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일 대구 동기회를 마치고 친구 사무실에 들러 바둑을 한판 두고 죽전역을 빠져나오는데 누가 나를 불러세웠다. 돌아보니 후배 둘이 술이 거나한 채로 팔을 마구 흔들었다. 내가 반가워하자 그들도 반색하며 막무가내로 한잔하잔다. 그들과는 현직에 있을 때나 퇴임 후에도 술자리를 더러 한 터였다. 같은 학교에 근무도 했던 S가 말했다.
“여기 오리요리 잘하는 식당을 제가 잘 압니다.”
지난날 같은 학교에 근무하면서 소고기는 공짜라도 먹지 말고, 돼지고기는 주면 먹고, 오리고기는 찾아가며 먹으란 내 농담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는양했다. 나는 양팔을 잡힌 채 양순하게 끌려갔다. 선후배 사인 상호허겁 아닌가. 동기회에서도 오리고기를 먹은 터라 그날은 어쩌면 복진 날이었다. 술은 내 취향도 물어보지 않고 소주를 시켰다. 나는 절주 중이었지만 왕년의 내 주량을 아는 후배들이 고분고분할 리 없었다. 더구나 자기들은 전주가 있으니 자기들 한잔에 나는 석 잔을 마시란다. 결국 잔은 주고받고 했지만 나는 오랜만에 마신 탓인지 술이 꽤 올랐다.
술이 좀 과해 보이는 K는 처음부터 끝까지 신세타령이었다. 생을 마감한 배우 최은희가 생전에 입버릇처럼 '난 참 바보처럼 살았다'라고 했듯이 그도 바보처럼 살았다면서 되돌아가기에는 너무 멀리 와버린 지난날들을 돌아보며 가슴을 치며 진한 아쉬움을 토해냈다
“선배, ‘루이스 E. 분’의 인생에서 가장 슬픈 세 가지가 뭔지 알지요? 할 수 있었는데, 해야 했는데, 해야만 했는데 아입니까” K는 자문자답하면서 머리를 상에 꼬나박았다. 순조롭고 무난한 인생보다 치열하고도 파란만장한 삶이 이제와서 훨씬 더 아름답고 보람있게 느껴져 못다 한 일들이 사무치게 후회되는 모양이었다. 옆에 있던 S가 인상을 썼다.
“야, 그만 좀 해라.” S가 민망한지 K의 옆구리를 쥐어박으며 말했다.
“야가 오늘 하루 종일 이 모양입니다.”
어찌보면 소 읽고 외양간 고치기요 버스 지나가고 손 흔들기지만, 후회가 가장 무서운 것은 돌이킬 수 없기 때문이 아닌가. K는 반주 넣듯이 나를 윽박질렀다.
“선배, 말씀 좀 해주소”
나는 딱히 아무 말도 할 게 없었다. 사는 건 겪어내는 일이기에 어느 인생의 삶인들 구비 진 곳이 없으랴. 그들과는 또래로 보이는 ‘야구의 신’ 김성근 감독의 ‘후회하지 마라, 인생은 순간이다’라는 신념이나, 괴테의 ‘처세와 인생훈’ 중 첫째인 ‘지나간 일을 쓸데없이 후회하지 말라’거나, 후회가 사무치고 내 마음에 안 드는 삶일지라도 그것 나름대로 가치가 있고 소중한 삶이라 생각하고 열심히 사는 것이 인생이라고 말해주고 싶었지만, 그는 이미 깜박 취해있어 다 공염불이 될 것 같았다. 나는 그저 바보처럼 히죽거리다 말했다. 조용희의 노래 ‘나에게 쓰는 편지’를 아느냐고? ‘여기까지 오느라/ 많이도 힘들었겠다/ 그래 이만하면 잘한 거야/ 아주 잘 살아왔어.’로 시작하는 그 노래를 들어 보았느냐고? 아니면 언제 한 번 조용히 들어 보라고 했다.
“인생이 찰나와 같은 줄 알면서도 왜 그리 욕심을 부렸을꼬? 이렇게 덧없이 가는 것을….” 미륵으로 자처하던 궁예가 죽으며 남긴 말도 떠올랐지만 ….
가게를 나서니 자욱이 어둠이 내렸고 가로등에는 눈보라가 휘날리고 있었다. 영하의 날씨였다. 다리를 절며 서로를 의지하듯 휘청휘청 걸어가는 후배들을 눈 바래기하고 버스 정류장을 향하다 나는 방향을 틀었다. 집까지 꾀나 먼 길이었지만 걸어가기로 마음을 정해서다. 젊은 날 나는 폭풍이 치거나 폭설이 내리는 날이면 무작정 길을 나서곤 했다. 그런 나를 같이 하숙하던 선생님들은 천둥벌거숭이 취급을 했었다. 내복도 입지 않은 바짓가랑이로 영하의 바람이 기어올랐다. 하나 얼굴을 스치는 눈발은 차라리 시원했다. 후배들이 무슨 숙제를 낸 양 나는 걸으면서도 내내 여러 생각들이 이런성저런성 씹히었다.
우리는 성공한 삶을 살아야만 인생이 행복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아직도 ‘성공한 삶’이 어떤 것인지도 모르는,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라는 거 정도만 아는 맹추지만 …. 사람이란 존재는 완벽히 행복한 삶을 사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본다. 그때 그 선택을 했더라면 아니면 선택을 피했더라면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라는 후회는 평생 갖게 돼 있다. 인간은 틈만 나면 과거와 미래를 향해 달리며 후회하고 불안해한다. 누구든 고독을 오도독 씹으며 자기 자신을 언더독으로 느낄 때가 있게 마련이다. 그러나 우리가 굳이 과거의 미련들을 꺼내어 스스로 상처를 입으며 후회를 안고 살아갈 필요가 있을까.
재산 7조원의 중국 한룽그룹 회장 류한이 49세의 젊은 나이에 사형집행 직전 남긴 말이다.
“다시 한번 인생을 살 수 있다면 노점이나 작은 가게를 차리고 가족을 돌보면서 살고 싶다. 내 야망이 너무 컸다. 인생 모든 게 잠깐인 것을…. 그리 모질게 살지 않아도 되는 것을….”
그는 그러면서 다음같이 말을 맺었다고 한다.
“감나무의 홍시처럼 내가 내 안에서 무르익도록 익을 수 있었으면 좋았을 것을…. 아프더라도 겨울 감나무 끝에 남아 있다가 마지막 지나는 바람이 전하는 말이라도 들었으면 좋았을 걸…. 얼마나 살고 싶었는데….”
생각들이 들락날락하는데 골목모티에서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청년이 영하의 날씨에 반바지 차림으로 성큼성큼 걸어 나오고 있었다. 놀랄 ‘노’ 자였다. 괜찮으냐 물으니 견딜만하다고 했다.
“멋져 버려!” 엄지척을 보이자 히죽거렸다. 내가 젊은 날로 돌아갈 수 있다면 나도 영하의 날씨에 반바지로 거리를 활보하는 것쯤은 하고 싶다. 작고한 이어령 선생의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에서 다음과 같은 글을 본 적이 있다.
“요즘엔 아프니까 밤낮 몸무게를 재거든. 시간에도 무게가 있어. 매일 가벼워지거든. 옛날에는 무거워지는 걸 걱정했는데, 지금은 매일 가벼워지는 게 걱정이야. … 늙으면 한 방울 이상의 눈물을 흘릴 수 없다네. 노인은 점점 가벼워져서 많은 걸 담을 수 없어. 눈물도 한 방울이고, 분노도 성냥불 획 긋듯 한 번이야.” 그는 언젠가 소리 내 한참을 우는 것도 젊은이의 행복이라며,
“내 것인 줄 알았으나 받은 모든 것이 선물이었다.” 고 말했다.
지난날에 대한 후회야 없을 리 있겠나만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그래도 지금이 딱 좋다. 미국 임상심리학자인 메리 파이퍼도 ‘나는 내 나이가 참 좋다’에서 잃는 게 있으면(젊음) 얻는 것도 있다(지혜)며 책 제목처럼 나는 내 나이가 참 좋다고 했다. 그는 또 피할 수 없는 죽음, 고독과 외로움에 대해 '인생에서 슬픔이란 빙빙 도는 계단과 같다'며 그 또한 돌아가리란 기대를 걸고 느긋한 마음으로 남은 생을 보내자고 권유하였다. 아프리카 최남단 '폭풍의 곶'의 다른 명칭이 '희망봉'이라는 은유가 있지 않는가.
“빵! 자동차의 경적에 몸이 날아오를 뻔했다. 바로 등 뒤에 외제차가 인상을 쓰고 있었다. ‘여기가 차돈가’ 중얼거리면서도 골목 가 가로등 밑으로 비켜서 가로등을 올려다보았다. 가로등 불빛에 팔랑이다 어둠 속으로 사위어가는 눈송이가 먼저 간 친구들을 생각나게 했다. 어찌하였거나 팔순 넘어서니 나하고 친하던 친구들이 하나둘 낙엽 지듯 저세상으로 떠나 내리막길 걸어가는 것 같다. 하긴 내리막길 걸어보면 편하긴 하지만 무릎이 접히고 희청거린다. 요즘 내 마음 같다. 이는 노진화 시인의 첫 시집 '외로운 사람은 그림자가 길다'에 실린 외로움에서 그리움으로 이어지는 정서가 주요 모티브인 ‘지나간 사람들’이란 시를 떠오르게 했다.
"어릴 때 소꿉놀이하던 친구들도 지나가고/ 한때 이웃사촌이었던 사람들도/ 지나가서 돌아오지 않는다// 어느 날에는 사랑하는 사람도 지나가고/ 천둥 번개 치듯 엄마 아버지도 핏줄의 연들도/ 다 지나가서 없는 사람이 되고/ 목청껏 의기투합하던 사람들도/ 모르는 사람이 되었네.“
그러고 보니 김광석의 노랫말처럼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다.
이순신 장군은 12척의 배가 아직도 남아 있다고 했는데 나에겐 아직도 동기회 때 만나는 친구가 서른 좌우간이나 된다. 우리 모두 연결된 존재니 얼마나 큰 재산인가. 이제는 정수리에 서릿발이 내린 그들은 무수한 어제를 극복하고 옹이를 가슴에 묻은 채 눈물겹게 아름다운 삶을 이겨내고 오늘을 맞이한 기특한 친구들이다. 우리 모두 자신에게 수고했다고 칭찬해 주자. 참 즐거웠다.
친구들아, 어이 든 동 몸 관리 잘해, 날 위해서라도 오래오래 살아도! 인생은 화장지 두루마리 같아서 끝으로 갈수록 더 빨리 돌아간다고 하지만 나는 남은 그들의 수만큼 앞으로 살아갈 것이다. 하기야 죽음이 겁나나? 우리 모두 결국 같은 곳으로 돌아간다. 미래는 알 수 없지만 모든 건 잘될 거야. 케세라세라.
9600억을 기부한 젊은이들의 영원한 따거 주윤발이 말했다.
“태어남이 있으면 죽음이 있는 게 당연한데 무서울 게 없다” 고. 그러나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는 누구도 혼자라 했다. ‘자기만의 방을 가지라’는 버지니아 울프의 말을 귀담아들을 일이다.
큰길만 건너면 집이었다. 나는 젊은 날 아무 뜻 없이 즐겨 불렀던 최희준의 ‘하숙생’을 청승맞게 휘파람으로 눈보라에 실어 날렸다.
“인생은 나그네길,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
첫댓글 라디오 연속극 주제곡 '하숙생' 불길 속에서 구해준 연인에게 배신을 당하고
얼굴 성형 수술로 변형된 모습으로 그녀 집에 하숙 하면서 복수를 하는 내용,
나는 교직 때 하숙집에서 재미있게 듣던 노래로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인생은 나그네 길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 누구나 인생은 다를 수 있다.
나는 지금이 좋다. 10대 때 초중고 시절, 20대에 가정을 이루고 흘러간 인생 길
이제는 80대 중반 마지막을 보내는 인생 길에 꿈과 믿음 천국의 소망으로 산다...
반석은 잘 살아 온 거야
지금도 잘 살고 있고
훗날 주님도 반석의 등을 다독일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