웅(英雄)도 인간인데 실수하면 안 되나? 리들리 스콧 감독이 영웅의 인간적 면모를 그린 영화 '나폴레옹' 감상(鑑賞) 박선영(前 국회의원) 페이스북
장군들의 수난시대라고 해야 하나? 요즘 장안엔 '찌질이 장군들' 얘기가 연말모임 곳곳에서 회자되고 있다. 장군님들께는 죄송한 말씀이지만, 서울의 장군들은 딱 한 사람만 빼놓고 전부 다 죽일 X으로 묘사한 서울의 봄을 본 관람객 수가 오늘로 1111만 명을 넘어섰단다. 그러니 모였다 하면 서울의 봄 얘기가 화제다. 좋든 싫든. 그런가 하면 프랑스는 자기들 영웅 아니, 세기의 영웅 나폴레옹을 찌질하게 그렸다고, 리들리 스콧 Ridley Scott 감독한테 불만을 터트리고 있다. 숙적이라고 여겨온 영국 출신의 감독이 그것도 영어로 만들었으니 더 그럴 테지만, 리들리 스콧 감독은 50여 년 전쯤 나폴레옹의 언저리 실화(The Duellists, 결투자들)를 영화로 만들어서 데뷔했으니, 어찌됐든 나폴레옹에 대한 감독의 관심만큼은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다. 반세기에 걸친 관심은 애정에서 나오는 것일 테고. 어찌됐든 나는 오늘 그 영화 나폴레옹을 봤다. 절대로 찌질하지 않으신 장군님과 존경하는 총장님과 함께. 결론은 좋았다. 나이 90이 다 된 감독이 만들었다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스펙터클했고, 그만큼 전쟁 장면들이 특별했다. 특히 얼어붙은 강, 하얀 눈밭에서 치러진 아우스텔리츠(Austerlitz) 전투는 치열하고 잔인하지만 수채화처럼 판타스틱하게 묘사했다. 그 누가 그 전투를 그렇게 표현해낼 수 있을까? 우울하게 묘사된 워털루 전투도 마찬가지. 군대를 안 다녀온 나로서는 보병과 기병, 포병이 작전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장면은 삼국지를 연상케 했다. 웃기는 연상이라고 하겠지만, 리들리 스콧 감독의 오리엔탈리즘을 인정한다면 나의 이런 직관도 부인하긴 어려우리라. 1980년대 초반 파리 살 때, 그리고 1980년대 후반 독일 살 때 벨기에 워털루에 갔을 때마다 에게게~~ 했던, 그 초라해보이던 평야가 영화에서는 광활한 벌판이자 거대한 구릉이었다. 카메라 기법의 결과겠지만, 그 또한 감독의 능력이리라. 어쨌든, 이 영화는 찌질한 남자 얘기도, 비루한 영웅의 얘기도, 영웅 비틀어 다시 보기도 아니다. 적어도 내게는 영웅의 인간적 면모를 영화적 기법으로 표현해낸 영화일 뿐이다. 영웅은 사랑하면 안 되나? 영웅은 사랑에 눈물 흘리면 안 되나? 영웅도 인간인데 실수하면 안 되나? 영웅도 신이 아닌 인간인데. 나폴레옹이 치른 전쟁에서 죽은 사람이 300만 명이라는 것도 나는 이 영화에서 처음 알았다. 그 엄청난 숫자가 나폴레옹에겐 괴로움의 원천이었을 테고, 그 괴로움의 그림자를 창녀 출신이라는 조세핀을 통해 지워보려고 몸부림쳤을 것이다. 대위에서 서른 살에 장군이 되고, 그 후에 황제가 되었다가 두 번이나 유배를 가서 50 초반에 유배지에서 쓸쓸하게 생을 마감한 남자한테 얼마나 많은 인간적 고뇌와 흠결이 켜켜이 쌓여있었을까? 그래서 '엄마' 얘기만 나오면 눈시울이 붉어지고, 부인과 모친 앞에서는 한없이 작아지는 나폴레옹을 보며 조세핀은 '나 없으면 당신은 아무 것도 아니'라고 한 것이리라. 엄마와 아내 앞에선 인간일 수밖에 없었던 나폴레옹이 쿠테타도 일으키고, 전쟁으로 300만 명을 죽이기도 했지만, 그는 프랑스가 근대국가가 되도록 그 기틀을 놓은 사람이다. 이미 1800년에 프랑스 중앙은행을 설립했고, 고등교육 시스템도 공고하게 만든 nation builder다. 그런 그의 일생을 영웅적 측면이 아닌, 인간적 측면에서 조명한 리들리 스콧의 영화 나폴레옹이 나는 영화로써 좋았다. 두 시간 반이 후딱 지나갈 정도로. 원래 리들리 스콧이 만든 나폴레옹의 원작은 4시간 반짜리라는데, 나는 그 원작을 보고 싶다. 아마도 잘려나간 두 시간짜리 분량엔 더 많은 나폴레옹의 인간적인 면모와 창녀였고 바람둥이였다는 조세핀을 위한 변명? 그리고 우리 모두 익히 다 아는 전쟁들이 리들리 스콧 식으로 판타스틱하게 넘실거릴 텐데… 4시간 반짜리 원작을 그대로 상영해줄 극장 어디 없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