쇠제비의 눈물
小珍 박 기 옥
친구 따라 강남 간다더니 내가 바로 그 꼴이다. 조류생태학에는 문외한인 주제에 안동호 모래섬에 둥지를 튼 쇠제비갈매기를 찾아 따라나선 것이다. 동물 이름에 '쇠'자가 붙는 것은 그 동물 집단에서 가장 작다는 뜻이다. 쇠제비갈매기는 갈매기과이나 제비처럼 작고 꽁지가 날렵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몸 길이가 28cm 정도이고, 암수 동형이다.
인솔자는 안동 출신의 일간지 권기자이다. 그는 10여년 전 고향 방문에서 한 어부로부터 제비 같기도 하고 갈매기 같기도 한 낯선 새들이 안동호를 찾아오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의 기자적 촉이 발동했다. 쇠제비갈매기는 물과 가까운 건조한 모래 위에 둥지를 만들고 산란하는 새다. 바닷가나 강하구 모래밭에서 작은 물고기를 사냥해 새끼를 기르는 이 바닷새가 왜 안동호 같은 담수호로 번식지를 옮겼을까.
언론과 지자체가 분주하게 움직였다. 한국방송 취재진이 원격 조정 무인카메라를 통해 조사한 결과 낙동강 하구의 대규모 서식지가 쓰레기와 오물로 망가지면서 갈 데가 없어진 쇠제비갈매기들이 이곳에서 새로운 번식지를 찾은 것으로 밝혀졌다.
안동시도 발 빠르게 움직였다. 환경부로부터 4억3000여만원을 지원받아 쇠제비갈매기 생태탐방 인프라를 구축하는 한편 생태관광자원화 사업을 추진했다.
민간인 차원에서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안동댐이 축조된 곳에서 배로 15분 거리에 공무원들과 주민이 삽과 호미로 모래를 깔고 잡초를 뽑아 인공섬을 만들었다. 쇠제비갈매기의 새 번식지로 안동호 안에 약 2000㎡ 면적의 모래섬 두 곳이 생긴 셈이다.
인공섬에는 쇠제비갈매기가 수리부엉이 등 천적을 피할 수 있는 은신처와 새끼들이 수면을 오르내릴 수 있도록 경사면도 마련됐다. 그 뿐인가. 쇠제비갈매기가 인공 모래섬에 과잉 반응할 것을 우려해 쇠제비갈매기와 똑같이 생긴 모형 12개도 설치했다. 실제 쇠제비갈매기 소리를 내는 음향 장치를 주기적으로 틀어 낯선 환경을 경계하는 것도 방지했다.
권기자는 보트를 이용해 우리를 인공섬 주변 탐조(探鳥)용 전망대로 데리고 갔다. 이미 여러 전문가들이 다녀간 모양으로 각종 쇠제비갈매기의 활동 사진들과 연구 결과물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그는 우리를 앉혀 놓고 한참동안 열띈 해설을 했다. 그에 의하면 물가 서식지는 두 가지 약점이 있다고 했다. 첫째는 수위가 높아질 때 둥지가 범람하는 것이었다. 장마철 폭우라도 내리게 되면 물가의 둥지는 불어난 물에 잠겨버리고 아직 날지 못하는 어린 쇠제비갈매기는 공포와 체온 저하로 죽음에 이른다.
다음은 안동호에 사는 수리부엉이, 참매, 왜가리, 수달 같은 다른 포식자가 문제였다. 그중에서도 수리부엉이는 야행성 천적이었다.
설명을 마친 권기자는 우리에게 고배율 관찰 망원경을 통하여 인공섬을 관찰하도록 했다. 우리는 모두 받침대에 올라서서 망원경에다 눈을 붙였다. 세상에나! 인공섬 모래밭에서는 쇠제비갈매기들이 한가롭게 놀고 있었다. 아기새들이 서너마리씩 곰실거리며 모여 있는 곳에 어미새가 날개를 펼쳐 품어주기도 하고, 물속에서 갑자기 아빠새가 솟아올라 빙어를 물어다 주기도 했다. 어미새가 물속 깊이 자맥질한 뒤 물에 적신 몸으로 더위에 지친 새끼의 체온을 식혀주는 장면도 볼 수 있었다..
우리가 망원경에서 눈을 떼기 무섭게 권기자는 쇠제비갈매기를 위한 안동시의 새로운 프로젝트를 공개했다. 안동댐 인근에 쇠제비갈매기 조형물을 설치하고 가상세계와 현실 세계를 오가는 쇠제비갈매기 메타버스(metaverse)센터도 건립할 예정이라는 설명 끝에 문득 생각난 듯이 숨을 고르며 두 손을 모았다.
“최근에는 안동의 시조(市鳥)인 까치가 유해 조수라는 부정적인 이미지가 있어 안동의 명물이 된 쇠제비갈매기를 시조로 바꾸자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네요.”
우리는 잠시 어리둥절했다.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 선뜻 가늠이 되지 않았다. 쇠제비의 인기가 어느새 시조(市鳥)를 갈아치우기에 이르렀단 말인가.
점심으로는 권기자가 직접 끓인 쏘가리 매운탕을 먹었다. 식당에서 재료를 구입해서 물만 부어 끓였다고는 하나 맛이 기가 막혔다. 후식으로 믹스 커피까지 나왔다. 전망대를 에워싼 소나무 사이로 초여름의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우리는 댐을 바라보며 커피를 마셨다.
”그런데 ~“
일행 중 누군가가 ’종(種)의 위기‘를 화제로 올렸다. 신문에서 쇠제비갈매기가 올 1월 환경부로부터 멸종위기 2급으로 지정되었다는 기사를 읽었다고 했다. 쇠제비갈매기는 해마다 4월에서 7월 사이 호주에서 만km를 날아오는 대표적인 여름 철새다. 쇠제비갈매기 최대 서식지였던 낙동강 하구는 매년 최대 6천여 마리씩 찾아왔지만, 2010년대 들어 개체 수가 30마리 밑으로 급감했다.
원인은 인간에게 있었다. 일부 몰지각한 산악 오토바이 이용자는 쇠제비갈매기의 서식지에서 오토바이를 타고 질주하면서 둥지를 파손하는 사례도 있었고, 사진 동호인들은 사진을 찍으려는 욕심에 새끼가 둥지 밖으로 나가지 못하도록 모래를 쌓거나, 밖으로 나간 새끼를 손으로 집어 다시 둥지 안에 집어넣기도 했다. 심지어 새끼가 도망가지 못하도록 줄로 다리를 묶어놓고 사진을 찍는 경우도 있었다고 하니 이 일을 어찌할까.
이야기를 듣다 보니 나에게도 아픈 기억 하나가 떠올랐다. 다문화가정 주부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칠 무렵이었다. 한국남자와 결혼한 일본, 중국, 태국, 베트남 여성들이 주류를 이루었다. 그중에 미모가 뛰어난 캄보디아 여성이 있었는데, 남편이 한국어 습득을 극구 반대했다. 이유를 물으니 한국말을 익히는 순간 ’손을 타기 시작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인내심을 가지고 남편을 대상으로 설득작업을 벌였으나 먹혀들지 않았다. 남편은 가는 곳마다 아내를 데리고 다니면서 사진도 찍고 자랑은 하면서도 그녀가 한국문화 속으로 들어오는 길은 강력히 막았다. 자기만의 소유로 여겨 자기만의 이기적 방법으로만 아내를 사랑한 것이었다. 결국 그녀는 1년이 못 가 심한 우울증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말았다. 그녀의 눈물을 누가 알까. 남편인들 이해했을까.
해가 뉘엿뉘엿 지려고 하여 우리는 전망대에서 자리를 떴다. 약속이나 한 듯 마지막으로 망원경에 한 번씩 눈을 가져갔는데, 인공섬의 새들은 어여쁘고 평화로웠다. 이제 두어 달 후면 새들은 만km를 날아가 고향인 호주, 뉴질랜드에 고단한 몸을 누일 것이다. 그때까지 눈물 없이 잘 살아남기를. 내년 이맘때면 다시 만날 수 있기를.
첫댓글 쇠제비갈매기가 더 이상 주위로 부터 해를 당하지 않고 안전하고 평화롭게 잘 지내다가 호주로 날아가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함께 간 동행인으로서 선생님이 자랑스럽습니다.
세상에 이렇게 작고 이쁜 새가 ~.
두어 달 후면 새들은 만km를 날아가 고향인 호주, 뉴질랜드에 고단한 몸을 누이겠지요.
그때까지 눈물 없이 잘 살아남기를요.
쇠제비갈매기가 그렇게나 멀리 나는 군요. 호주, 뉴질랜드까지 날아간다니~^^ 인간임을 반성하게 되는 글임과 동시에 새의 세계를 한번더 알게되었습니다.
함께 갔으면 정말 좋았을 뻔 했어요.
댓글, 고맙습니다.
그렇게 작은 새가 어떻게 그 멀리서 날아오는지 을숙도에 모래톱이 사라지면서 그들은 자기들이 새끼를 치고 한철 살수있는 곳을 찾아 내륙인 안동까지 왔는지. 모든게 신기했습니다.
그래요.
좋은 경험이었어요.
감사!
TV에서 소개할 때 본 적이 있는데,
더 자세한 내용을 알게 되어 감사드립니다.^^
KBS에서 특집으로 다루었지요.
저는 이번에 조선일보 권기자의 안내로 갔는데
좋았답니다.
수필도 한 편 건지고. ㅎ
안동호 모레섬은 가 보지 못했지만,
그곳에 서식하는 쇠제비갈매기를 본듯합니다.
좋은 글 잘 보았습니다.
함께 갔으면 김성문표 쇠제비가 나왔을텐데. ㅋ
내고향 안동의 따뜻한 이야기를 미소 지으며 읽었습니다.
고향가면 가볼곳이 또 생겼네요.
이래서 글은 써서 공유함이 옳는것 같습니다.
소진선생님의 짤깃한 글맛에 오늘도 잘 읽고 갑니다. 🍎 💕
댓글 감시합니다.
안동이 고향이시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