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라 닐 허스턴>
1901(?)년 미국 최초의 흑인 자치 도시인 플로리다 주 이튼빌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이튼빌의 시장이고, 목수이고, 침례교회의 목사였다. 그녀는 흑인들 스스로 세운 흑인들만의 도시인 이튼빌에서 자기 긍정의 정신과 독립적이고 자긍심 있는 흑인 공동체와의 일체감을 배우며 어린시절을 보냈다. 이때의 경험은 이후 그녀의 삶과 작품 세계에 중대한 영향을 끼쳤다. 어려서 어머니가 죽자 심한 단절감을 맛본 허스턴은 10대에 유랑 극단을 따라 고향을 떠난 이후 여러 직업을 전전하면서 고학으로 하워드 대학과 바나드 대학을 졸업했다. 대학에서 문화인류학을 전공한 그녀는 인류학자로서 흑인 민속이 학문적으로 연구할 가치가 있는 인류 문화의 중요한 자산임을 대중에게 인식시킨 공을 인정받고 있다.
1919년에는 하워드 대학에 들어갔고, 1921년에는 대학의 문학잡지인 스타일러스에서 단편을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한 허스턴은 모두 4편의 장편소설과 36편의 단편소설, 그리고 한 편의 희곡과 자서전을 발표하였다. 발표 당시에는 문단으로부터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하였다,
문학 활동과는 별개로 버나드 대학에서 당시의 저명한 인류학자 프랜즈 보아스에게서 인류학과 민속학을 공부했다.
허스턴은 1920년 후반에서 1930년 대 초반까지 남부 흑인의 민담, 설화, 노래, 속담, 금언, 공예 등을 연구했다. 1935년에는 자기들이 수집한 자료로서 ‘노새와 사람들’을 출판했다.
1934년에는 그의 첫 번 소설 ‘요나의 호리병박 호박덩굴’을 1937년에는 그의 대표작인 ‘그들의 눈이 신을 바라보고 있다.’를 출간했다. 그후에 여러 소설을 발표했다.
그러나 그를 바라보는 눈이 모두 긍정적인 것은 아니었다. ‘그들의 눈이----’를 발간했을 때는 혹평도 있었다.‘인종문제’라는 정치적 이슈를 다루지 않고 오직 백인 독자를 만족시키기 위해서 글을 썼다고 했다.
허스턴의 마지막 20년은 문학적 명성에도 불구하고 육체적, 정신적으로 심한 고통 속에 살았다. 경제적 어려움으로 가정부로서 살아갔다. 그는 꾸준히 보수 성향의 글을 썼다. 그러나 마지막까지도 부두교에 관한 글을 쓰는 등 흑인문화에 애착을 가지고 있었다.
백인 우월주의로 KKK가 설치고, 흑백차별이 공공연히 이루어지고, 고등교육을 받은 흑인여성이 일할 곳은 거의 없었다.
말년에는 투병 생활과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불행하게 살다가 1960년 플로리다의 한 복지원에서 심장병으로 생을 마감하였다.
1970년대 들어 흑인 여성 문학이 하나의 뚜렷한 비평적 흐름을 형성하면서, 허스턴은 앨리스 워커와 토니 모리슨, 토니 케이드 밤바라로 이어지는 흑인 여성 문학의 전통에서 선구적인 위치에 자리매김 되었다. 1990년대 들어 그녀의 작품들은 미국 대학의 교양 필독서로 손꼽히며 새롭게 조명받고 있다.
그녀의 대표작으로는 『그들의 눈은 신을 보고 있었다』를 비롯하여 장편소설 『요나의 박넝쿨Johah’s Gourd Vine』, 민속 연구서 『노새와 사람들Mules and Men』 『내 말에게 전하라Tell My Horse』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