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아리랑과 쓰리랑의 뜻을 알게 되었다. 한ㆍ러 유라시아 대장정 추진위원회는 광복과 종전 60주년을 맞아 동시베리아에 위치한 바이칼에서 우리 민족의 기원을 찾고자 문화포럼을 시도했다. 바이칼 인근 소수민족인 예벤키족의 언어에도 같은 발음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아리랑은 `맞이하다`의 뜻으로 영혼을 맞이하고 이별의 슬픔을 참는다는 의미로 추정되며 쓰리랑은 `느껴서 알다`라는 의미를 갖는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생활모습은 다양하면서도 늘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간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서정적인 민요 아리랑을 부르며 함께 하기를 원했고 아픔을 이겨내고 다 같이 어려움을 극복하자는 의미에서 아리랑은 진정으로 맞이하는 자세를 전하고자 했을지도 모르겠다.
지난 시간을 되짚어 본다. 그동안 사람들과 인연을 이어 가면서 있는 그대로 맞이했다면 행복은 늘 가까이 있었을 것인데 이 한 생각을 못하던 때가 더 많았지 싶다. 사람들은 늘 행복을 꿈꾸며 일한다. 나 또한 행복을 찾아 삶을 지속하고 있다. 그러나 늘 만족하지 못하고 행복을 찾아 떠나는 것은 행복과는 반대의 길을 가고 있기 때문이리라.
맞이함의 진정한 준비는 충분히 비어져 있어야 함을 생각해 본다. 과거로 흐른 기억을 뒤돌아보지 않으면 삐걱거림과 후회를 반복할 것이고 어떤 고승의 말처럼 모든 것을 내려놓지 못함이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의 문제임을 생각해 본다.
타협과 배려가 필요한 세상에 과거는 현재가 된다. 맞이하고 보내는 시간이 너무 짧아져 걱정이다. 나 또한 타인이 내민 손을 쉽게 잡지 못 할 때가 많다. 짧은 기준으로 선을 긋고 거리를 잰다. 내 안의 가시를 숨기고 내가 하는 일이 고통 덩어리이고 참아내야만 하는 삶이라면 진짜 삶인가 궁금했다. 미래를 위해 참고만 사는 시간이라면 인생 자체가 괴롭지 않겠는가. 참지 않고 즐기는 삶으로 승화시킬 수만 있다면 한 문장만으로도 행복을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
어제와 오늘 사이에 늘 있으면서도 느껴서 알려고 하지 않으면 행복을 찾기는 어려움을 마음속에 새겨본다. 우리의 민요 `아리아리 쓰리쓰리`를 흥얼거리며 디딤돌을 삼아보려 한다. 생각하고 행함이 합당해야 함을, 그러다 보면 눈뜸의 자세를 갖고 삶의 만족도를 높이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