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흘 전 17일, 대구지역 사범동기들은 부산 여행을 다녀왔다. 아내가 출발지까지 태워다 주었다. 반월당 현대백화점 앞마당은 이미 동기들이 모여 웅성거리고 있었다. 내리려다 시간이 좀 있기에 차 안에서 동기들의 면면을 먼빛으로 차근차근 살펴보았다. 나는 젊은 날의 대부분을 바닷가 학교에서 근무하였다. 노를 젓는 동안 섬들이 나타났다가 사라지듯 보통 친구들 또한 그러했지만 눈앞에 서성이는 동기들은 남달랐다. 생의 한 시절을 함께 건너며 기억의 창고까지 공유하면서 크루아상처럼 달콤한 세월을 보내었다. 고대 로마의 철학자 키케로는 “친구는 나의 기쁨을 배로하고 슬픔을 반으로 한다.” 했던가. 그들이 있기에 나의 오늘이 있지 않나 생각하니 빨리 내려 동기들의 손을 잡고 싶었다.
나는 내려 친구들의 손을 일일이 잡고 마구 흔들었다. 친구의 눈동자 속에 나의 젊은 날의 꿈이 서려있었다. 친구에게는 “힘이 돼줘라. 미소를 잃은 친구에게는 당신의 미소를 줘라”는 미국 작가 지기 지글러의 말을 따르듯, ‘친구에게 웃어 주는 사람이 친구에게 우유를 건네는 사람보다 낫다’는 탈무드를 실천이라도 하듯. 입이 저절로 벌어져 닫히지 않았다. 그러는 나에게 영국 시인 앨프리드 테니슨의 시 참나무(The Oak)가 떠올랐다.
네 인생을 살아라,
젊거나 늙거나,
저 참나무처럼,
봄날엔 밝게 타오르는
황금빛으로 살다가;
...
나뭇잎들이
기어이 다 떨어지고
봐라, 그는 서있지
나무의 몸통과 가지
벌거벗은 맨몸의 힘으로.
“우리는 인생이라는 여정을 걸어가고 있다. 때가 되면 이 여정은 끝이 나겠지만, 살아 있는 동안 현실을 천국으로 만들기 위해서 당신에게는 좋은 동료나 동반자가 필요하다.” 정신과 전문의이자 미국 UCLA 임상교수 주디스 올로프가 쓴 ‘하루 한 페이지 마음 챙김’ 중 한 구절이다. 그러면서 올로프는 이렇게 글을 마무리한다. “함께 걷는 사람들에게 좋은 동반자가 되자. 그들의 존재에 감사하고, 그들이 당신의 짐을 나누듯 당신도 그들의 짐을 나눠 들자. 모든 사랑과 웃음을 함께하자.”
나는 동기들이 항상 자랑스러웠다. 한참 전이었던 것 같다. 어느 자리에서 춘파(김대수)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어느 사범 동기들은 벌써 반은 저 세상으로 떠났다고 하는데 우리 동기들은 아직도 4/1이 채 안 된다. 왜일까?” 내가 그 말을 바로 받았다.
“우리 동기들은 머리가 좋잖아. 경북북부지방의 수재들 아이가. 머리가 좋으면 자제력이 있기 마련이고 자신을 컨트롤하기 때문에 오래 사는 기라.”
그래서인가! 우리 동기들은 중병이 걸려도, 정화진의 말처럼 저승에 갔다가도 되돌아왔다. 내가 힘주어 손을 마주잡고 흔들어 댄 이희경, 임정호, 류동성이 다 역전의 용사들이다. 전쟁터에서 중상을 입고도 회복되어 친구들 곁으로 돌아온 꺼떡나이 이봉창이었다. 나는 또 우리 여행에 처음으로 참여한 김시조, 김창수, 강성우의 손을 잡고 놓지 않았다.
해운대에서 송정역까지 가는 해변 열차는 정말 환상적이었다. 날씨 탓인가 바다는 보기 드물게 마법 같은 고요로 자신의 욕망을 그저 잔잔한 일렁임으로 호흡을 조절하고 있을 뿐이었다. 바다의 윤슬이 흡사 매끄러운 비단을 깔아놓은 것 같았고 멀리 보이는 오륙도에는 하얀 물꽃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 하늘에는 갈매기가 노니고 있었는데 우리 동기 시인 갈매기(김이대)의 글이 떠올랐다.
“간섭 받지 않고 사는 삶 그리고 자유, 자연 .흘러 간 사랑, 모두가 꿈이고 그리움이고 행복이다"
차창 탓인가 파도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내 젊음을 받아들였던 구룡포 등대 밑에서 저희끼리 다정스레 남실거리며 재잘대던 갯바위의 순한 파도소리가 모래처럼 쌓여 귀가 간지러웠다. 열차는 역마다 서곤 했는데 오랫동안 정차했더라면 나는 바다에 뛰어들어 자맥질을 했을지도 모른다. 정자에서 맛있는 회를 먹고 귀갓길에 올랐다.
돌아오는 길에는 젊은 날을 생각하며 노랫가락을 뽑았다. 한마음(윤충언)은 아직도 목소리가 맑았다. 늦게 배운 그림 솜씨를 보고 탄복한 적이 있었는데 가수나 화가로 길을 나섰더라면 큰길을 냈을 것이다. 총경(강순경)은 사실 옛날에는 음치였다. 그런데 요사인 감정까지 넣으며 한가락 한다.몇 년 만에 여행에 동참한 소언(배영일)은 ‘아리랑 목동’을 불렀다. 배호의 음성을 빼닮은 친구의 노래는 역시 녹슬지 않았다. 우린 학창시절부터 가깝게 지냈는데 나는 스트레스가 쌓이면 친구에게 노래 청하곤 했었다. 친구가 학창시절 가르쳐준 ‘백년 설’은 지금도 흥얼거린다.
마지막에는 내게 노래할 차례가 돌아왔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이여서 술이 달아 여러 잔 마셨더니 취기가 돌았다. ‘오늘은 술이 너무 달다/ 시린 가슴에 바람이 분다’로 시작해 ‘힘이 들 때 부르면 어디든지 달려온/ 네가 정말 최고 친구야’로 끝나는‘최고 친구’를 부르려했는데 입에선 익숙하지도 않는 근자에 나온 나훈아의‘인생 소풍’이 흘러 나왔다.
“바람 불어도 비가 내려도 가는 데까지 가보는 거야. 인생소풍 다 그런 거 아닌가”
옛말에 80에 들어서서 남은 수명은 남은 이빨 수와 맞먹는다 했다. 허나 요즘은 임플란트를 하니 꼭 그런 것만은 아닌 거 같고, 그래서 나는 이빨 대신에 남은 친구의 수만큼 수명이 연장 된다고 굳게굳게 믿는 쪽이다. 그러고 보면 이번 여행에 26명이 참여했으니 나 빼고 25명이라, 나는 앞으로 25년을 더 살 수 있다고 굳게굳게 믿는다. 자, 그러면 몇 살인가? 109 살이네. 하~ 우리 회장님(김이대) 감사, 감사하오이다. 그리고 참여한 친구들 감사, 감사하오이다.
친구야
부르기만 해도
찬 가슴 풀무질하듯 데워지고
젊은 날 추억이
모락모락 피어난다
보고파, 보고파
손가락 꼽다가 쥐 난 손
니 손이 약손인가
잡으니 풀리는구나.
친구야
너는 나고
나는 너다
너의 눈동자 속에
나의 젊은 날의 꿈이 서려있고
나의 눈동자 속에
너의 오늘이 소록이 담겨 있구나
친구야,
오늘은
부모 회갑에 검댕이 칠한
철없는 아이마냥
명륜동 뛰놀던 까까머리 되어
반백년을 되돌리자
마음도 몸도 툭 까집어 털고
서로 보듬어 안아서
칡넝쿨처럼, 연리지처럼, 뫼비우스의 띠처럼
첫댓글 동영상을 보는 것처럼 써내려 간 글 잘 보았네.
화려한 문장과 기억력에 감탄을 금할 수 없네.
25년 남은 인생에 나도 끼워주면 안될까? ㅎㅎㅎ.
참 그러고 보이 여행 좋아하는 자네가
이 번 모임에 끼워야 빛이 나는데 거 까지 생각 못했네
내년엔 필히 연락할 테니 참석해 주시게나
말씀만 들어도 감사하네.
대구 동기님들 앞날에 장수의 축복과 영광이 있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