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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야를 죽이려는 이세벨 19:1~4
1 아합이 엘리야가 행한 모든 일과 그가 어떻게 모든 선지자를 칼로 죽였는지를 이세벨에게 말하니
2 이세벨이 사신을 엘리야에게 보내어 이르되 내가 내일 이맘때에는 반드시 네 생명을 저 사람들 중 한 사람의 생명과 같게 하리라 그렇게 하지 아니하면 신들이 내게 벌 위에 벌을 내림이 마땅하니라 한지라
3 그가 이 형편을 보고 일어나 자기의 생명을 위해 도망하여 유다에 속한 브엘세바에 이르러 자기의 사환을 그곳에 머물게 하고
4 자기 자신은 광야로 들어가 하룻길쯤 가서 한 로뎀나무 아래에 앉아서 자기가 죽기를 원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거두시옵소서 나는 내 조상들보다 낫지 못하니이다 하고
엘리야를 위로하시는 하나님 19:5~10
5 로뎀나무 아래에 누워 자더니 천사가 그를 어루만지며 그에게 이르되 일어나서 먹으라 하는지라
6 본즉 머리맡에 숯불에 구운 떡과 한 병 물이 있더라 이에 먹고 마시고 다시 누웠더니
7 여호와의 천사가 또다시 와서 어루만지며 이르되 일어나 먹으라 네가 갈 길을 다 가지 못할까 하노라 하는지라
8 이에 일어나 먹고 마시고 그 음식물의 힘을 의지하여 사십 주 사십 야를 가서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니라
9 엘리야가 그곳 굴에 들어가 거기서 머물더니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10 그가 대답하되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 열심이 유별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제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그들이 내 생명을 찾아 빼앗으려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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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요약]
이세벨은 엘리야가 행한 일을 듣고 사신을 보내 그를 반드시 죽이겠다며 위협합니다. 엘리야는 브엘세바로 도망가 로뎀나무 아래서 하나님께 자기 생명을 거두어 주시길 청합니다. 천사를 통해 위로받은 그는 음식을 먹고 40일 만에 호렙산에 이릅니다. 하나님의 물음에 그는 자신의 상황을 아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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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야를 죽이려는 이세벨 19:1~4
놀라운 기적을 목격하고도 구경꾼에 그치는 사람이 있습니다. 아합이 그러합니다. 갈멜산에서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목격하고도 그는 아내 이세벨에게 사건의 경위만 전할 뿐 하나님이 참신이시라고 고백하지 않습니다. 그는 ‘내일 반드시 엘리야를 죽이겠다’고 하는 이세벨(2절)을 막지 않습니다. 엘리야는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유다의 최남단 브엘세바까지 도망합니다. 그는 갈멜산에서의 승리 후 왕이 변화되고 영적 부흥이 일어나리라 기대했을 것입니다. 기대가 좌절되면 더 깊은 절망에 빠지는 법입니다. 수백 명의 이방 선지자와 싸워 승리한 위대한 선지자 엘리야도 좌절과 두려움에 빠지는 연약한 사람이었습니다.
● 더 깊은 묵상
갈멜산 사건을 전해 들은 이세벨은 어떻게 반응했나요?
오랜 기도와 확신으로 준비한 일이 뜻대로 되지 않을 때 내 심경은 어떠한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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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야를 위로하시는 하나님 19:5~10
하나님이 천사를 보내셔서, 절망에 빠져 잠든 엘리야를 위로하십니다. 전에 까마귀와 사르밧 과부를 통해 주셨던 양식을 이번에는 천사를 통해 주십니다. 엘리야는 두 번이나 천사가 마련해 준 음식을 먹고 기운을 차린 후에 아주 멀리 호렙산까지 갑니다. 호렙산은 시내산의 다른 이름으로, 모세 시대에 이스라엘이 하나님과 언약을 맺었던 곳입니다. 하나님은 호렙산 동굴에 숨은 엘리야를 찾아오셔서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9절)라고 물으십니다. 모든 것을 알고 계심에도 엘리야가 자신의 답답한 속내를 풀어내도록 질문하십니다. 하나님은 엘리야의 열정, 고립감, 죽음의 공포, 억울함 등 모든 것을 묵묵히 들어 주십니다. 하나님은 최고의 위로자요 상담자십니다.
● 더 깊은 묵상
하나님은 절망한 엘리야를 어떻게 위로하시고 일으켜 세우셨나요?
내가 깊은 절망에 빠졌을 때 하나님은 나를 어떻게 위로해 주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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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큰 뜻을 보는 믿음
어떤 교회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한 성도가 백혈병에 걸렸습니다. 작은 교회였기 때문에 교인들 사이에 비상이 걸렸습니다. 모든 교인이 하나 된 마음으로 기도했습니다. 이후 병세가 호전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그 성도의 몸에 이상 반응이 나타났고 곧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많은 성도가 낙심했고, 몇몇은 교회를 떠나기도 했습니다.
이는 다소 극단적인 예일 수 있으나, 신앙생활을 하다가 하나님께 단단히 삐친 사람들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자신으로서는 마땅히 구할 것에 대해 하나님께 도우심을 구했지만 응답받지 못하고, 마치 버려진 것만 같은 배신감에 괴로워하는 이가 많습니다. 하나님을 믿었기에 실망감이 더 컸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번만큼은 해결해 주실 줄 알았는데, 적어도 그 상황에서는 하나님이 개입해 주실 줄 알았는데, 아무런 응답도 해 주시지 않은 하나님 때문에 좌절감에 빠지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나 이는 주님 뜻을 알지도 못하면서 스스로를 자기 생각에 가두다 보니 생기는 결과입니다. ‘실망의 무덤’, ‘두려움의 무덤’에 갇히는 것과 같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우리가 갇혀 있기를 바라지 않으십니다. 절망의 자리, 낙망의 자리, 고립의 자리에서 벗어나 주님의 더 큰 뜻을 보길 원하십니다.
주님은 우리를 살펴 주십니다. 우리의 문제를 뛰어넘어 일하십니다. 주님의 초청을 듣고 불신의 방에서 나오십시오.
완벽은 우리 몫이 아닙니다 / 김경진_ 두란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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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절묵상:열왕기상 19장 4~5절
참된 위로는 하나님께 있습니다. 엘리야는 기근 때에 까마귀와 사르밧 과부를 통해 하나님의 도우심을 경험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멀리 도망해 자기 처지를 비관하며, 죽기를 간청합니다. 잠든 엘리야를 천사가 어루만집니다. 어루만졌다는 말은 위로했다는 뜻입니다. 인생에서 좌절의 상황은 피할 수 없으나, 위로의 하나님을 만나면 다시 일어설 수 있습니다. 힘들 때에는 지금까지 내 삶을 지켜 주신 분이 '하나님'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절망과 의심에 부딪힐 때 상황을 보지 말고, 주님이 주신 말씀만을 기억해야 한다. - 프랭크 미너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제 마음이 무너지고 절망으로 가득할 때 위로의 하나님을 바라보겠습니다. 혼자 남은 것 같은 곳에 하나님이 계시고, 스스로 일어날 수 없을 때 손 내밀어 일으켜 주시는 하나님이 계심을 알게 하소서. 삶의 모든 기대와 소망을 완전하신 하나님께 두는 믿음을 주소서.
오늘의 찬송
(새 300 내 맘이 낙심되며)
하나님은 우리에게 조용한 음성으로 말씀하시고, 우리가 해야 할 일을 일깨워 주시는 하나님입니다.
‘나’에게 말씀하신 것을 적용함
주님의 세밀한 음성에 귀를 기울이고, 그 음성에 온전히 순종하며 나아갈 수 있는 상태를 마련하도록 하자
우리를 만나 주시고, 우리가 가야 할 길과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일깨워 주시는 그분의 뜻을 잘 헤아리고, 온전히 순종하며 나아가도록 하자
주님께서 맡겨 주신 일들에 온전히 순종하고, 묵묵히 최선을 다해 맡겨 주신 일들을 완수해 나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자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1-4절 엘리야의 자기중심성을 꺾으십니다. 갈멜산 전투의 승리로 북이스라엘의 모든 악한 세력이 무릎 꿇을 거라 생각한 엘리야는 호기롭게 이스르엘(아합과 이세벨의 여름 궁궐)로 달려가지만(18:44), 엘리야를 죽이겠다고 날뛰는 이세벨의 끄떡없는 모습만 확인하고 맙니다. 한순간에 불안과 절망에 삼켜진 엘리야는 북이스라엘을 탈출하여 남유다의 남쪽 경계인 브엘세바에 몸을 숨깁니다. 엘리야는 ‘역사상 가장 뛰어난 선지자’라는 자기 성취감에 도취해 있었지만, 이제는 ‘조상들보다 낫지 못한 자’라고 자신을 비하하며 로뎀나무 아래서 죽기를 구합니다. 자신이 순종으로 부름받았을 뿐 성공으로 부름받은 것이 아님을 잊은 것입니다.
5-8절 사명의 길 반대편으로 도주한 후 박 넝쿨 아래서 죽기를 바란 요나처럼 행동하는 엘리야를, 요나에게 하셨던 것처럼 부드럽게 설득하십니다. ‘넉넉하다’며 사명의 길을 끝내려는 엘리야에게, ‘넉넉한’ 음식을 주시며 새로운 사명의 길로 나아갈 기운을 주십니다. 그리고 모세가 사십 주야를 머물렀던 호렙산으로(출 24:18) 사십 주야에 걸쳐 인도하셔서, 그가 모세처럼 다시 백성을 인도해야 함을 상기시키십니다. 불평과 의심 많은 내 삶도, 하나님은 이처럼 끈질기게 타이르고 설득하여 인도해오셨습니다.
9-14절 하나님의 위대한 승리를 잊고 나쁜 상황만 선택적으로 기억하여 동굴로 숨어버린 엘리야를 나무라지 않으시고 부드럽게 말씀하십니다. 바람과 지진과 불이 아닌, ‘세미한 소리’로 임재해주십니다. 끝까지 하나님 앞에서 “겉옷으로 얼굴을 가리고” 반항하는 엘리야를 포기하실 생각이 없으십니다. 우리도 이제 그만 동굴에서 나올 때가 되었습니다.
(왕상 19:1~21절)
❝새롭게 빚으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깨닫는 삶❞
❚ 하나님이 주신 사명에 집중하며, 의지하여 새롭게 주시는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 어떤 마음 가짐으로 살아가야 합니까?
➲ 하나님이 주신 위로와 회복을 소망해야 합니다(1~10절).
이세벨의 위협에 엘리야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이스라엘로부터 남쪽 유다 최남단 브엘세바까지 도망갔습니다. 홀로 광야로 들어가 로뎀 나무 아래 앉은 엘리야는 더 이상 살 힘이 없다고 하나님께 고백합니다. 갈멜 산의 그 용기와 담대함은 사라지고, 자신의 기대와 전혀 다르게 펼쳐지는 상황 앞에서 낙심과 좌절에 빠졌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엘리야를 책망하지 않으시고 ‘...어루만지며... 어루만지며...’(5,7절) 위로하십니다. 힘을 얻은 엘리야는 사십 주 시십 야를 걸러 하나님의 산 호렙에 도착합니다.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9절).. 엘리야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를 열거하면서 자신만 홀로 남아 생명의 위협을 받고 있다고 하면서 불평합니다.
하나님은 천사를 보내셔서 영적 침체에 빠져 있는 엘리야를 위로하시며 영육간에 새 힘을 얻도록 하십니다. 하나님은 당신이 택한 백성들을 그냥 내버려두시지 않으시며 위로하시고, 격려하십니다.
바울 역시도 자신의 약함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였는데, 이는 자신이 약할 때 그리스도의 안위와 능력이 자신 안에서 강해진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고후 12:10)입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슬픔이 기쁨으로 바뀌며, 약한 자도 강건해지고 두려워하는 자도 용사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영적 침체에 빠져 있다면 낙심하지 말고 뒤로 물러가 절망에 빠질 것이 아니라 주님을 향한 믿음을 강건하게 함으로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는 자로서의 사명을 잘 감당해 나아가야 합니다.
낙심과 한숨 그리고 절망의 그 자리에서 내 자신을 위로와 회복으로 이끄시는 하나님을 깊이 경험하며 다시금 일어나 사명을 주신 분도, 그 사명을 이루도록 도와주실 분도 하나님이심을 널리 전하는 자로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내가 내일 이맘때에는 반드시 네 생명을 저 사람들 중 한 사람의 생명과 같게 하리라 그렇게 하지 아니하면 신들이 내게 벌 위에 벌을 내림이 마땅하니라 한지라’ - 이세벨의 그 위협에 갈멜산의 영웅이 그만 정신 줄을 놓고 맙니다. 얼마나 다급했던지 북 왕국 이스라엘에서 남 왕국 유다로 단숨에 도망갑니다. 그것도 부족해 몸종을 남겨놓고는, 네게브 사막으로 더 들어갑니다. 안전지대로 들어서자 그의 허탈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자기 생각에 이스라엘의 하나밖에 없는 선지자가 자기 생명을 위해 도망을 쳤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하늘에서 불을 내리게 했던 장본인이 말입니다. 어제는 그렇게 영광스런 몸이었는데 오늘은 그렇게 창피스러운 몸이 된 것입니다.
극과 극을 달린 자가 원하는 것은 하나밖에 없을 것입니다. 죽고 싶은 마음이지요. 로뎀 나무라고 헤 봐야 키가 작아 태양을 마크해주는 나무가 아닙니다. 거기서 그는 차라리 죽여 달라고 합니다.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라’는 야고보 기자의 말에 동감이 갑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그에게 사자를 보내주십니다. 음식과 물을 먹이고 길을 갈 수 있게 하기 위함입니다. 엘리야가 사십 주 사십 야를 가서 도착한 곳이 호렙산입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말씀해 주시고 싶어서 보낸 곳입니다. 그곳에 보내신 것은 곧 우리에게도 전해주고 싶은 하나님의 강한 메시지가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엘리야는 북 이스라엘에서 남 유다 최남단 브엘세바까지 내려 옵니다. 하지만 왔던 길을 고스란히 되돌아가야 합니다.. 벗어난 것만큼 되돌아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상상하는 파라다이스에 있지 않습니다. 현실에 계십니다. 어렵다고 현실을 기피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설령 죽음이 있을지라도, 죽음도 현실입니다. 하나님은 엘리야를 원 위치시킵니다. 천국이 아니라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미지로 존재하는 분이 아니라 현실세계에서 실존하시는 분입니다. 그분은 모세도 다시 애굽으로 보내고, 엘리야도 다시 이스라엘로 돌려보냅니다. 현실이 우리 삶의 현장입니다.
북한에 지하교회 성도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여간해서 탈출하지 않습니다. 탈북 하는 사람들은 거의 다 비신자들로, 그들이 탈북하지 않는 이유는 남아서 할 일이 있기 때문입니다. 곧 하나님을 그 땅에서 예배하기 위함이며, 또한 혹시라도 있을 택한 자들을 영접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왜냐면, 북한 땅에 흘리신 선교사의 피를 하나님께서 모른 채 외면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 이유로 또한 준비된 하나님의 사람들을 위하여 그 시련의 땅을 떠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 남한의 성도들이 도전받고, 본 받아야 할 것입니다. 믿음의 영웅은 태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불같은 고난의 현장을 떠나지 않을 때 만들어집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대가 크면 실망도 큰 것입니다 인류사에 전무후무한 갈멜산의 기사를 보았으니, 이제는 그들이 회개하리라 기대했지만, 바뀐 것은 하나도 없고 오직 자신을 죽이려는 그들의 의지만 확인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낙심하지 않기 원하십니다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지 말라"(살후3:13)
그래서 마음에 힘이 없어 로뎀 나무 아래 누워 자는 그에게 천사를 보내셔서 구운 떡과 물을 주셨고, 다시 누웠더니 또 다시 먹고 마시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그 힘을 의지하여 사십 일을 걸어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를 수 있었습니다
참으로 우리 주님은 자기 사람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심으로 우리가 비록 낙심할지라도 오셔서 위로 하시고 새 힘 주셔서 능히 이 믿음의 길 걸을 수 있게 도우십니다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요13:1)
그러므로 혹시 우리가 많은 고난을 생각함으로 낙심 되더라도 우리를 끝까지 사랑하시는 성실하신 주의 인자와 긍휼을 기억하여 다시 일어서기 원합니다
"내 고초와 재난 곧 쑥과 담즙을 기억하소서 내 마음이 그것을 기억하고 내가 낙심이 되오나 이것을 내가 내 마음에 담아 두었더니 그것이 오히려 나의 소망이 되었사옴은 여호와의 인자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 이것들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성실하심이 크시도소이다"(애3:19~23)
그러므로 성실하신 주님이 우리의 수고를 헛되게 하지 않으실 줄 믿고 선한 일에 더욱 힘쓰기 원합니다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고전15:58) 뿐만 아니라,
우리가 선한 일로 심은 것을 주의 때에 풍성히 거두게 하실 줄 믿습니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갈6:9)
로뎀나무 아래 차라리 죽음을 달라고 호소하는 엘리야의 모습은 ‘우울증’과 ‘번아웃’의 대표적인 예로 정신의학에서도 흔히 인용됩니다. 사실 그의 온 인생을 다해 하나님의 음성에 순종하고, 하나님의 불과 물의 이적을 일으키는 통로가 되었을지라도, 하나님의 나라가 그를 통해 그 땅 가운데 침투되는 방법은 그의 기대와 생각을 넘어서는 것이었습니다.
우상에 빠져 허덕이고 자신을 죽이겠다고 겁박하는 이세벨조차도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기다림의 대상자일지 모릅니다. 하나님은 기대에 무너진 엘리야를 재촉하지도, 그를 먼저 가르치려고 하지 않으시고 그를 먹이시고 쉼을 주시며 그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주십니다.
그리고 그가 기운을 차려 호렙산에 이르러 굴에 들어가 밤을 지낸 후 그를 찾아오셔서 “여기서 뭘 하고 있느냐?"라고 물으십니다.
그는 오바댜가 살려둔 100명의 선지자, 그리고 바알과 아세라의 선지자 850명을 함께 멸했던 이스라엘 백성을 다 잊어버리고, ‘열심’을 다했고 ‘혼자’남았다고 말합니다.
이세벨이 보낸 그 어떤 군사도 그를 따라오지도, 위협하지도 않았지만, 그는 그녀가 죽이겠다고 한 그 말에 사로잡혀 죽음 앞에 놓여 있는 사람처럼 하나님께 하소연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최선을 다하지만, 하나님의 때를 인내하여 기다리고, 절망과 죽음의 권세 아래 놓여 있을지라도, 아버지의 생명과 평안을 누리는 것이 그 자녀 됨의 특권입니다. 그 놀라운 인도하심 아래, 날마다 예수 그리스도를 더 알고 닮아가는 주님의 자녀 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
날마다 우리의 위로자가 되시고 피난처가 되어 주시니 감사와 영광을 올려 드립니다.
우리의 열심만으로, 하나님 나라에 대한 무지함으로 말미암아
성급하고 두려움에 사로잡혔던 과거의 시간을 돌아보고
오직 성령의 권능으로 땅끝까지 이르러 증인이 되는
그 사명을 넉넉히 감당할 수 있도록 말씀하여 주시옵소서.
이 시간에도 열방 가운데 주님의 복된 소식 전하시는
선교사님들의 가정과 사역 위에 기름 부어주시고,
그 모든 필요에 넘치도록 아버지께서 풍성히 채워 공급하여 주시옵소서.
질병과 전쟁, 기근과 핍박, 온갖 재해로 말미암아 고통받고
신음하는 주님의 백성들을 불쌍히 여겨 주시고,
치유와 회복의 광선을 비춰 주시옵소서.
이 나라와 백성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아버지의 뜻을 높이는 거룩과 제사장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의 길과 진리와 생명 되신 예수님의 거룩하신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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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한 사람도 슬럼프를 경험합니다. 영적 승리 후에도 슬럼프가 찾아올 수 있습니다. 영적 침체를 이겨 내는 최선의 방책은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께 고정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상황에 낙심하지 말고 크신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한번 영적으로 엄청난 성공을 경험했다고 해서 자신이 원하던 변화가 반드시 일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에 대한 헌신과 순종에도 불구하고 엘리야는 가뭄이 끝난 후에도 도망자 신세가 됩니다. 이번에는 이세벨에게서 생명을 위협받습니다. 그는 두려움 속에 북이스라엘을 떠나 남유다를 거쳐 시재 반도의 호렵 산에 이릅니다. 하나님께서는 허탈감과 외로움과 두려움에 몸부림치는 그에게 천사를 보내 보살피셨습니다. 또한 직접 나타나셔서, 그가 감당할 사명을 주시며 그를 회복시키셨습니다.
호렙산에서 엘리야에게 나타나신 하나님(1-18)
우리가 낙심할 때에도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책망하는 대신에 위로하며 회복시키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신실하지 못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우리를 신실하게 대하시는 분입니다. 우리에게 승리를 허락하신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낙심하고 있을 때 더욱 가까이 다가오십니다. 그러므로 낙심이 찾아올 때에라도 주저앉지 말고 하나님 앞으로 더 나아가야 합니다. 그곳에서 우리는 위로와 회복의 하나님을 깊이 경험하며 다시금 일어설 힘을 얻게 됩니다.
1아합이 엘리야가 행한 모든 일과 그가 어떻게 모든 선지자를 칼로 죽였는지를 이세벨에게 말하니 2이세벨이 사신을 엘리야에게 보내어 이르되 내가 내일 이맘때에는 반드시 네 생명을 저 사람들 중 한 사람의 생명과 같게 하리라 그렇게 하지 아니하면 신들이 내게 벌 위에 벌을 내림이 마땅하니라 한지라 3그가 이 형편을 보고 일어나 자기의 생명을 위해 도망하여 유다에 속한 브엘세바에 이르러 자기의 사환을 그 곳에 머물게 하고 4자기 자신은 광야로 들어가 하룻길쯤 가서 한 로뎀 나무 아래에 앉아서 자기가 죽기를 원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거두시옵소서 나는 내 조상들보다 낫지 못하니이다 하고 5로뎀 나무 아래에 누워 자더니 천사가 그를 어루만지며 그에게 이르되 일어나서 먹으라 하는지라 6본즉 머리맡에 숯불에 구운 떡과 한 병 물이 있더라 이에 먹고 마시고 다시 누웠더니 7여호와의 천사가 또 다시 와서 어루만지며 이르되 일어나 먹으라 네가 갈 길을 다 가지 못할까 하노라 하는지라 8이에 일어나 먹고 마시고 그 음식물의 힘을 의지하여 사십 주 사십 야를 가서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니라 9엘리야가 그 곳 굴에 들어가 거기서 머물더니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10그가 대답하되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 열심이 유별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제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그들이 내 생명을 찾아 빼앗으려 하나이다 11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너는 나가서 여호와 앞에서 산에 서라 하시더니 여호와께서 지나가시는데 여호와 앞에 크고 강한 바람이 산을 가르고 바위를 부수나 바람 가운데에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바람 후에 지진이 있으나 지진 가운데에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12또 지진 후에 불이 있으나 불 가운데에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더니 불 후에 세미한 소리가 있는지라 13엘리야가 듣고 겉옷으로 얼굴을 가리고 나가 굴 어귀에 서매 소리가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14그가 대답하되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 열심이 유별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제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그들이 내 생명을 찾아 빼앗으려 하나이다 15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너는 네 길을 돌이켜 광야를 통하여 다메섹에 가서 이르거든 하사엘에게 기름을 부어 아람의 왕이 되게 하고 16너는 또 님시의 아들 예후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왕이 되게 하고 또 아벨므홀라 사밧의 아들 엘리사에게 기름을 부어 너를 대신하여 선지자가 되게 하라 17하사엘의 칼을 피하는 자를 예후가 죽일 것이요 예후의 칼을 피하는 자를 엘리사가 죽이리라 18그러나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에 칠천 명을 남기리니 다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하고 다 바알에게 입맞추지 아니한 자니라(1-18)
아합은 엘리야가 갈멜 산에서 행한 일을 이세벨에게 알립니다. 이세벨은 복수를 다짐하며 엘리야를 죽이겠다는 전갈을 보냅니다. 엘리야는 자신을 죽이겠다고 위협하는 이세벨을 피해 브엘세바로 도망합니다. 홀로 광야로 들어가 로뎀 나무 아래 앉은 엘리야는 더 이상 살 힘이 없다고 하나님께 고백합니다.
(1) 이세벨에게서 도망한 엘리야(1-7)
이세벨은 아합을 통해 갈멜 산 대결의 전말을 전해 듣고 엘리야를 죽이려 작정합니다. 열렬한 바알 숭배자인 그녀는 그동안 이스라엘에 퍼진 바알 숭배가 엘리야 때문에 큰 타격을 받았고, 자기가 후원하는 선지자들(18:19)이 그의 칼에 죽었음을 알고 격노했습니다. 그녀는 엘리야에게 경고장을 보내 다음 날까지 그의 생명을 없애지 않으면 신들의 어떤 벌도 달게 받겠다고 위협했습니다. 그런데 이때 바로 잡아들이라는 명령을 내리지 않은 것을 보면 이세벨도 갈멜 산 사건으로 인해 하나님과 엘리야의 위력에 맞서는 일을 주저한 것으로 유추됩니다. 이세벨의 위협에 엘리야는 목숨을 건지려 멀리 떠납니다. 가뭄을 예고한 후에는 아합의 수색망을 피해 도망해야 했습니다. 단지 목숨이나 두려움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명령과 주신 사명을 위해서였습니다. 그런데 비가 내린 후에조차 그는 도망자 신세를 면치 못합니다. 사명을 다 완수하여 안전할 것이라 생각한 그때가 최악의 상황이었습니다. 엘리야는 사르밧 여인(17:20)이나 오바댜(18:9-14)처럼 죽음 앞에서 무너져 내렸습니다. 살기등등한 이세벨의 위협은 그를 공포로 몰아넣었고, 수년간의 하나님의 임재와 기적을 기억 저편에 묻게 만들었습니다. 야고보가 말한 것처럼 그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었습니다(약 5:17). 그는 줄곧 여호와의 말씀이 임한 후 행동했으나, 이번에는 먼저 움직입니다. 그의 도망은 이처럼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자구책, 회피책이었습니다. 그는 북이스라엘의 이스르엘을 떠나, 남쪽 약 150킬로미터 떨어진 유다 남단의 브엘세바까지 갔습니다. 동행하던 사환을 그곳에 남겨두고, 혼자 남서쪽 광야로 하룻길을 더 들어갔습니다. 광야에서 작은 그늘이 돼주는 로뎀 나무를 찾은 그는 그 아래에 앉아 죽기만을 바랐습니다. 하나님께 자기의 생명을 거둬달라고 간구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생명을 위해(3) 그 먼 곳까지 와서는, 이제 충분하니 여기서 죽겠다고 하는 것(4)은 모순적으로 들립니다. 그러나 이는 그가 죽은 조상들을 부러워할만큼 심신이 바닥난 상태임을 보여 줍니다. 탈진한 엘리야는 나무 아래 쓰러져 잠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여호와의 천사가 나타났습니다. 그는 자고 있는 엘리야를 쓰다듬어 깨우며 “일어나서 먹으라”고 권유합니다(5). 그의 머리맡에는 놀랍게도 구운 빵과 물 한병이 있었습니다. 그는 먹고 마시고, 다시 잠들었습니다. 그 후 천사가 또 와서 같은 말과 행동을 반복하며 갈 길이 아직 멀다고 귀띔했습니다(7). 엘리야는 일어나 먹고 마십니다. 천사를 보내 그를 보살피신 하나님은 까마귀와 사르밧 여인을 통해 그를 보살피셨던 그 하나님이십니다(17장).
(2) 호렙산에서 엘리야에게 나타나신 하나님(8-18)
이제 하나님은 직접 말씀으로 엘리야에게 임하십니다. 여호와의 천사가 가져다 준 음식으로 기운을 차린 엘리야는 40일에 걸쳐, 장장 300킬로미터 이상의 길을 주야로 걸어 시내 반도의 호렙 산(시내 산)에 이르렀습니다. 그가 그곳 동굴에서 유숙할 때 여호와의 말씀이 임했습니다. 침묵하셨던 하나님께서는 이제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고 말을 건네십니다(9). 이 물음은 엘리야를 책망하는 말이 아니라 자신을 돌아보고 다시 하나님께 돌아오라는 신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가 이스라엘을 떠난 이래 그를 고통 속에 두시면서도 그가 충분히 혼자의 시간을 보내고 먹고 쉴 수 있게 보살피셨습니다. 엘리야는 본인이 여호와께 열성을 다했으나 목숨이 위태한 채로 혼자 남았다면서 허탈감과 외로움과 두려운 심정을 토로합니다. 그가 부른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10,14)는 ‘온 군대의 하나님’으로서 바알을 꺾고 승리한 전사임을 암시합니다. 엘리야의 “열심”은 하나님만을 향한 충성과 신의에서 나온 질투였습니다. 열정을 불태우며 사명을 완수했기에, 그는 백성들이 하나님께 돌아오고 자신은 자유로울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현실에서 백성들은 하나님의 언약을 버리고, 그의 제단들을 헐었으며, 여호와의 선지자들을 죽게 내버려 두었습니다. 혼자 남겨진 자신은(실상은 100명의 선지자가 살아있다! [18:4]) 목숨마저 위태롭습니다. 그의 한탄은 인간의 눈으로 가뭄 전과 진배없는 현실을 바라볼 때 생기는 본능적인 반응입니다.
말씀으로 임하신 하나님께서는 이번에는 직접 나타나 엘리야를 다시 사역의 길로 부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엘리야에게 굴에서 나가, 그 앞에 서라고 명하셨습니다. 엘리야는 하나님의 얼굴을 직접 보지 않기 위해(출 33:20) 겉옷으로 얼굴을 가리고 나갔습니다(13). 그 후 여호와가 지나가시자 여호와 앞에 크고 강한 바람이 불어, 산이 갈라지고 바위들이 부서졌습니다. 바람 후에는 지진과 불이 연달아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바람, 지진, 불 가운데 여호와는 계시지 않았습니다. 대신 불 이후에 고요하고 가는 소리(“세미한 소리”, 12)가 들렸습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강림의 장면은 떨기나무에서 모세에게 소명을 주신 일(출 3:2-4), 모세 앞에 나타나신 일(출 33:18-23) 등을 연상시켜 그가 엘리야에게도 소명을 주고 세밀하게 인도하실 것을 기대하게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엘리야에게 했던 질문(9)을 반복하셨고(13), 엘리야 또한 대답을 반복합니다(14).
하나님께서는 이제 그에게 새 사명을 맡겨 선지자 직분을 회복하게 하십니다. 그의 임무는 하나님이 지목한 세 명에게 기름을 부어 왕과 선지자로 세우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메섹의 하사엘을 아람의 왕으로, 님시의 손자(“아들”) 예후를 이스라엘 왕으로 사밧의 아들 엘리사를 선지자로 임명하셨습니다(16). 이들은 나라와 직분이 다르지만, 하나님께서 북이스라엘의 죄를 심판하는 데 쓰임 받을 자들입니다. 하사엘과 예후는 북이스라엘을 심판하는 매개(“칼”)가 될 것이며, 그들의 재난을 피하는 자들은 엘리사에 의해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진멸의 시대에도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 중 바알을 섬기지 않는 자 7천 명을 남기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여기서 초점은 남겨진 ‘수’가 아니라 남긴 ‘주체’가 ‘하나님’이심에 있습니다. 7천이란 수는 상징적인 수로 남겨진 무리를 총칭합니다. 그들은 바알에게 무릎을 꿇거나 입맞춤을 하지 않은 신실한 자들입니다(호 13:2). 큰 심판의 때에 신실한 자를 따로 남기신다는 하나님의 약속에는 크신 긍휼과 주권이 드러납니다(습 3:12-13; 롬 11:5). 앞서 갈멜 산에서 백성들의 신앙 고백이 그들의 마음을 미리 돌이키신 하나님의 긍휼로 인해 이루어진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18:36,39). 하나님의 약속은 홀로 남겨진 것 같아 외롭고 괴로워하는 엘리야를 향한 위로의 말씀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