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초반 나는 포항 구룡포에 근무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해 추석을 맞아 고향을 찾았다. 아내와 아이들은 먼저 떠났기에 나 혼자 홀가분했다. 그런데 웬걸, 버스 주차장은 북새통이었다. 시쳇말로 파업을 하는지 30분 간격이든 버스 시간이 2시간에 한 대였다. 승객들은 먼저 타려고 박이 터졌다. 그래도 선생인데 그 틈에 끼어들 수는 없는 노릇, 나는 ‘에라 포항까지 걷자’ 그리곤 60리길을 나섰다. 바쁜 몸도 아니라 산천을 두루 살피며 느긋하게 걸었다. 더부룩하던 온 산천이 붉게 물들어가고 있었다.
‘발로 밟으면 낙엽은 영혼처럼 운다/ 가까이 오라, 우리도 언젠가는 낙엽이리니/ 가까이 오라, 밤이 오고 바람이 분다/ 시몬 너는 아느냐 낙엽 밟는 소리를’
레미 드 구르몽의 ‘낙엽’을 흥얼거리다보니 어느새 구절양장을 지나 도구 고개에 올라섰다. 이렁성저렁성 펼쳐진 들판이 한갓지고 마주 걸어가는 서쪽 하늘엔 석양이 일어서고 있었다. 옛말에 지는 해 아름답지 않는 풍경 없다더니 정말 장관이었다. 온 산하가 붉은 파스텔 물감을 뿌려놓은 듯 찬란했다. 그날의 황홀한 노을은 전에도, 그 후에도 본 적이 없었다. 떠나기 며칠 전에 읽은 '첫사랑'으로 우리들에게 잘 알려진 러시아 뚜르게네프의 '사냥꾼의 수기'에 나오는 어느 대목을 떠오르게 하였다.
'저물어 가는 태양은 마지막 광선을 넓은 적자색 무늬로 분산시키고 있었다’
그랬다. 노을이 흥건히 흐르고 있었다. 고개를 돌리니 창윤하던 영일만은 장밋빛 바다 꽃을 피우다 지우다 하고 있었다.
언뜻 나는 지금의 나를 생각하면 그날의 노을이 생각난다.
그렇다. 나는 지금 그 날의 노을처럼 인생의 황홀한 황혼기에 접어들었다. 그래서 나는 지금이 딱 좋다. 괴테가 ‘노인의 삶은 상실의 삶’이라고 말했지만 뭘 모르는 소리다. 걸을 수 있고, 볼 수 있고, 말할 수 있고, 들을 수 있고, 만질 수 있고, 느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아주 좋다. 산다는 것은 정말 황홀한 일이다. 거기다 물보다 진한 피로 엮은 살붙이가 있고, 보고 싶은 친구가 있고, 따사로운 자연이 있으니 말해 무엇 하랴!
사람들은 대개 젊은 날을 좋아하고 그리워한다. 그러나 나는 달리한다. 예를 들어 100년의 삶이 주어진다면, 젊은 청춘으로? 아님, 기반이 잡힌 중년으로? 아님, 지금처럼 산다고 한다면 나는 100년을 지금처럼 살고 싶다.
영화 ‘쥬만지: 넥스트 레벨’의 주인공 에디가 절규한다. “늙는다는 건 최악이야. 누가 아니라 거든 데려와라. 지금부터는 쭉 내리막이다.” 하지만 이내 젊다는 것이 무조건 좋은 일만은 아니란 걸 깨닫고 나이가 들어야만 느낄 수 있는 행복들을 발견한다. 현실로 돌아온 에디는 손자 스펜서에게 예전과 전혀 다른 말을 건넨다.
“늙는다는 건 선물이란다. 여기서 뭘 더 바라겠니?”
1970년 우리나라 작가 조해일이 단편 '매일 죽는 남자'로 문단에 얼굴을 내밀었다. '매일 죽는 남자는 "일요일인데도 그는 죽으러 나가려고 구두끈을 매고 있었다"로 시작되는 재미있는 단편이다. 소설의 주인공은 영화에서 죽는 배우를 연기하는 엑스트라였다. 구두끈을 매면서도 한숨을 푹푹 쉬었다. 하긴 나도 젊은 날엔 그랬다. 정해진 시간에 출근한다는 그 자체가 버거웠다. 특히 술을 좋아한 나는 과음한 다음날 시간 맞춰 출근하기가 맥락 없이 과히 죽을 맛이었다. 살다보면 빨래집게로 집듯이 집을 수 없지만 죽어도 하기 싫을 때가 있고, 가기 싫은 곳이 있게 마련이다. 그 뿐인가, 개구져 하기 싫으면서도 해야 할 일들이 널려있었다. ‘허삼관 매혈기’를 쓴 위하도 소설‘살아간다는 것’의 작가의 말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인내와 감수”의 연속이라 했다.
그뿐인가. 인간은 하루에 약 150번 정도의 선택을 한다나. 예를 들면 ‘출근할 때 무슨 옷을 입지’‘넥타이는 무엇으로 메고’등 자질구레한 것들이지만. 돌이켜 보면 우리가 인생을 산다는 것은 수많은 선택의 시간인 것만은 틀림없다. 순간의 선택이 10년을 좌우한다는 LG가전의 철학처럼 어쩌면 삶은 우리가 내린 모든 선택의 총합인지도 모른다, 마음이 가지 않았지만 나는 사범을 선택해 교원이 되었고, 아내를 선택해 가정을 이루었으나 그 과정에 말할 수 없는 갈등에 시달렸다.
젊은 날 셀 수 없는 괴이쩍은 것들이 내 앞을 가로막아 넌덜이 났지만 이를 앙다물고 인내와 감수를 했다. 이제는 선택 때문에 머리를 싸맬 일이 없어 좋고, 하기 싫으면서도 해야 하는 허깨비 같은 과거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 누구 말따나 내 꼴리는 대로 산다. 그래서 나는 지금이 좋다. 그뿐인가? TV다큐‘인생 정원’83세 안홍선 아줌씨의 “풀밭에서 노는 인생이 가장 좋은 인생이거든” 하는 말처럼 고삐 풀린 말처럼 온 산천을 멋대로 누비며 즐길 수 있어 좋다. 삶에서 누리는 정말 좋은 것들은 모두 공짜였다. 시시때때로 변하는 하늘, 달콤한 공기, 어디나 찾아주는 환하고 투명한 햇살, 목에 팔에 비단결처럼 감기며 나뭇잎을 흔드는 바람, 그리고 공원의 벤치와 운동기구 까지도 내 마음대로다. 굳이 억매여 삽질할 일이 없어 복장이 편안하다.
모드 르안이 ‘파리의 심리학 카페’에서‘이 세상 모든 사람을 만족시키려는 것은 미친 짓입니다.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 아닌 그저 당신 자신에게 좋은 사람이 되세요.’라는 말이 요즘 한창 유튜브를 달구고 있는 유튜버 박막례를 보면 고개가 끄덕거려진다. 특유의 구수한 입담과 솔직한 태도가 매력적이다. 툭툭 던지는 말은 묘하게 위로가 되기도 한다.
"남한테 장단 맞추고 살지 말어. 너 하고 싶은 대로 북 치고 장구 치다 보면 그 장단에 맞추고 싶은 사람들이 와서 춤추는 거여"
이미 1300년 전 중국 당나라의 시인 왕유도 오언율시 ‘중난산 오두막’에서 자신을 소중히 여기라 갈파했다. 누구말따나 살아 있다는 건 참 아슬아슬하게 아름다운 일이다. 나도 이제 미네르바의 부엉이처럼 살아가련다. 게다가 매달 25일이면 몇 푼 되지 않는 연금이지만 온전히, 또 한 달 아낌없이 즐기라고 또박또박 주는데야 콧노래가 안 나오고 베기랴. 노자가 말한 '지족상락'이라 반려견을 앞세워 집을 나설 때면 세상 부러울 게 읎다.
“즐거운 곳에서는 날 오라 하여도, 내 친구는 예쁜 강아지. 사랑이 뿐이네….”
첫댓글 "나는 지금이 좋다"는 자네의 말에 공감하네.
나 역시 지나간 세월을 뒤돌아 보며 이젠 자유로운 인생을 만족하며 살고 있네.
이 땅에 소풍 와서 아내를 만났고 아들 2, 딸 1 낳고 즐겁게 살다가는 인생...
세계 50 개국 여행도 가 보았고, 이젠 사후에 천국 구경할 미래만 남았네 .
한마디로 불부다 ! ! !
나도 그런 것 같다. 육신이 불편한 점도 있지만 정신이 아직은 맑으니 다행이고 불편한 곳 이 있으니 까불지 못하고 나이가 많으니 애증의 번민에서 벗어나 관조하는 세계가 아름답게 보이기 까지 하다. 내가 사랑하고 필요 한 것은 내 주위에 다 있다. 그리운 사람들, 하늘 바람 별 바다 파도 들꽃, 산밭에서 맞이 하는 햇빛 과 맑은 공기.
먹고 싶은 음식,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자유, 넉넉한 시간 등, 내 평생에 이런 때가 있었던가.싶다.지금이 딱 좋다. 제홍이가 쓴 글이 있는가 싶어 .카페를 들여다 보고 그가 쓴 글이 있으면 반갑게 읽는다 글 속에서 저 만치 떨어져 있는 자신을 보기도 한다. 간섭 받지 않고 사는 삶 그리고 자유, 자연 .흘러 간 사랑, 모두가 꿈이고 그리움이고
행복이다.
역시 바다 위를 노니는 갈매기는 자넬 닮았다.
자네의 글처럼,
" 간섭 받지 않고 사는 삶 그리고 자유, 자연 .흘러 간 사랑, 모두가 꿈이고 그리움이고 행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