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미꾸라지'라는 말이, 법망을 요리조리 피해 가는 한 고위 인사 때문에 화제가 된 적이 있다.
그때 생긴 유행어가 '법꾸라지'이다.
그런데 요즘 다시 이 말이 회자되고 있다.
청와대발 '궁지에 몰린 미꾸라지 한 마리가 개울물을 흐리고 있다'는 격양된 말 때문이다.
'미꾸라지'라는 말이 '아주 약은 사람'이나 '나쁜 영향을 주는 사람'을 비유할 때 쓰이고 있으니
죄 없는 미꾸라지'로서는 어안이 벙벙할 듯하다.
'미꾸라지'라는 말은 19세기 문헌에서야 '밋그라지'로 보인다.
이 말이 꼭 19세기에 만들어졌다고 할 수는 없지만 뒤늦게 등장한 것임은 분명하다.
그 이전에는 '믯그리'라는 단어가 쓰였다.
'믯그리'는 동사 어간 '믯글-(미끄러지다)'에 접미사 '-이'가 결합된 어형으로 '미끄러지는 것'이라는 의미를 띤다.
이는 미꾸라지의 미끌미끌한 특성에 초점을 둔 조어 형태다.
이 '믯그리'가 지금 일부 방언에 '미꾸리'로 남아 있다.
'미꾸리'에 대해 '밑이 구린 놈' '물에 사는 구렁이' '미꾸라지의 준말' 등의 어원설이 있으나 전혀 미덥지 않다.
'믯그리'를 이어서 나타난 '밋그라지'는, '믯그리'에서 변한 '밋그리'에 접미사 '-이지'가 결합된 형태다.
접미사 '-이지'는 '강아지, 망아지, 송아지' 등에 보이는 그것과 같이 '작은 것'을 지시한다.
'밋그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것에 다시 '-아지'를 덧붙여 '밋그라지'라는 새로운 단어를 만든 것은
미꾸라지가 작은 물고기임을 강조하기 위해서였다.
'밋그라지'는 '밋구라지'를 거쳐 '미꾸라지'가 된다.
'밋그라지'가 세력을 확장하면서 먼저 등장한 '밋그리(미꾸리)'는 세력을 잃고 방언으로서의 '미꾸리(미꾸라지)'는
이것과 흡사한 모습을 하고 있는, 동일 이름의 표준어 '미꾸리'와 혼동해서는 안 된다.
이들은 눈의 크기, 입수염의 크기에서 미세한 차이가 있다. 조항범 충북대 국어국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