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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위하여-12
까페 ‘르 브리앙’은 대전 외곽의 바닷가를 낀 산수가 잘 어우러진 아름다운 공원 같은 곳에 자리하고 있는 남양건설의 자회사인 드림 플레이스 호텔 지하 일층에 있었다. 참석한 사람들은 모두 초대를 받은 사람들이었으며 젊은 시인들도 그들의 틈에 있었다. 그들 모두는 독자들에게 이름이 알려진 시인들이었다. 그리고 인터넷 미디어의 문예 담당 기자들. 일간지 문예 담당 기자들. 마지못해 참석했겠지만, 시장을 비롯하여 몇몇의 상장 건축회사의 회장들과 또 몇몇의 대학의 문학 교수들 그리고 KRT 티브이 카메라도 적당한 자리에 진을 치고 있었다. 한 여류시인의 출판회 겸 낭송회 자리로는 분에 넘치다고 생각할 분위기였다. 참석자들 대부분은 남양건설의 힘에 등이 떠 밀려 이곳까지 왔다. 그러나 그들은 두 가지에 놀랐다. 뷔페로 차려놓은 샥스핀. 제비츄리. 연어회. 노바스코샤 산 바닷가재. 황금색 삼치 뱃살회. 징키스칸이라 불리우는 어린 낙타 요리. 유돈 바비큐(어린 통돼지구이). 울진대게 등 다양하고 진기한 세계의 요리를 먹고 아이스 와인을 비롯한 각국의 포도주를 맛볼 수 있음과 중년의 완숙한 성적 매력으로 꽉 찬 아름다운 여류 시인 조미정의 모습과 그녀의 맑고 청아한 낭송들을 들음이었다. 다양하게 차려놓은 음식들과 감탄으로 놀라게 하는 사람은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어 참석한 여성과 남성들을 환상에 빠지도록 하였다. 그 출판 낭송회는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다. 미정은 들떳으며 진정으로 감동한 사람들의 분위기에 함께 빠져들어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이성도 잘 갖추고 있었다. 그녀가 사라져야 할 때를 알고 있었다.
“조미정 시인님!”
그녀가 회장을 빠져나와 호텔밖에 대기하고 있는 택시를 잡으려고 걸어가는데 누가 불렀다.
“조미정 시인님. 제가 모셔다드리겠습니다.”
정한구 사장이었다.
그도 마무리로 혼란스러운 회장을 먼저 빠져나와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회색 골프용 티셔츠와 면바지 차림이었다. 그는 어느 사이 정장했던 양복을 벗고 스포티하게 갈아입고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의 차는 의외에도 그렌즈였다. 그의 인품을 나타내는듯 하였다.
“제가 사람을 탁월한 느낌으로 잘 선택하였다 생각하고 있습니다. 시인님을 만나게 되어 영광입니다.”
미정은 영광이라는 말에 좀 거부감을 느꼈다. 그건 아부성 단어이다. 문제 삼을 이유는 없었다.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하노라 했는데 모두들 끝까지 함께해 주셔서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몰라요. 사장님에게도 깊이 감사합니다. 너무 고마워요.”
“고마워할 사람은 저입니다. 아주 잘해주셨습니다. 오늘 밤의 출판회 겸 낭송회는 조미정 시인님의 존재를 널리 알림뿐만 아니라 저희 남양건설이 명실상부한 사회 친화적 회사임을 알렸습니다. 회사를 대표해서 정말 감사합니다.”
그의 감사는 진심이었다. 그는 진실로 회사를 생각했고 조미정을 생각하였다. 그는 안산의 그녀의 집까지 가는 도중 많은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 자신에 대한 사적인 이야기. 회사를 움직여 가는 경영 이야기. 회사의 비젼 그리고 장차 은퇴하여 남은 삶을 살아가려는 계획 등.
그는 혼자 살고 있다 하였다. 2년 전 이혼하였고, 장성한 두 아들은 이미 결혼하여 큰 아들은 그의 어머니와 미국에 살고 있으며, 작은 아들은 회사 전무로 서울에 살고 있고, 그는 대전의 에브리오빌라에 혼자 살고 있다 하였다. 그는 조미정 시인을 만난 것이 운명이라 하였다. 운명. 그것은 내가 할 말이고 그렇게 함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그는 이혼한 중년 여성으로서 바라는 모든 조건을 갖춘 남자로 여겨졌다. 운명이 아니라도 잡고 싶은 남자 중 하나이리라 생각하였다. 미정은 세잔 마신 포도주에 기분이 좋았다. 승차감이 좋은 적당한 온도의 차 안에서 운명의 창을 잡고 마음을 이리저리 찌르며 흔드는 싫지 않은 남자와 함께하고 있는 것이 만족스러웠다. 그녀의 방패는 존재를 잃어갔다. 그는 반월 남단 습지공원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그 렌즈의 시각으로는 밤 11시 30분이었다.
“왜, 웃으십니까? 제가 이상해 보입니까?”
주차하던 정한구가 미정을 보며 물었다.
"아니에요. 누가 말한 생각이 나서 웃었어요. 갑자기 왜 그런 말이 생각났는지 모르겠어요.”
“무슨 말인데요?”
“당신을 믿지만 분위기와 환경을 믿지 못하겠다 고 어떤 사람이 말했어요. 바보 같은 사람.”
“이혼한 전 남편이 그렇게 말하였습니까?”
그가 놀라며 물었다. 급속 냉기였다. 분위기가 차거워졌다.
“왜, 지금 그 사람 이야기를…”
그가 화들짝 놀라며 빨리 분위기를 바꿨다. 역시 노련하였다. 그는 대 기업을 운영하는 국내 사업가였다.
“분위기와 환경은 믿는 대로 감싸 안고 형성되는 겁니다. 그렇게 본다면, 사람에 대한 믿음은 분위기와 환경으로도 고저를 가름할 수 있지요.”
“맞아요. 사장님의 그 말은 사장님에게 아주 잘 어울려요. 동의해요.”
“지금부터는 제 말을 기억하십시오. 분위기와 환경이 믿음도 준다는 것을. 아셨지요?”
그의 말은 어느새 미정에게 달콤하게 들렸다. 그녀는 얼굴을 돌려 그를 보았다. 잔 주름이 눈가와 이마에 있었지만, 그것은 내공의 고수로서 보여지는 계급 같았다. 그리 거부감 드는 얼굴은 아니라고 생각하였다.
그의 손이 미정의 머리에 올려져 귀밑머리를 애무하듯 귀 뒤로 쓸어넘겼다. 포근하다 느꼈다. 중년의 귓부리에도 성감대가 있음을 그녀는 모르고 있었다. 다만, 기분 좋은 간지럼이 번개처럼 뇌를 스쳤고 가슴까지 짜릿하였다.
“아아아~ 사장님.”
그의 입술이 미정의 입술에 닿자 절로 신음이 터져 나왔다. 그는 한 손을 미정의 등 뒤로 돌려 안았다. 그리고 짙은 키스를 하였다. 그녀는 그의 행위를 차마 거부할 수가 없었다. 그의 혀가 미정의 입술을 뚫고 들어와 뱀의 그것같이 입안을 휘저었다. 그의 다른 한 손이 그녀의 실크 브라우스 위로 가슴을 애무하였다. 미정의 가슴은 아직도 풍만하였으며 크고 잘 발달된 채로 탄력을 유지하고 있었다. 30대들과 같거나 그 이상의 아름답고 성적 매력이 가득한 가슴이었다. 이 가슴 때문에 백주에 강간까지 당할 뻔했었다. 이건 정말이다. 믿어도 만수무강에 지장이 없다. 만약, 그가 서서히 입술로 그녀를 흥분으로 리드하고 분위기를 일으켰다면, 그녀는 정말 분위기에 대한 배신을 느꼈을 것이다. 허나 그는 서둘렀다. 미정의 분위기는 급히 냉각되었다. 그것은 거부감이었다. 느껴졌다. 이건 아님을 그녀는 느꼈다.
“이제 그만하세요. 됐어요. 사장님.”
미정은 그의 가슴을 살짝 밀치며 제 자리로 돌아왔다. 그가 생각하는 운명은 그를 비켜갔다. 그렌즈는 밤 12시 정각을 가르키고 있었고, 그림같이 자동차 불빛이 실내를 비추었다. 야간 순찰 경찰차가 주차장을 돌고 있었다.
그는 노련하고 폴라이트하였다. 그는 예순둘이었다. 그는 대 기업 사장이었다.
그를 만나면서 미정은 남은 삶을 바꿀 수도 있다 고 생각도 한 적이 있었다. 그것은 마음먹기에 달려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체이스를 잊을 수 없었다. 뭔가에 이끌리듯 그가 결국은 돌아올 그곳까지 찾아갈 수 있었던 것은 무엇에 기인한 것인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바깥을 통제당한 채 영어와 같은 생활을 해 온 그녀에게 무엇이 힘을 주어 능숙치 못한 운전솜씨로 전혀 본 적도 들은 적도 없었던 그 오지 같은 곳을 찾아가게 한 그 힘은 무엇인가? 결정적인 순간에 그가 마음을 차지하고 있음을 느꼈기 때문이다.
체이스와의 사랑은 너무 아름답고 깊었다. 짧은 시간에 그 사랑은 조미정의 가슴에 촉촉이 살아 퍼져 있었다. 그가 다시 나타난 이상, 늘 부르던 노래. ‘아아아아~ 사랑하다 죽어도 좋은 사람 당신이 어딜 가시더라도 내 손 꼭 잡아줘요. 불구덩이 속이라도~ 내 사랑 체이스 리.’ 미정이 스스로 그 가사를 만들어 ‘미아리 고개’의 곡으로 붙여 체이스에게 불러주던 노래였다. 그렇다. 이제는 절대 그를 놓치지 않을 것이다 라고 스스로 다짐하였다.
*****
“이쁜 사람아! 어서 내 전화받아요. 나 당신 목소리 듣고 싶어요~”
현주는 휴대폰에서 컬러 링이 울리자 곧 손목시계를 봤다. 18K 금으로 도금한 금장 테두리에 아라비아 숫자가 우윳빛 백색 바탕에 앙증맞게 새겨진, 성태를 만난 후 천 일 기념으로 성태가 사 준 시계였다. 그 시계의 에메랄드빛 시침과 분침은 오전 10시 30분을 가르키고 있었다. 이 컬러 링은 두 사람에게만 주었다. 하나는 팀장인 Mr. 권. 좋든 싫든 즐거운 목소리를 들려주어야 하므로, 그의 번호에 이 컬러 링을 연결해 놓았다. 팀장에게 목소리라도 즐겁게 들을 수 있는 행복을 주는데야 돈 들일 없고 서로 시작이 좋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하나는 당연, 성태 씨였다.
“여보~ 세요~~”
말로 애교 좀 주자는데 특별히 비용들 일도 없잖은가. 가치 깎이는 것도 아닐 것이고, 너 좋고 나 좋자는데 누가 뭐라 하겠어. 생각하며 현주는 혀를 굴렸다.
“여보세요 고 저보세요 고 간에 현주. 김현주! 당장 눈썹이 휘날리도록 내 방으로 달려온다. 실시!”
“실시!”
저 인간은 군대 갔다 온 지가 벌써 석삼년이 지났건만 아직도 뭔가를 착각하고 있었다. 현주에게는 Mr. 권 팀장이 큰 스트레스를 주는 주 적 중 하나였다. 허나, 어쩌랴. 달려가야지. 상관이 부르는데… 늦으면 또 기합일 것이다. 기합이라야 이제는 다 알아버린 이유에 대한 궁금증을 풀려고 하는 제스추어일 뿐이었다. 왜 그렇게 사냐? 이제는 정말 끝 하고 싶다. 현주는 빠른 걸음으로 걸어가며 혼자서 중얼거렸다. 팀장의 방문을 열고 한 발을 들이미니 책상 앞에서 서성이든 그가 반색을 하며 반긴다.
“오! 내 사랑~ 어서 오셔요~ 이렇게 반가울 수가…”
“잠깐. 팀장님! 이제 그 내 사랑은 좀 거두어 주시지요. 오직 내 사랑이 들으면 왼쪽 장갑 던질 것 같은 예감이 드네요.”
“읔! 그러면 안 되지. 나는 늙어가는 청춘이고, 그대의 그대는 젊음의 끝에 서 있는데…알았어요. 그건 그렇고 현주 씨!”
갑자기 그의 목소리가 부드러워졌다. 이때부터 최대한 경계 모드로 전환 유지해야 함을 현주는 익히 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