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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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란인 오늘도 여전히
퉁퉁불어터진 얼굴로 등교를 한다.
아침에 일찍 깨워주지 않아서
머리끝까지 심통이 난 것이다.
'미란아,
그래도 아침은 먹고 가야지'
'됐어!'
'학교가면 배고플 텐 데
조금이라도 먹고 가'
'싫다고 했잖아! 아빠나 먹으란 말야!'
요즘 미란인
한 학년 위의 태영이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한참 외모에
신경을 쓰고 있던 참이었다.
어제는 아빠 주머니에서
만원짜리 한 장을 훔쳐 큐빅이
촘촘히 박힌 예쁜 머리띠도 샀다.
미란인 교실 문을 들어서는 순간
머리띠가 너무 예쁘다며
모두들 부러운 눈초리로 쳐다보자
자신이 진영이 못지않은
부잣집 딸이 된 것 만 같아
우쭐하는 기분이 들었다.
그런데 점심시간이 지나고
갑자기 선생님께서 불러
교무실로 내려 간 미란인 그 자리에
서서 꼼짝도 할 수가 없었다.
아빠가 오신 것이다.
후줄근한 옷차림에 더러운 운동화.
고생한 흔적이 역력한 두 볼이 움푹 패인
파리한 얼굴에 한 쪽 다리를 절며...
막노동을 하시는 아빠에게서
나는 역한 땀냄새와 초라해 보이는
아빠의 모습이 미란인 너무나 창피했다.
고개만 푹 숙이고 누가 볼까
내내 불안하고 수치스러운
기분마저 들었던 미란인 교무실을 나와
현관으로 향하는 내내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그렇게 현관을 나서는
순간 미란인 그런 아빠의 모습에
더 화가나 소리를 질렀다.
.'여긴 뭐하러 와!
누가 아빠보고 학교에 오랬어?' '...'
'얼른가'
.애들이보면 창피하단 말야!
'미란아, 아빠가 그렇게 창피하니?'
'몰라서 물어? 얼른 나가기나해!'
다음날 아침,
아빠는 여전히 새벽부터 준비하신
도시락 가방을 쥐어 주시며
아침밥을 먹으라고 하신다.
하지만 미란인
그날 아빠가 학교에 오신것에 대해서
너무나 화가 나서
도시락도 그냥 두고 나와 버렸다.
점심시간 수위실에
기사 아저씨가 맡겨 놓으셨다며
친구가 도시락 가방을 건네주었다.
도시락을 쳐다보기조차 싫었다.
그리고 수업을 거의 마칠 즈음이었다.
선생님께서 황급히 부르신다며
빨리 교무실로 내려오라는
친구의 말에 미란인 덜컥 겁이 났다.
또 아빠가 오신게 아닐까....
교무실로 들어선 순간
미란인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미란일 쳐다보는
선생님의 표정은 그리 밝지 않았다.
'미란아,
아빠가 지금**병원에 계신단다.
얼른 가방 챙겨와라.
선생님이랑 같이 가자
'미란인 잠시 머리
속이 멍해지는 듯 했지만
'설마 별일이야 있겠어? '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왜 선생님까지 가세요?
저 혼자 가도 돼요.
'그때까지 미란인 그리 큰일이
아닐거라고 생각했지만
안쓰러운 눈빛으로 쳐다보는
선생님의 눈에 고인 눈물을 보는
순간 하늘이 무너지는 듯했다.
병원으로 가는 내내
미란인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다.
가난 때문에
미워하고 원망했던 아빠지만
안 계신다고 생각하니
너무나 무섭고 두려웠다.
영안실에서
아빠의 얼굴을 확인하고
돌아서는 미란인 그토록
감추고 싶어 했던
아빠가 사무치게 그리웠다.
새벽에 도시락을
싸시던 거친 손이 이제서야
미란이의 눈에 들어왔다.
간암말기...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아빠는 혼자서 그렇게 견뎌 내셨고
고통 속에 혼자 외롭게 떠나신 것이다.
그날 학교에 다녀가신 것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미란이가 졸업할 때까지의
등록금을 내기 위해서 였다는
선생님의 말에 미란인그날 자신이
아빠를 향해 내 뱉았던 싸늘한 말들과
아빠의 슬픈 얼굴이
떠올라 가슴이 미어지는 듯했다.
아침마다 도시락을 싸주시던...
아침밥을 안 먹는다고 잔소리를 하던
아빠가 너무나 보고 싶었다.
그날 점심시간,
아빠가 수위실에 맡겨놓고 가신
도시락을 열어 보지도 않았던 미란인
그제서야 도시락을 풀렀다. 그
리고 도시락 안에
들어있던 하얀 봉투를 발견했다...
아빠의 편지와 예금 통장...
'사랑하는 내 딸 미란아!
어떤 말부터 해야 할지 모르겠구나.
너한테 해준 것도 없이 잃게
험한 세상에 널 혼자 두고
가야 하는 아빠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해 주었으면 한다.
병원에 갔더니 간암이라고 하더구나.
수술하면 조금 더 살 수 있다고 하지만
아빠는 그렇게 하지 않기로 결심 했단다.
아빠가 없는 미란이가
더 행복할 수 잇을 것 같아서..
그리고 수술할 때 써야 하는
돈으로 우리 미란이 더 좋은 옷,
좋은 것 먹이고 싶었단다.
혹시나 나중에라도
아빠한테 미안한 생각 갖고
후회하거나 하진 마.
그럼 아빠가 더 미안해지니까..
아빠는 미란일
이 세상에서 누구보다 사랑해.
힘들 때마다 우리 미란이
생각하면서 그렇게 견뎌왔단다.
너에게 부족한 아빠가 되어서...
이렇게 또 널 혼자 두고 가는 게
너무나 미안해. 우리 예쁜 딸 미란이...
한번 안아보는 게 소원이었는데....
아빠 없다고 밥 굶지 말고
아침 밥 꼭!꼭! 먹고 다니고
귀찮더라도 조금만 일찍 일어나서
도시락 챙겨가지고 다녀. .
항상 아빠가
하늘 에서 지켜 볼 거야. 사랑한다...
'눈물로 얼룩진 아빠의 편지.
그리고 도시락 안에 들어있는
통장에는 아빠가 입을 것 못 입고,
먹을 것 못 먹고, 아픈 걸 참아내며...
그렇게 평생을 모으신
1억원이라는 숫자가 찍혀 있었다.
'아빠, 나도 많이 사랑해...
'미란인 그제서야 조그만 목소리로
중얼거거리면 흐느꼈다.
살아계실 때
그렇게 아빠가 듣고 싶었던
말이었다는 것을 알기에...
이제는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