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 사 ‧ 각 ‧ 오
순교자 주기철 목사님께서 신사참배를 강제하는 왜놈들에게 맞서
죽음을 각오하고 신사참배를 거부하였던 신앙 투쟁의 목표였습니다.
왜놈들이 신사참배는 신에게 참배하는 것이 아니고 국가의식이라는 말로
회유하는 말과 겁박에 의해 천주교 신부들은 신사참배를 하기로 결의하였고,
다수의 목사들이 신사참배를 거부하면 감옥에 처넣겠다는 왜놈들의 협박에
굴복하여 신사참배에 응하기로 결의하였지만,
주기철 목사님께서는 일 ‧ 사 ‧ 각 ‧ 오의 신념으로 신사참배거부 신앙 투쟁을
하시다가 1938. 02. 08. 왜놈들에 의해 체포가 되였고,
이후 평양형무소에서 옥중생할을 하시다가 1944. 04. 21. 21시30분경,
49세를 일기로 7년간의 옥중 투쟁을 끝으로 주의 품에 안기시어 순교의
제물이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주기철 목사님께서는 몸소 일 ‧ 사 ‧ 각 ‧ 오의 십자가를 지시고
신사참배를 거부하는 신앙 투쟁을 하시다가 죽음으로 교회가 나아갈 길을
인도하셨던 것입니다.
매국노놈들이 2,000만 동포의 주권을 왜놈들에게 팔아서 이권을 챙겨 사리사욕으로
배떼기를 채우기 위하여 눈을 벌겋게 부릅뜨고 날뛰고 있을 때,
1909년 10월 26일 09시 10분경, 하얼빈역에서는 “탕 탕 탕 탕” 네발의 총성이
울렸고, 총성과 동시에 ‘이토 히로부미 왜놈 총독’이 현장에서 쓰러졌으며,
러시아헌병들이 안중근 의사를 몸으로 덮치자 안중근 의사는 ⌜코레아 후라⌟,
⌜코레아 후라⌟, ⌜코레아 후라(대한제국 만세)⌟를 세 번 외치며 체포되었다.
당시 프랑스기자는 “2억여 명의 인구를 가진 중국인이 못하는 일을,
2,000만 동포를 가진 조선인이 해냈다.”라는 논조로 세계에 알렸고,
안중근 의사는 왜놈 순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살해한 경위에 대한 신문에,
1. 명성황후를 시해한 죄요.
2. 고종 황제를 폐위시킨 죄요.
3. 5조약과 7조약을 강제로 체결한 죄요.
4. 무고한 한국인을 학살한 죄요.
5. 정권을 강제로 빼앗은 죄요.
6. 철도, 광산, 산림, 강산을 마음대로 빼앗은 죄요.
7. 제일은행권 지폐를 마음대로 사용한 죄요.
8. 군대를 해산시킨 죄요.
9. 교육을 방해하고 신문 읽는 걸 금지시킨 죄요,
10. 한국인이 일본인의 보호를 받고자 한다고 세계에 거짓말을 퍼뜨린 죄요.
11. 동양평화를 깨뜨린 죄요.
12. 일본 현 천황의 아버지 고메이를 죽인 죄요.
라고 당당하게 진술하였다.
안중근 의사는 1910년 03월 26일 여순감옥에서 사형이 집행되었다.
당시 안중근 의사의 나이 불과 32세였다.
안중근 의사는 면회를 온 동생들에게 “나의 시신을 하일빈 공원 옆에 묻어 두었다가
조국이 독립되면 고국으로 가져다가 고국땅에 묻어다오”라고 유언하였지만,
왜놈들은 사형 집행 후 끝내 시신을 가족에게 인계하지 않고 당시 여순감옥 뒷산에
있는 수인 묘지 어디인가에 묻었다는데,
무덤을 찾지 못하는 관계로 아직까지 유해를 고국의 품으로 모셔 오지 못하고 있다.
여기 안중근 의사가 감옥 관리들의 부탁으로 써 준 붓글씨 중에서
하나의 글을 올리고자 합니다.
국가안위노심초사 : 나라의 안전과 위험을 걱정해서 애를 쓰고 속을 태운다.
불의에 항거하였던 순교자 주기철 목사님과 안중근 의사와 같이 왜놈들의 탄압에
굴하지 아니하고, 왜놈들의 불의와 투쟁하였던 우리 선조들의 용감한 행동이 있었기에,
오늘날 대한민국이 분단국가라는 비극적인 상황에서도 세계의 선진국가들과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할 수가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3‧1절을 보내면서 두 분이 생각나서 올려보았습니다. 이해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렇습니다. 고 김대중 대통령님께서는 불의를 보고도 행동하지 않는 것은
곧 패배이고 죄악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행동하는 양심]을 즐겨 쓰셨지요.
회원님들, 이제 개나리가 피고, 벗꽃이 피는, 새 생명이 돋아나는 봄이 왔습니다.
회원님들 가정에 생명의 힘이 넘치시는 희망찬 봄을 맞으시기를 축원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