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xHJ-XKBzBMk?si=0Nlkz72Jv8PbmxAc
Debussy - Estampes - Richter Salzburg 1977
1903년에 작곡하여 1904년 1월초에 초연되었다. 호평을 받은 이 작품은 이전의 작품에 비해 현저하게 풍부해진 음이 확대된 표현력을 보여 주고 있다.
제 1 곡 : Pagodes (탑)
드뷔시는 1899년부터 1900년에 걸쳐 파리에서 열린 만국 박람회에서 인도네시아의 음악과 월남 등의 음악을 듣고 거기서 받은 인상을 이 곡에 나타낸 것이다. 여기서 Pagodes라 함은 버마의 황금빛 불탑을 말하는데, 드뷔시는 그 곳에 여행한 일이 없었기때문에 상상으로 만들어진 음악이라고 하겠다. 5음음계를 썼다는 점과 한 개의 테마가 몇 번이고 나타나는 점 등으로 보아 그렇게 상상할 수 있다. 이국적인 극동의 경치와 건축, 그리고 전통적인 춤의 율동을 맛볼 수 있다.
제 2 곡 : La soiree dans Grenade (그라나다의 황혼)
하바네라의 춤곡 리듬으로 남국적인 정열을 그린 음악이다. 황혼 무렵의 스페인 뒷골목 술집의 분위기를 실감나게 표현한 작품이다. 기타와 캐스터네츠에 맞추어 춤추는 스페인 여자의 생기와 환락에 찬 사랑노래 등을 음미할 수 있다.
제 3 곡 : Jardins sous la pluie (비내리는 정원)
무더운 여름날, 갑자기 소나기가 내려 나뭇잎을 적신다. 그러나 얼마 되지 않아 다시 햇빛은 빛난다. 섬세한 아르페지오가 생생하게 그런 상황을 표현하고 있다. 옛부터 전해 오는 프랑스의 민요를 여기에 교묘하게 꾸며 비내리는 정원의 모습을 연상케 한다.
글: 곽근수의 음악이야기
드뷔시[C. Achille Debussy 1862∼1918]
파리 근교 출생. 어려서 양친을 따라 파리로 나와 1871년 칸에 사는 고모의 주선으로 피아노 교습을 받았다. 파리로 돌아와서는 시인 베를렌의 숙모 모테 부인에게 정식 레슨을 받았으며, 그 덕택으로 1872년 가을 파리음악원에 입학하게 되었다. 1884년 칸타타 《방탕한 아들》로 로마대상을 받았으며, 졸업할 때까지 솔페즈 부문에서 1등상, 피아노 부문에서 2등상, 피아노 반주과에서 1등상 등을 받았으나, 화성법에서는 관습적인 규범에 반발한 이유로 아무 상도 타지 못하였다.
한편, 학비를 벌기 위해 여름방학 동안 폰메크 부인의 피아노 반주자로 3년간 러시아와 유럽 각지를 여행, 감수성과 취미를 기르고 바니에 부부와 알게 되어 교양을 쌓았으며, 바니에 부인을 영감을 주는 여성으로 받들어 《만돌린》(베를렌의 시)과 그 밖의 가곡을 작곡하였다. 로마 대상의 로마 의무 체류기간 2년을 마치고 파리로 돌아왔다. 로마 유학시절의 작품에는 《봄》 《선택받은 소녀》(프랑스어로 번역된 로제티의 시에 의함) 등이 있는데, 실제로는 거의 파리에서 작곡된 《선택받은 소녀》는 1893년에 초연되어 호평을 받았다. 같은 해 겨울에는 《현악 4중주곡》, 이듬해 겨울에는 출세작 《목신의 오후에의 전주곡》 등 걸작품을 계속해서 발표하였으며, 그 무렵까지 몇 해 동안은 전에 열중했던 바그너에 대한 비판과 무소르크스키의 《보리스 고두노프》와 가믈란음악의 계시, 말라르메, P.루이스 등 상징파 시인들과의 교우 등이 그의 미학과 작풍의 발효를 촉진시켰다.
베를렌의 시세계와의 접촉(가곡집 《화려한 잔치 제1 ·2집》 등)도 마찬가지 뜻에서 중요하다. 그리고 그 후 앞서 말한 《현악4중주곡》 및 《목신의 오후에의 전주곡》에서 《빌리터스의 노래》(루이스의 시)와 모음곡 《피아노를 위하여》, 관현악을 위한 《녹턴》을 거쳐 오페라 《펠레아스와 멜리장드》(1893∼1903)의 완성에서 초연에 이르는 10년간은 드뷔시의 개성적인 양식이 확립 ·확인된 시기에 해당된다. 그 양식은 단적으로 말해서 현상적(現象的)으로는 선법(교회선법 ·온음음계 등)에 의거, 음색적인 계기를 뚜렷이 표면에 내세움으로써 바로크 후기 이후 오랫동안 지배적이었던 기능화성법에 의한 고전적 조성(調性)을 극복하고, 나아가서는 주제법(主題法) ·율동법 분야에도 점차 혁신을 가져오게 하였다. 음색적 계기를 인상적 계기와 동일시할 수 있는 한 그것은 자주 불려오고 있듯이 인상파의 음악이지만, 이 감각과 이미지(영상)의 음악은 음악학자 쿠르트도 지적한 바와 같이 “수단으로서 가장 현저하게 음향감각적인 것을 두드러지게 하고 있으나 시종 음향을 초월한” 예술로 상징파의 음악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그의 양식을 대표하는 《펠레아스와 멜리장드》가 바그너의 《트리스탄과 이졸데》를 초월한 보다 새로운 차원에 있는 작품이라고 한다면, 1905년에 작곡된 관현악곡 《바다》는 《펠레아스와 멜리장드》를 한걸음 더 앞선 작품이다. 《바다》와 그 전후에 작곡된 피아노곡집 《판화(版畵)》《영상 1》《영상 2》에 의하여 그의 원숙기가 전개되었다. 이것은 피아노모음곡 《어린이의 세계》와 관현악을 위한 《영상 3》(《이베리아》 포함), 가곡집 《프랑스와 비용의 시에 의한 3개의 발라드》, 피아노곡 《전주곡집 1》 등으로 계속 이어졌다. 그 후 《전주곡집 2》, 신비극 《성 세바스티안의 순교》와 함께 만년의 자기 완성시기로 들어갔으며, 그것은 다시 새로운 음향형식을 발견하려는 흔적이 엿보이는 발레곡 《유희》, 피아노곡 《12의 연습곡》, 프랑스적 고전주의를 지향하는 3곡의 《소나타》에서 찾아볼 수 있듯이 자기 경신(更新)을 계속 꾀하였다. 그러나 그와 같은 끊임없는 경신으로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기에 걸쳐 음악사의 진전에 선도적인 역할을 해왔던 그는 제1차 세계대전 중 파리에서 암으로 생애를 마쳤다.
자료출처: 웹사이트
https://youtu.be/5dFceiCR8sU?si=xB8TeKjjmpejsvPr
Debussy - Estampes, Images, Préludes + Presentation (recording of the Century : Claudio Arra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