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0월 17일 화요일 안티오키아의 성 이냐시오 주교 순교자 기념일
<자선을 베풀어라. 그러면 모든 것이 깨끗해질 것이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1,37-41
그때에 37 예수님께서 다 말씀하시자, 어떤 바리사이가 자기 집에서 식사하자고 그분을 초대하였다.
그리하여 예수님께서 그 집에 들어가시어 자리에 앉으셨다.
38 그런데 그 바리사이는 예수님께서 식사 전에 먼저 손을 씻지 않으시는 것을 보고 놀랐다.
39 그러자 주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정녕 너희 바리사이들은 잔과 접시의 겉은 깨끗이 하지만,
너희의 속은 탐욕과 사악으로 가득하다.
40 어리석은 자들아, 겉을 만드신 분께서 속도 만들지 않으셨느냐?
41 속에 담긴 것으로 자선을 베풀어라. 그러면 모든 것이 깨끗해질 것이다.”
예수님을 도마에 올려놓고 떠드는 재미
나는 나름대로 예수님을 흉보고 싶습니다. 예수님을 설명하는데 이렇게 해도 괜찮은지 나도 잘 모릅니다. 그런데 이런 설명을 붙였다고 나를 야단치시고, 지옥으로 몰아넣으실 분이 아니시라는 것을 믿기 때문에 손자가 할아버지의 수염을 잡아서 뽑아내듯 예수님을 붙잡고 흔들고, 넘어뜨리고, 매달려 보고 싶습니다.
1. 예수님은 참으로 지저분한 것을 모르시는 분입니다. 식사를 하시기 전에 손을 씻지도 않으시고, 소경을 눈 뜨게 하실 때도 침을 뱉어 진흙을 짓이겨 눈에 붙이시고, 나병환자를 가까이 하시고, 죽어서 며칠이 지난 송장을 일으켜 세우기 위해서 무덤으로 들어가시더니 돌아가실 때는 악당들의 침과 당신의 피와 땀으로 범벅이 되시고, 복음을 선포하시고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며칠을 씻지도 못하시고, 땀으로 범벅이 된 속옷을 어머니께 빨래 해달라고 부탁도 하시지 못해서 땀 냄새가 풍풍 날 것이니 그분은 지저분하시고, 지저분한 것을 모르시는 분 같습니다.
2. 예수님은 참으로 못 말리는 교육자이십니다. 당신이 아무리 가르쳐도 도대체 배울 생각이 없는 바리사이들을 뻔히 알고 계시면서 그들을 가르치시려고 그렇게 여러 가지 교육사례를 만들어 주십니다. 각각의 사례마다 아주 역설과 반론을 제시하시지만 머리 나쁜 바리사이들이 알아들을 수 없는 말씀을 자주도 하십니다. 교육자들은 제자들을 잘 뽑아 가르치고 싶은데 주님은 그런 기대를 아예 포기하셨는지 가능성이 없는 사람들을 위해서 언제나 바른 교육을 펼치시려고 하시니 분명 지금이나 그 때나 전혀 예측할 수 없는 못 말리는 교육자이십니다.
3. 예수님은 몽상가(夢想家) 이시라는 생각입니다. 하늘나라를 설명하시면서 한 사람도 빠짐없이 구원하시려고 겉과 속이 전혀 다른 바리사이들에게까지도 구원을 펼치시는 것입니다. 그렇게 세상 모든 사람을 구원하시려고 십자가에 달려서 죽기까지 그렇게 사셨으니 분명 몽상가일 수밖에 없습니다.
4. 예수님은 인간관계가 정말 좋지 않으신 분입니다. 아부도 모르고, 눈치도 없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그 당시에 권력자들인 바리사이들과 언제나 다투시고, 나무라십니다. 그래서 그들과 앙숙이 되시고, 드디어 그들의 손에 돌아가실 계획이시고 그렇게 돌아가셨으니 그분의 대인관계는 정말 못 말리는 관계를 만들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들이 자선을 베풀지 않는 것을 대놓고 꼬집고, 자선을 베풀라고 말씀하시니 그들이 좋아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당신은 우리에게 인간관계를 잘 가지라고 말씀하시니 전혀 앞뒤가 맞지 않는 말씀을 하십니다.
5. 예수님은 못 말리는 내숭 떠는 분이십니다. 바리사이들이 어떻게 나올지, 그들의 생각을 속속들이 전부 알고 계시는 분이 또 부딪치고 또 문제가 될 것을 아시면서도 전혀 모르시는 척 하시고 바른말을 하십니다. 그래서 또 문제를 일으키십니다. 다만 아주 가느다란 희망도 버리지 못하시고 그 희망에 매달리시는 분이시라는 것은 우리가 잘 알고 있습니다.
나는 개인적으로 예수님의 그 약점을 너무 좋아합니다. 너무 고집이 세시고, 너무 억지를 잘 부리시며, 한꺼번에 모든 세상을 바꾸시려는 예수님의 그 과감하고 과단성 있는 전략을 흠모할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은 정말 수많은 약점을 가지고 계시며, 그 약점을 세상 사람을 사랑하시고, 구원하시려는데 전부 투입하시려는 분이십니다.
주님, 당신의 그 약점을 사랑합니다. 그 때문에 제가 주님을 믿고 의지하며, 따르고 있답니다. 엉터리 같은 저를 받아주소서. 당신의 사랑하는 품으로 안아주소서. 자비의 주님!!
<사람들은 하느님을 알면서도 그분을 하느님으로 찬양하지 않았습니다.>
▥ 사도 바오로의 로마서 말씀입니다. 1,16-25
형제 여러분, 16 나는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복음은 먼저 유다인에게 그리고 그리스인에게까지,
믿는 사람이면 누구에게나 구원을 가져다주는 하느님의 힘이기 때문입니다.
17 복음 안에서 하느님의 의로움이 믿음에서 믿음으로 계시됩니다.
이는 성경에 “의로운 이는 믿음으로 살 것이다.”라고 기록된 그대로입니다.
18 불의로 진리를 억누르는 사람들의 모든 불경과 불의에 대한 하느님의 진노가
하늘에서부터 나타나고 있습니다.
19 하느님에 관하여 알 수 있는 것이 이미 그들에게 명백히 드러나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하느님께서 그것을 그들에게 명백히 드러내 주셨습니다.
20 세상이 창조된 때부터, 하느님의 보이지 않는 본성 곧 그분의 영원한 힘과 신성을 조물을 통하여
알아보고 깨달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변명할 수가 없습니다.
21 하느님을 알면서도 그분을 하느님으로 찬양하거나 그분께 감사를 드리기는커녕,
오히려 생각이 허망하게 되고 우둔한 마음이 어두워졌기 때문입니다.
22 그들은 지혜롭다고 자처하였지만 바보가 되었습니다.
23 그리고 불멸하시는 하느님의 영광을 썩어 없어질 인간과
날짐승과 네발짐승과 길짐승 같은 형상으로 바꾸어 버렸습니다.
24 그리하여 하느님께서는 그들이 마음의 욕망으로 더럽혀지도록 내버려 두시어,
그들이 스스로 자기들의 몸을 수치스럽게 만들도록 하셨습니다.
25 그들은 하느님의 진리를 거짓으로 바꾸어 버리고, 창조주 대신에 피조물을 받들어 섬겼습니다.
창조주께서는 영원히 찬미받으실 분이십니다. 아멘.
축일10월 17일 성 이냐시오 (Ignatius)
신분 : 주교, 순교자, 교부
활동 지역 : 안티오키아(Antiochia)
활동 연도 : 35?-107년경
같은 이름 : 이그나티오, 이그나티우스, 이냐시우스
초대교회의 사도 교부이자 순교자로서 일명 ‘테오포로스’(Theophoros, ‘하느님을 모시고 다니는 사람’이란 뜻)라고 불리는 성 이냐시오의 생애에 대해 알려진 것은 별로 없다. 아마도 그는 시리아 출신인 듯하며, 사도 성 요한(Joannes)의 제자였음이 분명하고,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사람이다. 에우세비우스(Eusebius)의 “교회사”에 따르면, 그는 사도 성 베드로(Petrus)와 성 바오로(Paulus)가 세운 시리아의 안티오키아 교회에서 사도 성 베드로의 뒤를 이어 제2대 혹은 제3대 주교로 임명되고 축성되었다.
당시 안티오키아 교회는 신자들이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이라 불린 곳이며(사도 11,26), 사도 성 바오로와 성 바르나바(Barnabas)의 이방인 선교 여행의 출발지이자 중심지였다. 특히 예루살렘이 멸망한 후에는 초대교회 안에서 로마 교회와 함께 교회를 떠받치고 있던 곳이 안티오키아 교회였다. 따라서 약 40여 년 동안 안티오키아 교회를 위해 헌신하던 성 이냐시오 주교가 트라야누스 황제의 그리스도교 박해 때 체포되어 재판을 받고 로마로 압송된다는 사실은 전 교회의 큰 슬픔이었다. 그는 10명의 군인에 의해 육로와 배를 이용해 소아시아 연안을 따라 그리스를 통과해 로마로 호송되었다. 그 과정에서 그는 머무는 도시마다 그를 위로하기 위해 몰래 찾아온 신자들에게 그리스도와 일치하고 사도적 전통에 충실할 것을 설교하고 권고했다. 마케도니아의 네아폴리스(Neapolis)에 와서는 나중에 같이 순교하게 될 성 조시무스(Zosimus)와 성 루푸스(Rufus, 12월 18일)와 합류하였다.
로마로 압송되는 과정 중에 그는 모두 일곱 개의 편지를 썼는데, 이는 ‘그리스도교 문헌학의 진주’라고 불릴 정도로 그 내용이 풍부하고 가치가 높다. 특히 신학적으로 교회, 결혼, 삼위일체, 강생, 구속 그리고 성체성사에 관한 그의 교육적인 편지들은 초기 그리스도교 저서 가운데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역사적 문헌들이다. 성 이냐시오는 여섯 개의 편지는 교회 공동체에 그리고 한 개의 편지는 스미르나(Smyrna)의 주교인 성 폴리카르푸스(Polycarpus, 2월 23일)에게 보냈다. 성 폴리카르푸스 주교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는 선배 주교로서 후배 주교에게 사목자로서 지녀야 할 자세와 덕에 대해 설명하고 있고, 로마 교회에 보낸 편지 외에 다른 다섯 교회 공동체에 보낸 편지에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일치하고, 주교에게 순명하며, 이단에 빠지지 않도록 조심하라는 권고를 담고 있다. 그러면서 그는 그리스도 교회 공동체를 일컬어 처음으로 ‘가톨릭교회’라는 이름을 사용했다.
로마 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그는 순교지로 가는 여정 중에 자신의 신앙과 주님께 대한 사랑을 감동적으로 전해주고 있다. 그는 여기서 자신의 순교와 성체성사를 긴밀히 연결하고 있다. “나는 모든 교회에 편지를 쓰면서 여러분이 방해만 하지 않으면 내가 하느님을 위해 기꺼이 죽으러 간다고 모두에게 알렸습니다. 나의 간청입니다. 불필요한 호의를 나에게 베풀지 마십시오. 나를 맹수의 먹이가 되게 버려두십시오. 나는 그것을 통해서 하느님께 갈 수 있는 것입니다. 나는 하느님의 밀알입니다. 나는 맹수의 이에 갈려서 그리스도의 깨끗한 빵이 될 것입니다. 이 맹수라는 도구를 통해서 내가 하느님께 봉헌된 희생 제물이 될 수 있도록 그리스도께 기도하십시오.”(4,1-2) 또한 그는 같은 편지에서 순교의 고통을 영원한 생명을 위한 ‘출산’으로 표현했다. 해산의 고통을 통해 새 생명이 태어나듯이, 순교의 고통을 통해 하느님 안에서 새로 태어나 부활의 기쁨을 얻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교회는 그의 믿음에 따라 순교자의 순교일을 ‘천상 탄일’(dies natalis)로 부르며, 순교일을 축일로 정하는 전통을 갖게 되었다.
안티오키아를 출발해 스미르나, 트로아스, 네아폴리스, 브린디시 등을 거쳐 아피아 가도(Via Appia)를 통해 로마로 압송된 성 이냐시오는 107년경 12월 20일 로마의 원형 극장에서 맹수형을 받고 사자의 밥이 되어 장렬히 순교했다. 그로써 그는 성체 안에 계시는 그리스도와 완전히 일치하여 하느님 안에서 새로 태어나 부활의 기쁨을 누리는 천상 탄일을 맞이했다. 그는 자신이 원하던 대로 사자의 밥이 되어 맹수들을 자신의 무덤으로 삼고자 했으나, 신자들이 남은 유해 일부를 모아 후에 안티오키아에 옮겨 안장했고, 7세기에 다시 로마로 옮겨 성 클레멘스(Clemens) 대성당에 모셨다. 오늘날 로마 가톨릭교회는 그가 로마로 압송되어 도착한 10월 17일에, 동방 정교회에서는 순교일인 12월 20일에 축일을 기념하고 있다. 전례 개혁 전까지는 오랫동안 2월 1일에 그의 축일을 기념했었다.
오늘 축일을 맞은 이냐시오 (Ignatius)형제들에게 주님의 축복이 가득하시길 기도합니다.
야고보 아저씨
첫댓글 아멘
감사합니다. 이배근 가브리엘 형제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