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호지 제115회-2
송강의 대군이 북관문 아래 당도하자, 성 위에서 징소리가 울리며 성문이 열리고 조교가 내려지더니 석보가 앞장서서 출전하였다. 송군 진영에서는 급선봉 삭초가 큰 도끼를 휘두르며 달려 나가 아무 말 없이 석보와 교전하였다. 두 장수가 맹렬히 싸우다가 10합이 못 되어, 석보가 파탄 난 척하며 말을 돌려 달아나자 삭초가 추격했다.
관승이 급히 추격하지 말라고 소리쳤지만, 그때 이미 삭초는 날아온 유성추를 얼굴에 맞고 말에서 떨어졌다. 등비가 급히 구원하러 달려 나갔는데, 되돌아온 석보의 칼에 베어져 두 동강이 나고 말았다.
성중에서 보광국사가 몇 명의 맹장을 이끌고 돌격해 나왔다. 송군은 대패하여 북쪽으로 달아났다. 그때 화영과 진명 등이 옆에서 달려 나와 남군을 물리치고 송강을 구하여 영채로 돌아갔다. 석보는 승전하고 기뻐하며 성중으로 돌아갔다.
송강은 고정산 대채로 돌아왔지만, 또 삭초와 등비를 잃고 슬픔에 빠졌다. 오용이 간했다.
“성중에 저런 맹장이 있으니, 지략으로 성을 취해야지 힘으로 대적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송강이 말했다.
“이렇게 또 장병을 잃었으니, 어떤 계책으로 성을 취할 수 있겠는가”
오용이 말했다.
“각 성문을 공격하는 부대에 미리 계책을 일러주고, 선봉께서는 다시 군사를 거느리고 가서 북관문을 공격하십시오. 필시 성중의 병마가 달려 나올 것이니, 우리는 패한 척 도망쳐서 적병을 성에서 멀리 유인하는 겁니다. 그런 다음에 호포를 터뜨려 신호하여, 각 성문을 일제히 공격하게 합니다. 한 성문이라도 깨뜨려 성중으로 진입하게 되면, 불을 질러 신호하게 합니다. 그러면 적병들은 필시 서로를 돌아볼 겨를이 없을 것이니, 큰 공을 세우게 될 겁니다.”
송강은 대종을 불러 각 부대에 계책을 알리게 하였다.
다음 날, 송강은 관승으로 하여금 군마를 거느리고 북관문으로 가서 도전하게 하였다. 성 위에서 북소리가 울리더니 석보가 병력을 이끌고 성을 나와 관승과 교전하였다. 싸움이 10합에 이르러 관승이 급히 퇴각하자, 석보의 군병이 추격해 왔다. 그때 능진이 호포를 터뜨리자, 각 성문에서 송군이 일제히 함성을 지르며 성을 공격하였다.
한편, 부선봉 노준의는 임충 등을 이끌고 후조문을 공격하러 갔다. 군마가 성 아래 당도해 보니, 성문이 열려 있고 조교도 내려져 있었다. 유당이 공을 세우려고 단기로 곧장 성중으로 달려 들어갔다. 성 위의 적병들이 유당이 달려 들어오는 것을 보고 도끼로 밧줄을 자르자, 성문이 위에서 떨어져 가련하게도 용맹한 유당은 말과 함께 성문 밑에 깔려 죽고 말았다.
원래 항주성은 전왕이 도읍을 세울 때, 성문을 3중으로 만들었다. 맨 바깥쪽은 아래위로 움직이는 문이고, 중간에는 양쪽으로 여닫는 철제문이고, 안쪽에는 또 나무로 된 문이 있었다. 유당이 성문으로 뛰어 들었을 때, 맨 바깥쪽의 성문이 아래로 내려와 깔려 죽은 것이었다. 그리고 성문 양쪽에 또 적병이 매복하고 있었기 때문에, 성문에 깔리지 않았다 하더라고 죽음을 피할 수가 없었다.
임충과 호연작은 유당이 죽는 것을 보고 병력을 돌려 영채로 돌아와, 노준의에게 보고하였다. 다른 성문들에서도 아무도 성중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모두 후퇴하여, 송선봉의 대채에 보고하였다. 송강은 또 후조문에서 유당을 잃었다는 보고를 받고 통곡하며 말했다.
“또 한 형제가 억울하게 죽었구나! 운성현에서 의를 맺은 후 조천왕을 따라 양산박으로 돌아와, 오랫동안 많은 고생만 하고 쾌락을 누리지도 못했는데! 백 번이 넘는 크고 작은 싸움터에 출전하여 온갖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도 예기가 꺾인 적이 없었건만, 오늘 이곳에서 죽을 줄을 누가 알았으랴!”
군사 오용이 말했다.
“이 계책이 좋지 않아, 도리어 한 형제만 잃었습니다. 각 성문에 있는 군사를 모두 후퇴시키고, 다른 계책을 세워야겠습니다.”
송강은 마음이 초조하여 빨리 원수를 갚고 싶어 탄식하여 마지않았다. 흑선풍 이규가 말했다.
“형님은 마음 놓으십시오. 제가 내일 포욱·항충·이곤을 데리고 석보란 놈을 사로잡아 오겠습니다.”
송강이 말했다.
“그자는 영웅인데, 네가 어떻게 사로잡는단 말이냐?”
“날 못 믿으시는 겁니까? 내가 내일 그놈을 사로잡지 못하면, 형님 얼굴을 보지 않겠소!”
“어쨌든 조심하고, 그놈을 얕보지 마라.”
이규는 자신의 장막으로 돌아오자, 술과 고기를 차려놓고 포욱·항충·이곤을 청하여 술을 마시면서 말했다.
“우리 넷은 지금까지 늘 함께 싸워 왔네. 오늘 내가 선봉 형님 앞에서 내일 석보란 놈을 사로잡아 오겠다고 큰소리를 쳤는데, 자네들이 좀 도와줘야겠네.”
포욱이 말했다.
“송공명 형님은 언제나 마군을 앞세웠는데, 내일은 우리가 앞장서서 석보란 놈을 잡읍시다. 우리 넷이서 힘을 내봅시다!”
다음 날 아침 일찍, 이규 등 네 사람은 음식과 술을 잔뜩 먹고 마신 다음, 무기를 들고 영채를 나와 송선봉에게 싸움을 구경하라고 청하였다. 송강은 네 사람이 모두 반쯤 취한 것을 보고 말했다.
“자네들은 목숨을 가지고 장난하지 마라!”
이규가 말했다.
“형님! 우리를 우습게보지 마시오!”
송강이 말했다.
“자네들 말대로만 된다면 오죽 좋겠나!”
송강은 말에 올라 관승·구붕·여방·곽성을 데리고 북관문 아래로 가서 북을 울리며 싸움을 걸었다. 송강 앞에 이규가 쌍도끼를 들고 섰고, 포욱은 넓적한 칼을 들고 눈을 부릅뜨고서 달려 나갈 태세를 취하였다. 항충과 이곤은 각기 비도 24자루를 꽂은 방패와 쟁을 들고 양편에 서 있었다.
성 위에서 징소리가 울리면서, 석보가 벽풍도를 들고 누런 말을 타고서 오치와 염명 두 장수를 거느리고 성을 나왔다. 세 장수가 성을 나오자마자, 세상에 두려운 자가 없는 이규가 크게 고함을 지르자 네 장수가 곧장 석보를 향해 달려들었다.
석보가 벽풍도를 들어 대적하려 할 때 이규는 벌써 가까이 다가와 있었다. 이규가 도끼로 말 다리를 찍자, 석보는 말에서 뛰어내려 마군 속으로 몸을 피했다. 포욱은 그때 이미 염명을 한칼에 베어 말에서 떨어뜨렸다. 항충과 이곤이 날린 비도는, 공중에서 마치 옥빛 물고기가 헤엄치듯 은빛 나뭇잎이 바람에 날아가듯 하였다.
송강은 그 틈에 마군을 몰아 성벽 밑에까지 돌격했지만, 성 위에서 뇌목과 포석이 마구 쏟아져 내리는 바람에 송강은 급히 군대를 후퇴시켰다. 그런데 뜻밖에 포욱이 이미 성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송강은 단지 ‘아이고!’ 소리만 칠뿐이었다.
석보가 성문 안쪽에 숨어 있다가, 포욱이 성 안으로 뛰어 들어오는 것을 보고 한칼에 베어 두 동강을 내고 말았다. 항충과 이곤은 이규를 호위하여 본진으로 돌아왔다. 송강의 군마는 본채로 돌아왔지만, 또 포욱을 잃고서 송강은 더욱 근심에 빠졌다. 이규도 영채로 돌아와 통곡하였다.
오용이 말했다.
“이 계책 역시 좋은 계책이 아니었습니다. 비록 적장 하나를는 베긴 했지만, 이규의 한 팔을 잃었습니다.”
장수들이 모두 근심에 빠져 있는데, 해진이 해보와 함께 본채로 돌아와 송강에게 보고하였다.
“제가 해보와 함께 남문 밖 20여 리 지점에 있는 범촌이란 곳으로 갔는데, 강변에 배 수십 척이 정박해 있었습니다. 가서 알아보니, 부양현의 원평사라는 자가 식량을 싣고 온 배였습니다. 제가 죽이려고 했더니, 원평사가 울면서 말했습니다. ‘저희들은 모두 대송의 양민들입니다. 방랍이 수시로 세금을 걷으면서, 따르지 않는 자는 온 가족을 죽입니다. 저희들은 이제 천병이 왔다고 해서, 역적을 없애고 태평세월을 다시 볼 수 있으리라고 바랐는데, 또 이런 일을 당할 줄이야 누가 생각이나 했겠습니까?’
저는 그 말을 듣고 불쌍한 생각이 들어 차마 죽이지 못하고 다시 물었습니다. ‘무슨 일로 여기 왔소?’ 그랬더니 그가 말했습니다. ‘근래에 방천정이 각 현에 명령을 내리기를, 마을을 다 뒤져서 쌀 5만 섬을 거두어 바치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이 늙은이가 앞장서서 5천 섬을 거두어 우선 바치려고 왔습니다. 그런데 이곳에 와 보니, 대군이 성을 포위하여 싸우고 있어, 감히 더 나아가지 못하고 이곳에 정박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사정을 알아내어 주장께 보고하러 왔습니다.”
오용이 크게 기뻐하며 말했다.
“이는 하늘이 내려준 기회입니다. 저 식량 배를 얻으면 공을 세울 수 있습니다. 선봉께서는 명을 내려, 해진·해보 형제가 앞장서서 포수 능진과 두천·이운·석용·추연·추윤·이립·백승·목춘·탕륭·왕영·호삼랑·손신·고대수·장청·손이랑을 사공과 아내로 변장시켜 배와 함께 섞여서 성중으로 들어가게 하십시오. 일단 성중으로 들어가 연주포를 터뜨려 신호하면, 그때 우리가 접응하면 됩니다.”
해진과 해보는 원평사를 불러 송선봉의 명을 전하고 말했다.
“당신들도 송나라 양민이니, 이 계책대로 행하도록 하시오. 일이 성공하면 큰 상을 내릴 것이오.”
원평사도 따르지 않을 까닭이 없었기 때문에, 많은 장수들이 모두 배에 올랐다. 원래 사공들은 잡역부로 배에 남고 사공 복장을 벗어 건네주자, 왕영·손신·장청이 그 옷을 갈아입고 사공으로 꾸몄다. 그리고 호삼랑·고대수·손이랑은 사공의 아내로 꾸몄으며, 그 외의 장수와 소교들은 모두 노 젓는 일꾼으로 꾸몄다. 무기를 선창에 숨기고, 일제히 성에 가까운 강변으로 배를 저어갔다.
그때 각 성문을 포위하고 있던 송군은 모두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원평사가 강안으로 올라가자, 해진·해보와 몇 명의 사공들이 뒤를 따라 성문 아래로 가서 문을 열라고 소리쳤다. 성 위의 군사들이 원평사를 알아보고 사정을 자세히 물어본 다음, 태자궁으로 가서 보고하였다. 방천정은 오치를 성문 밖으로 내보내 강변으로 가서 배들을 점검해 보게 하였다.
오치가 배를 확인한 다음 성중으로 돌아가 방천정에게 아뢰자, 방천정은 여섯 장수로 하여금 1만 군사를 이끌고 나가 동북쪽을 경계하면서, 원평사로 하여금 식량을 성중으로 운반하게 하였다. 그때 여러 장수들은 모두 사공과 일꾼 틈에 섞여 식량을 운반하면서 성으로 들어갔다. 세 명의 여장수도 함께 따라 들어갔다.
5천 섬의 식량이 잠깐 사이에 모두 성중으로 운반되었고, 여섯 장수는 군사들을 이끌고 성중으로 들어갔다. 송군이 쳐들어와서 다시 성을 포위하고서, 성에서 2~3리 떨어진 곳에 진세를 펼쳤다.
그날 밤 10시경, 능진이 자모포 아홉 상자를 꺼내 오산 정상으로 올라가 포를 터뜨리자, 여러 장수들은 곳곳에 불을 질렀다. 성중은 순식간에 솥에 물이 끓어오르듯 소란해지기 시작했다. 얼마나 많은 송군이 성중으로 들어왔는지 알 수 없었다.
방천정은 궁중에서 소란스런 소리를 듣고 크게 놀라, 급히 갑옷을 입고 말에 올랐다. 그때는 각 성문을 지키던 군사들이 이미 모두 도망친 뒤였다. 송군이 총공세를 펼쳐 각자 공을 세우기 위해 다투어 성에 올랐다.
한편, 서산에 있던 이준 등은 명을 받고, 군사를 이끌고 정자항으로 쳐들어가 배를 탈취하여 호수를 통과해 용금문으로 갔다. 장수들은 각처의 수문을 공격하고, 이운과 석수는 앞장서서 성을 올라갔다. 밤중에 성중에서는 혼전이 벌어졌는데, 남문은 포위하지 않고 내버려두고 있었기 때문에 패잔병들은 모두 남문을 통해 달아났다.
한편, 방천정은 말에 올라 사방을 둘러봐도 따르는 장수가 하나도 없어, 다만 보군 몇 명만 거느리고 남문을 통해 달아났다. 굶주린 상갓집 개처럼, 그물에서 빠져나온 물고기처럼 정신없이 달려 오운산 아래에 당도하였다. 그때 강물 속에서 한 사람이 솟아나오더니, 입에 칼 한 자루를 물고 벌거벗은 채로 강변으로 올라왔다.
방천정은 그 흉악한 모습을 보고 깜짝 놀라 말에 채찍질을 하여 달아나려고 했는데, 어찌된 일인지 아무리 때려도 말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마치 누군가가 말고삐를 단단히 쥐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때 물속에서 나온 사내가 다가오더니, 방천정을 말에서 끌어내려 한칼에 목을 베어 버렸다. 그리고는 방천정의 말에 올라 한손에는 수급을 들고 또 한손에는 칼을 들고서, 항주성으로 달려갔다.
그때 임충과 호연작이 육화탑에 당도하였는데 마침 달려오던 사내와 마주쳤다. 두 장수는 그 사내가 선화아 장횡임을 알아보고 깜짝 놀랐다. 호연작이 소리쳤다.
“아우는 어디서 오는가?”
장횡은 아무런 응답도 없이 곧장 말을 몰아 성중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때 송선봉의 군마는 이미 성중으로 모두 들어와 방천정의 궁중을 원수부로 정하고 장수들이 지키고 있었다. 그런데 장횡이 말을 타고 달려오는 것을 보고 모두 깜짝 놀랐다. 장횡은 송강 앞에 당도하자 말에서 내려 수급과 칼을 내던지고, 머리를 조아려 두 번 절하고서는 통곡하였다. 송강이 황망히 장횡을 끌어안으며 말했다.
“아우는 어디서 오는가? 완소칠은 어디 있는가?”
장횡이 말했다.
“저는 장횡이 아닙니다.”
“자네가 장횡이 아니라면, 대체 누군가?”
“저는 장순입니다. 용금문 밖에서 창과 화살을 맞고 죽었는데, 원혼이 되어 호수를 떠나지 못하고 떠돌고 있었습니다. 서호의 진택용군(震澤龍君)께서 감동하여 저를 금화태보(金華太保)로 삼으시고 수부용궁(水府龍宮)에서 신으로 머물게 해주셨습니다.
오늘 형님께서 성을 격파하시는 것을 보고, 제 혼이 방천정에 달라붙어 밤중에 그를 따라 성을 나왔습니다. 마침 장횡 형님이 강에 있는 것을 보고 형님의 육신을 빌려 강가로 올라가 오운산 아래에서 이 역적을 죽이고 이렇게 형님을 뵈러 왔습니다.”
말을 마치자, 갑자기 땅에 쓰러졌다. 송강이 부축해 일으키자, 눈을 뜬 장횡이 송강과 장수들이 창칼을 들고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것을 보고 말했다.
“제가 황천에서 형님을 뵙고 있는 겁니까?”
송강이 울면서 말했다.
“좀 전에 자네 아우 장순의 혼이 자네 육신을 빌려 방천정이란 역적 놈을 죽였네. 자네는 죽지 않았고, 우리도 모두 산 사람이네. 정신 차리게.”
“그렇다면 제 아우가 이미 죽었단 말입니까?”
“장순은 서호 물속을 통해 수문으로 잠입하여 성중에 불을 지르려고 했었는데, 뜻밖에 용금문 밖에서 성을 넘어가려다가 적병에게 발각되어 창과 화살에 맞아 죽었다네.”
장횡은 그 말을 듣고 대성통곡하며 울부짖었다.
“아우야!”
장횡은 통곡하다가 정신을 잃고 쓰러지고 말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