속으로 파고 들었다. 사랑으로 가득한 부녀의 모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