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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게시글
고구려 토론방 북연(北燕)은 고구려의 속국이었을까?
야스페르츠 추천 0 조회 978 11.05.27 20:19 댓글 6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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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1.05.27 23:10

    첫댓글 북연이 어째서 중국이라는 것인가요? 당시 중국이란 개념이 있었을까요? 중국이란 권위 그것은 우리가 상상해낸 것이 아닐까요. 도대체 북연이란 약한 나라가 무슨 권위를 갖고 있을까요. 우리가 아니면 나머지는 다 중국인가요? 후연은 어디까지나 선비족의 국가였고, 그들은 오랑캐의 나라였습니다. 북연은 어디까지나 당시 중국에서도 변방이고 오랑캐의 나라입니다. 이 점을 다시 생각해 보셨으면 합니다. 그리고 북연사에 대해서 전문적으로 연구해 놓은 책도 보셨으면 합니다. 추천합니다. 지배선, [중세 중국사 연구 - 모용연과 북연사], 연세대출판부, 1998년.

  • 작성자 11.05.27 23:40

    모용연이 선비족이 세운 나라라는 점은 별로 고려 대상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고구려는 전연이나 후연의 책봉을 받았으며, 조공을 한 기록도 분명하게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따지자면 북위도 선비족이 세운 나라인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북위는 분명하게 중국식 책봉 체제를 고구려에 대해서 적용하였고(심지어 북연이 아직 남아 있는 상황에서도), 전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미욱한 제가 생각하기에, 선생님께서 모용연이 오랑캐이며 중국식 권위를 가지지 않았다고 주장하시려면 먼저 북위가 선보인 조공책봉체제부터 해결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 작성자 11.05.27 23:34

    물론 전연이나 후연이 아닌 북연의 권위에 대한 부분은 저도 한 번 추측해 본 것일 뿐이라 약소국에 불과한 북연에게 무슨 권위가 있느냐고 반론하신다면 저로써는 따로 드릴 말은 없습니다. 다른 의견이시라면 겸허하게 말씀을 듣겠습니다. 하지만 북연이 보인 명백한 독자 행동이나, 심지어 상전으로 스스로를 인식했던 부분은 분명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 먼저 해결해 주시지 않는 한, 저는 최소한 명분 상이라도 북연이 상국이었다는 생각을 바꿀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추천하신 책은 일독한 뒤에 말씀드리겠습니다.

  • 11.05.28 02:45

    춘추필법을 아시지요? 중국인들이 무조건 자신들의 역사는 높이고 이민족의 역사는 낮춰서 기록하는 일종의 역사왜곡이지요. 그리고 북연이나 후연, 북위 모두 범 선비족들이 세운 나라인데, 마치 중국(한족)의 나라로 생각하는 그들의 태도도 우습군요.

  • 작성자 11.05.28 03:47

    그런 춘추필법은 모릅니다. 제가 아는 춘추필법은 미언대의, 술이부작 등과 같은 원칙을 가진, 공자에게서 비롯된 지극히 명분을 중시하는 역사관입니다. 아스카 님이 말씀하신 그런 역사서술은 그냥 중국중심사관일 뿐입니다. 엉뚱한 것에 춘추필법을 가져다 붙이지 마십시오.

    그리고, 그런 중국중심사관이 존재하는 것과 이 글은 별개의 문제입니다.

  • 14.09.10 21:41

    조공기록은 그저 주관적인 사료에 의거한 것들이 대다수라 고구려의 조공 기록은 주관적인 중국 사료에 의거한게 많기 때문에 객관적인 신빙성은 담보하지 않은 것이지요 그리고 북연이 상전이라고 생각했다는 인식은 풍홍의 정신 나간 장수왕 책망 사실을 부풀려서 확대해석한 것에 불과한 터라 객관적인 사실에서 북연이 고구려에 공식적인 상전외교를 했다는 근거는 없는 상태이지요 요녕성 의현의 대고구려국 불상유물을 409년이 유력한 설을 고려하면 북연의 상전 인식설은 근거가 박약한 것으로 볼수밖에 없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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