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 같던 아빠의 생환 후 일상생활도 잠시, 아빠가 중환자실에 다시 들어가신 지 한 달이 넘었다. 아빠는 주로 멀쩡했다. 문제는 혈압이 갑자기 떨어져 위급 상황이 자주 발생하기 때문에 일반병실로 쉽게 올라올 수 없다는 데 있었다. 어느덧 한 달을 위급상황과 멀쩡함 사이를 오가시며 코로나로 가족과 면회도 안 되는 그 고난한 중환자실 생활을 이어가시는 모습에 문득 이대로는 안되겠다는 마음이 일어났다. 아빠를 위해 뭐라도 해야 한다!
이 상황을 어떻게 타개해야 할지 정답이 쉽게 떠오르진 않았다. 중환자실을 나가는 건 위급상황에 속수무책이 된다는 뜻이고, 중환자실에 계속 있다가는 가장 사랑하는 가족들을 보지 못한 채 인생 끝자락을 너무 외롭게 마감한다는 뚯이었다. 어느 쪽도 90대10으로 기운 정답 근처가 아닌 정확히 50대50의 장단점이 공존하는 선택의 영억이라는 데 생각이 미치자, 아빠의 대표 보호자인 엄마가 선택을 내려야 한다는 결론이 나에게서 내려졌다.
엄마는 선택 앞에서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 무게가 얼마나 클지 모르는 바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이 선택은 오로지 엄마의 몫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남편이 한때 중환자실에서 보름간 생사를 오간 적이 있었다. 탁구장을 팔아야 한다는 사람들, 권리금이 있을 때 탁구장을 내놔야 한다는 의견들이 나를 따라다녔다. 남편의 생사 앞에서 탁구장의 생사 따위가 나에게 중할 리 앖는데 사람들은 남편이 이미 즉기라도 한 것처럼 내 앞날을 걱정해준다는 식으로 자기 의견을 내놓았다. 나는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했다. 남편을 살리기 위해 매알 병원을 찾았고, 탁구장을 지키기 위해 남편선후배님들의 도움을 받아 탁구장을 운영했다. 답은 어디에도 없었다. 나의 결정과 그에 따른 나의 책임이 있을 뿐이었다.
시어머니가 아프셨을 때도, 나는 하나뿐인 아들의 하나뿐인 며느리로서 지방에 계신 어머님을 일산병원으로 올라오시게 하는 중대한 결정을 내가 내렸다. 그리고 몇 개월 후 시어머님은 병원에서 돌아가셨다. 나는 결정의 무게를 느꼈다. 내가 다른 결정을 내렸더라면, 지방에 가까운 병원에서 더 빨리 치료를 받으셨더라면, 일산까지 올라오느라 모든 것이 늦어지고 악화된 것은 아닌가 죄책감이 들어 힘들었다. 하지만 지금껏 남편도 아버님도 단 한 번도 그런 내색을 하시지 않아 마음에 묻을 수 있었다.
아빠를 중환자실에서 나오게 할지말지의 결정은 엄마가 내려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은, 비겁하게도 나에게는 과거의 그런 결정들로 인한 책임감이 여전히 나를 짓누르고 있다는 것을 이번 기회에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잘된 일은 잘된 일대로 안된 일은 안된 일대로 결정의 무게가 크다는 무게감만은 정확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 결정은 엄마가 내리길 바랐다.
이런저런 설왕설래 끝에 아빠는 보호자들의 바람과 의사의 동의로 일반병실로 옮기셨다. 다시 위급상황이 오더라도 중환자실로 가지 않기로 하는 결정도 엄마가 내리셨다. 엄마와 아빠가 마지막 그날까지 서로 얼굴을 보고 잔소리도 해가며 마음을 서로 나누고 사랑을 느끼는 것만이 최선이라는 데에 나는 확신을 느낀다. 어쩌면 아빠의 마지막을 앞당길 수도 있는 엄마의 힘겨운 결정에, 나는 과거의 나의 남편과 아버님이 그래주셨던 것처럼 엄마에게 그저 잘하셨노라고, 엄마의 결정이 최선이었노라고 평생 마음으로 말해줄 생각이다.
답은 세상이 주는 것이 아니라 그저 내 안에 있을 뿐이라는, 명확히는 기억나지 않는 수많은 명언들과 노래 가사들과 소설가들의 문학작품 덕분에 나는 오늘을 또 이겨낼 수 있었다는 생각이다.
첫댓글 누구도 쉽게 할 수 없는 게 '결정'인 것 같아요. 그에 따르는 '책임'도 같이 지게 되고요. 하지만 정답이 없는 삶에서 누군가는 선택을 하고 그 다음 결과를 기다릴 수 밖에 없는 것 같아요. 어려운 결정을 하신 가족분들과 선생님에게 잠시라도 쉼과 위안이 있길 바랍니다....
너무 많은 말들이 마음 속에 수런거려서 무슨 말부터 해야 할지... 가족들의 용기에 박수를 보냅니다. 이 봄이 그 어느 때보다도 귀중한 시간이 될 거 같아요.
저도 시어머니 갑상선암 수술을 밀어붙였는데, 2달 후 돌아가시는 바람에...
장례식장에서 시누이가 수술을 안했으면 이러진 않았을거란 얘기를 주위 사람들한테 하는데, 너무 마음이 무거웠어요. 그 후 책임질 일은 하고 싶지 않더라구요...
힘내세요, 샘~
선택에 대한 책임... 그 무게감이 너무 커서 자꾸 선택을 미루게 되는 것 같아요.
지나고 나면, '그 때 그랬을걸...' 하고 후회하지만 당시에는 그게 최선의 결정이었을 거에요.
엄마의 결정이 최선이었노라고 평생 말씀해주시는 거 너무 훌륭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