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팔아서 먹고 산다?
어린 시절의 꿈이 작가였고 그때나 지금이나 그 꿈 외엔 다른 꿈을 꾼 적이 없다.
그것도 그냥 글만을 쓰는 작가가 아니고, 글을 써서 먹고 사는 작가가 되길 꿈꾸었다.
오랜 나날이 흘러서야 그 꿈이 이루어져, 글을 써서 밥은 먹고 사는 작가가 되었지만
이 땅에서 글을 써서 먹고 사는 것은 진실로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옛사람들도 글을 써서 번 돈은 냄새가 너무 심하다고 했는지도 모르겠다.
“소시蘇詩(소동파)에 “글을 팔아서 먹고 산다(本寶文爲活)”하였고,
밭이 없어서 깨진 벼루로 먹고 산다.(無田食破硯) 라고 하였다.
대체로 옛 사람이 학문을 하는 것은,
본래 세상에 쓰고자 한 것이지만,
그렇게 되지 않더라도 오히려 몸을 길러갈 재료를 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의 풍습은 뛰어난 재주(才華)를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다.
지금 현존한 사람으로서 차천로車天輅.를 비롯한 여러 사람들이
글을 지어도 일전一錢도 벌지를 못하여 항상 밥이 부족한 한탄이 있으니,
비록 깨진 벼루 가 있은들 어찌 먹을 수가 있겠는가. 나는 그것을 슬퍼한다.“
허균의 동서이자 문장가였던 이수광의 <지봉유설>에 실린 글이다.
예나 지금이나 글을 쓰는 것도 어렵지만 글을 써서 인세를 받아서 산다는 것은
어렵고도 어려운 일이다.
글이라는 것이 세상에 고루 쓰이면서도 길이 남을 글은 더욱 더 사람들에게 다가가기 어렵고, 그저 편하게 가려운 데를 그것도 조금씩 긁어주는 글만 사랑을 받는 세상이니,
시인도, 소설가도, 나 같은 인문학자도 마찬가지로 글을 써서 먹고 살기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하물며 조선 중기 선비들은 말해 무엇 하랴,
하지만 그때는 글을 쓴다는 자부심이라도 있었고,
세상이 뭐라 해도 내 길만 가겠다는 사명감이라도 있었기 때문에 글을 썼다.
지금은 이도 저도 아니다.
가끔씩 혼자서 자조自嘲하며 먼 데를 바라 볼 수밖에 없으니,
어디 오늘의 일 뿐이겠는가?
“아름다움은 영원한 기쁨이다“ 라는 명구를 남기고 요절한 존 키츠도
“세상은 내게 너무 잔인하다.”라는 글을 남겼으니,
세상은 항상 불균형 속에서 균형을 찾지만
균형이나 정도正道는 존재하지 않는
신기루 같은 것이 아닐까?
2024년 3월 1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