찻사발
김송포
그릇을 보여주겠다
그릇인지 그림인지 사진인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안을 들여다보려고 머리를 갖다 대자 실제가 아닌 그림이 살아왔다 미세한 점들이 검버섯보다 옅은 자국으로 돌아왔다
긁힌 자국은 서로 할퀸 상처의 말을 밑줄로 새기어 광을 냈다
갈라진 선들은 더 다가가 덧칠했다
찻사발 사발 사발 사발
사발 우물에 눈을 넌지시 담아보았지
생각보다 깊고 넓다
사발에 왜 기린을 그렸지
기린이 아니고 학이다 목을 길게 빼고 고개를 숙인 모습
마치
차를 마시며 목련의 잎을 우린 물속에서
당신을 불러 보고 싶은 것처럼
굳이
황토와 찹쌀 풀과 옻칠을 섞어 매끈하게 빠진 그릇
떨림으로 숨을 쉬며 다가가 눈을 맞추어 보았지
구석구석 틈을 메워주었으나 시간이 가면서
실금이 짙어질수록 당신과 나의 기록은 깊어질 것이다
먼 옛날을 살펴보며 사발의 맥을 짚어보다 놀란 사물의 기록
차 마시러 가서 사발에 금을 칠해볼래요
웹진 『시인광장』 2024년 6월호 발표
김송포(金松浦) 시인
전북 전주에서 출생, 2013년 <시문학>으로 등단, 시집으로 『집게』, 『부탁해요 곡절 씨』, 『우리의 소통은 로큰 롤』이 있음. 포항소재문학상, 푸른시학상 수상. 제1회 상상인 시집창작지원금 수혜. 현재 '성남FM방송' 라디오 문학전문프로 <김송포의 시향>을 진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