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기도
주님,
저희를 한결같이 사랑하시고 끊임없이 보살피시니
저희가 주님의 거룩하신 이름을 두려워하며
언제나 사랑하게 하소서.
제1독서
<임금은 주님의 집에서 발견된 계약 책의 말씀을 백성에게 읽어 주고 주님 앞에서 계약을 맺었다.>
▥ 열왕기 하권의 말씀입니다.22,8-13; 23,1-3
그 무렵 8 힐키야 대사제가 사판 서기관에게,
“내가 주님의 성전에서 율법서를 발견하였소.” 하고 말하면서,
그 책을 사판에게 주었다. 그것을 읽고 나서,
9 사판 서기관은 임금에게 나아갔다. 그는 임금에게 먼저 이렇게 보고하였다.
“임금님의 신하들이 주님의 집에 있는 돈을 쏟아 내어,
주님의 집 공사 책임자들 손에 넘겨주었습니다.”
10 그러고 나서 사판 서기관은 임금에게,
“그런데 힐키야 사제가 저에게 책을 한 권 주었습니다.” 하면서,
임금 앞에서 소리 내어 읽었다.
11 그 율법서의 말씀을 듣고 임금은 자기 옷을 찢었다.
12 임금은 힐키야 사제, 사판의 아들 아히캄, 미카야의 아들 악보르,
사판 서기관, 그리고 임금의 시종인 아사야에게 명령하였다.
13 “가서 이번에 발견된 이 책의 말씀을 두고,
나와 백성과 온 유다를 위하여 주님께 문의하여 주시오.
우리 조상들이 이 책의 말씀을 듣지 않고,
우리에 관하여 거기에 쓰여 있는 그대로 실천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를 거슬러 타오르는 주님의 진노가 크오.”
23,1 임금은 사람을 보내어 유다와 예루살렘의 모든 원로를 소집하였다.
2 임금은 모든 유다 사람과 예루살렘의 모든 주민,
사제들과 예언자들, 낮은 자에서 높은 자에 이르기까지
모든 백성을 데리고 주님의 집으로 올라가,
주님의 집에서 발견된 계약 책의 모든 말씀을 큰 소리로 읽어
그들에게 들려주었다.
3 그런 다음에 임금은 기둥 곁에 서서,
주님을 따라 걸으며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그분의 계명과 법령과 규정을 지켜,
그 책에 쓰여 있는 계약의 말씀을 실천하기로 주님 앞에서 계약을 맺었다.
그러자 온 백성이 이 계약에 동의하였다.
복음
<너희는 그들이 맺은 열매를 보고 그들을 알아볼 수 있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7,15-20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15 “너희는 거짓 예언자들을 조심하여라.
그들은 양의 옷차림을 하고 너희에게 오지만 속은 게걸 든 이리들이다.
16 너희는 그들이 맺은 열매를 보고 그들을 알아볼 수 있다.
가시나무에서 어떻게 포도를 거두어들이고,
엉겅퀴에서 어떻게 무화과를 거두어들이겠느냐?
17 이와 같이 좋은 나무는 모두 좋은 열매를 맺고 나쁜 나무는 나쁜 열매를 맺는다.
18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나쁜 나무가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없다.
19 좋은 열매를 맺지 않는 나무는 모두 잘려 불에 던져진다.
20 그러므로 너희는 그들이 맺은 열매를 보고 그들을 알아볼 수 있다.”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사이비가 나쁜 나무임을 알기 위한 나쁜 열매는 무엇일까?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거짓 예언자들을 조심하여라. 그들은 양의 옷차림을 하고 너희에게 오지만 속은 게걸 든 이리들이다. 너희는 그들이 맺은 열매를 보고 그들을 알아볼 수 있다.”라고 하십니다. 세상에 사람을 속이는 종교들, 거짓 예언자들이 많습니다. 이 열매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지 못하면 사이비에 빠져 인생과 영혼을 망치는 일이 벌어집니다.
많은 이들은 이단이나 사이비의 잘못된 성경해석이나 교리가 그 열매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사이비들의 잘못된 성경해석과 교리를 공부하고 비판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 교리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교리까지 공부할 필요가 있을까요?
그리고 사실 진실보다 거짓말이 더 논리적입니다. 보이스피싱을 생각해보십시오. 매우 논리적으로 다가옵니다. 속이기 위해서는 논리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만약 우리가 예수님 시대에 살았다면 제자들이 예수님의 시신을 훔쳐 갔다고 말하는 경비병들과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다는 여인들의 말 중에서 누구의 말을 믿겠습니까? 그들의 교리로는 그들을 구분하기 어렵습니다. 교리가 만들어내는 ‘행동’이 그들을 알게 합니다.
한국 사이비의 시초는 1930년대 김성도라는 여인이 만든 성주교입니다. 17살 때 평북 철산군의 돈 많은 관리 세 번째 첩으로 달려가다시피 시집을 갔습니다. 그리고 내리 딸을 셋 낳았습니다. 구박받았겠죠. 그러다 힘겹게 얻은 막내아들이 1년 만에 죽어 엄청난 충격으로 정신 이상이 왔는데 동네 어떤 교인이 기도하면 병이 낫는다 해서 기도했더니 병이 나았습니다. 뒤이어 낳은 둘째 아들이 병이 들었고 매일 열심히 기도해서 또 병이 나았습니다. 그러다 소문이 났습니다.
그렇게 유명해지자 이젠 예수님을 직접 만나 계시받았다고 말합니다. 첫 번째 예수님은 실패하였고 자신이 그것을 완성할 것이라 주장합니다. 또한 창세기에 보면 뱀이 하와를 유혹해 선악과를 따먹은 얘기가 나옵니다. 그런데 이것을 성적 타락으로 봅니다. 뱀과 하와가 성행위를 했으면 그 후손들은 사탄의 피가 흐르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까 구원은 어떻게 이루어지느냐면 깨끗한 피를 가진 이가 이 사탄의 피로 정결하게 해서 거룩한 피로 바꿔줘야 한다는 사상이 나옵니다. 이것이 성적인 타락으로 이뤄지고 뒤이어 나오는 모든 사이비 교주들은 이를 이용해 신도들을 자기 성적 착취물로 여기게 됩니다.
이후에 나온 백백교라는 사이비는 여기서 더 나가서 돈과 폭력까지 사용합니다. 백백교가 일제히 경찰에 의해서 조사가 되고 재판이 진행되는데 1937년까지 무려 80여 차례에 걸쳐서 백백교 신도 350명을 살해했다는 것입니다. 이후에 오대양 사건도 돈과 성과 폭력이 있었고 현재 허경영 씨도 똑같습니다.
이들의 교리는 볼 필요가 없습니다. 열매가 비윤리적이면 그 삶을 보증해주는 교리는 올바른 교리일 수 없습니다. 나무를 살피는 게 아니라 열매만 보면 됩니다. 나무를 보면 헛갈립니다.
그렇다면 우리 가톨릭교회에는 이단이나 사이비가 없을까요? 그들의 논리보다 그들의 삶을 보아야 합니다. 어떤 사제는 독실한 가톨릭 신자라고 알려진 바이든 대통령이 미사에 참석하여 성체를 영하려 하자 성체를 주지 않았습니다. 사실 그는 낙태를 찬성하는 이단이자 사이비였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가톨릭 교리를 믿는다고 하더라도 비윤리적이면 사이비입니다. 윤 대통령이 탄 전용기가 추락하기를 바란다는 발언을 한 사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가톨릭 정통 신학을 공부하였다고 하더라도 사이비입니다. 열매가 비윤리적이기 때문입니다.
정말 청빈하고 정결하고 온순하고 겸손한 이가 있다면 그가 어느 종교를 믿던 그는 정통입니다. 우리 열매가 무엇인지 살피고, 또 이론만 거창한 거짓 예언자에 속지 맙시다.
빠다킹신부와 새벽을 열며
19세기에 수십 명의 아기가 오늘날 영아 돌연사 증후군이라는 증상으로 죽기 시작했습니다. 의사들은 그 원인을 밝히기 위해 죽은 아기들을 부검했습니다. 그리고 대부분 가슴샘이 크다는 것을 발견하지요. 하지만 사실은 정상이라고 합니다. 의사들이 이제까지 봤던 아기의 가슴샘은 가난한 가정의 아기였기 때문입니다. 19세기에 부검할 수 있는 아기 시신은 모두 가난한 가정에서만 가능했고, 대부분 설사나 영양결핍으로 가슴샘이 이미 위축된 상태였습니다. 이제까지 위축된 가슴샘을 정상으로 생각했으니, 영아 돌연사 증후군으로 죽은 아이의 가슴샘이 크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즉, 가슴샘 비대로 아이의 기관이 눌러져서 사망했다는 것입니다.
이에 따라 부유한 집에서는 아기 때 가슴샘을 키우려고 조치했습니다. 가슴샘에 방사선을 쬐었던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아기가 화상을 입거나 가슴샘이 위축되었고, 그 결과로 암까지 생겨 결국 1만 명이 이른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과학이 무조건 옳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잘못된 과학 연구가 오히려 위험한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잘못된 생각이 이 세상에 큰 상처와 아픔을 낳을 수 있습니다. 맞는다고 생각하고 또 다른 사람도 역시 모두 맞다고 하더라도 틀릴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대로 알 수 있도록 노력해야 했습니다. 주님만이 진리 그 자체임을 기억하면서 주님을 알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거짓 예언자를 조심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들은 양의 옷차림을 하고 다가오지만 속은 게걸든 이리라고 하시지요. 이를 제대로 알기 위해 그들이 맺은 열매를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열매를 보면 나무의 상태와 가치를 알 수 있듯이, 그들이 맺는 열매가 하느님의 뜻과 다르다면 그것은 분명히 하느님의 반대편에 서 있는 거짓 예언자라는 것입니다.
예언자는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람입니다. 따라서 그는 하느님의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사람이 하느님의 뜻을 따르지 않을 수 있을까요? 교회는 세상에 하느님 말씀을 전하는 예언자라고 합니다. 이 교회에 속해 있는 우리는 하느님 뜻을 따르면서 하느님의 말씀을 세상에 전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세상 속에 숨어있는 거짓 예언자의 모습을 따를 때가 많습니다. 세상의 뜻을 더 중요하게 여기면서, 하느님의 뜻을 외면할 때가 바로 그런 모습인 것입니다.
세상을 알려고 노력하기보다, 주님을 알 수 있도록 노력하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주님을 알면 알수록 이 세상에서 예언자의 모습으로 하느님의 말씀을 잘 전할 수 있게 됩니다.
오늘의 명언: 자신의 생각을 바꾸고 세상을 바꿔라(노먼 빈센트 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