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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주일설교. 무엇을 주고 제 목숨과 바꾸겠느냐 (마 16장 21-28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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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종교개혁주일입니다. 1517년 종교개혁이 일어 났으니, 올해가 505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종교개혁의 주요 인물인 루터, 칼빈 이라는 이름이 이제는 전혀 낮설지 않으실 겁니다.
종교개혁은 오직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만 구원 받는 것이 성경에 명확하게 기록되어 있고, 그 사실만이 유일하고 불변한 진리임을 선포한 사건입니다. 예수, 믿음, 구원, 이것 보다 중요한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종교개혁자들은 라틴어로 “아드 폰테스(Ad Fontes)” 라는 말을 외쳤는데, 아드는 영어의 전치사 to(~로, 에게)이며, 폰테스는 영어의 fountains(샘, 분수), 또는 sources(원천, 근원)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아드 폰테스는 “근원, 원천, 기본(to an origin, sources, basics)으로”라고 번역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시42:1) 라는 너무나 유명한 시편 구절에서, “시냇물을 찾기에” 라는 말이 라틴어로 “아드 폰테스 아쿠아룸(ad fontes aquarum)”입니다. 물은 생명의 근원이고, 물이 없으면 인간은 살 수 없습니다. 생명을 유지해 나가기 위해서 본능적으로 물을 찾아 마시듯이 우리의 믿음도 그 근원인 예수 그리스도(말씀)를 끊임없이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 종교개혁 정신이었습니다.
종교개혁 에서는 5대 솔라(sola, 라틴어 ‘오직’)라는 것이 표방 되었습니다. 오직 믿음, 오직 은혜, 오직 성경, 오직 그리스도, 오직 하나님께 영광, 이렇게 다섯 가지입니다. 외우실 필요는 없지만, 상식적으로 이런 것이 있다는 것을 알고 계시면 됩니다.
우리가 시간과 노력을 기울여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는 결정적 이유는 죄에서 구원 받는 다는 약속과 소망이 주어졌기 때문입니다. 유한한 육체는 썩어 없어질지라도 죽음 이후에 영광 스러운 모습으로 부활하여 하나님 나라에서 영생을 누리며 살 수 있다는 소망이 있기에 우리는 오늘 하루도 믿음을 지켜 가면서 인내하는 가운데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사도바울이 고백한 것처럼,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가진 소망이 이 세상의 생명뿐이면 모든 사람들 가운데 우리가 가장 불쌍한 사람들일 것입니다.”(고전 15:19, 우리말성경) 구원과 영생 소망이 없는 기독교라면, 단 한 사람도 더 이상 기독교인으로 살아가려고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성경에서 구원과 관련해서 가장 무서운 말씀이 무엇일까? 생각해 봤습니다. “무엇을 하든지 마음대로 하도록 내버려 두신다, 각 사람의 행위대로 갚으신다, 결단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 이런 무서운 경고의 말씀들이 언뜻 생각납니다. 모두 다 구원 받지 못하는 비참한 종말을 예고하는 무서운 말씀들입니다.
오늘 말씀도 구원에 대한 강력한 경고를 하는 동시에, 믿음으로 구원받을 자들이 어떤 사람들인지에 대해서 확실한 기준을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함께 나누면서, 아드 폰테스, 5대 솔라, 종교개혁정신이 마음에 새겨지고 내 믿음이 굳건하게 세워지는 은혜와 감동이 넘치시기를 축복합니다.
먼저 21절을 읽어 드립니다. “이 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나타내시니” 아멘
이 때로부터 라고 했는데, 이 때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앞서 16장 16절에서 드로는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라는 고백을 합니다. 예수님이 육체를 지닌 인간이실 뿐만 아니라, 세상을 구원할 구원자 이심을 밝히 드러내어 고백하였습니다. 이 때로부터는, 예수님이 그리스도(구원자) 이심이 공개적으로 드러난 때를 말합니다.
베드로의 고백을 들으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경고하시며 “자기가 그리스도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라고 입 단속을 단단히 시켜 놓으셨습니다. 그리고는 제자들에게 자신이 고난 받고 죽을 것이라는 이른바 수난 예고를 하십니다. 수난 예고는 총 3번 하셨는데, 오늘 본문의 수난 예고가 첫 번째 예고입니다.
예수님이 수난 예고를 하시자 베드로가 반응하며 대답합니다. 22, 23절을 읽어 드립니다 “22.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항변하여 이르되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께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23.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탄아 내 뒤로 물러 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아멘.
베드로는 항변했다고 했습니다. 항변은, 꽉 붙들고 거칠게 소리 높였다(공동번역), 꼭 붙들고 항의(표준새번역)했다는 뜻입니다.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께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라고 말했는데, 표준새번역에서는 “주님, 안 됩니다. 절대로 이런 일이 주님께 일어나서는 안 됩니다” 라고 되어 있습니다.
자신의 몸을 던져서라도 반드시 막아내겠다, 죽기까지 저항하여 지켜 드리겠다는 강한 의지는 자칫 무모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 용기야 말로 가상하고 칭찬 받을 만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사탄아 물러가라”는 말씀으로 베드로의 말을 단호하게 물리치셨습니다. 베드로는 자기가 한 말이 이렇게 강한 역효과가 나오는 것을 보고 적지 않게 당황했을 겁니다.
저는 이러한 대화들이 오고가는 상황에서 대비 되는 두 부류의 인물들을 살펴 보았습니다. 먼저, 예수님을 죽이려는 자들은 “장로들과 대 제사장들과 서기관들”로 위풍도 당당한 권세자들 이었습니다. 거기에 반해 예수님을 지키려는 자들은 베드로와 같은 어부 출신의 평범한 서민들이었습니다.
권세자들이 먼저 예수님을 잘 따르고 서민들을 옳은 길로 인도해 주어야 하는데, 오히려 공격하고 방해하는 대상이 되어 버렸고, 무지한 자들로 치부 되었던 자들이 믿음의 수호자들이 되었습니다.
종교개혁 당시도 이와 비슷한 상황이었습니다. 교회의 권세자들은 타락하였을 뿐만 아니라 성경을 왜곡하고 면죄부를 팔아 돈 장사를 했습니다. 이러한 거대한 불의에 맞서서 루터는 너무나 나약한 1인에 불과했습니다. 루터는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상황에서 외롭게 처절한 싸움을 해야만 했습니다.
루터와 대립한 교황은 레오 10세 였습니다. 교황은 루터를 이단으로 규정하고 파문하면서, “주여, 일어나 심판하소서. 당신의 포도원을 숲에서 뛰어 나온 멧돼지 한 마리가 파괴하고 온갖 들짐승들이 먹어 치우고 있나이다.’라고 시작하는 파문 교서를 내렸습니다. 교황의 눈에는 루터가 멧돼지 였습니다. 하지만 루터의 눈으로 보았을 교황은 포도원을 망가트리는 여우로 보였습니다.
교황은 루터를 죽일 계획으로 당시 신성 로마제국의 황제인 카를 5세에게 제국 회의를 열어 루터를 심문할 수 있도록 요청합니다. 독일 남서부에 있는 보름스라는 곳에서 제국회의가 열리게 되었는데, 루터는 자칫 화형에 처해질 수 있었지만, “보름스 시내의 모든 기와가 적이 되더라도 가겠다” 라면서 죽음을 불사하고 심문에 참여 합니다. 마치 “절대로 이 일이 주님께 일어나지 않도록 지켜 드리겠습니다” 라고 기개 넘치게 대답하는 베드로의 모습이 연상 됩니다.
제국 회의 첫날에 심문관인 대주교는 루터에게 두 가지 질문을 합니다. ‘첫째, 그대의 이름으로 출판된 이 책들이 그대의 것이 맞는가? 둘째, 그대는 이 책들에 쓴 내용을 철회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루터는 첫째 질문에 답하기를, 모든 책은 자기가 쓴 것이 맞으며, 다른 책들도 더 쓴 것이 있다고 시인합니다. 다만 둘째 질문에 답할 시간을 달라고 요청 하여 하루의 시간을 벌었습니다.
밤새도록 잠 못이루고 기도 한 루터는 둘 째 날 성령에 감동되어 황제 앞에서 이렇게 대답합니다. “성서의 말씀과 명백한 이성에 비추어 나의 유죄가 증명되지 않는 한 나는 교황과 공의회의 권위를 인정할 수 없습니다. 사실 이 둘은 오류를 범해왔습니다. 내 양심은 하나님의 말씀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양심에 따라 나는 아무 것도 철회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양심에 벗어난 결정은 안전하지도, 현명하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이 몸을 도우소서. 아멘”
황제는 루터를 이단으로 규정하고 루터와 그의 동조자들도 사형과 재산 몰수로 벌하겠다는 내용의 보름스 칙령(Edict of Worms)을 발표합니다. 루터가 심문을 받기 전날 밤 시편 46편 1절의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라는 말씀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찬송가가 “내주는 강한 성이시다”(Eine Feste burg ist unser Gott: Our God is mighty fortress)였습니다.
권세자들은 종교개혁자들을 탄압하는 선봉자들이었고 루터를 따라 종교개혁 운동을 불같이 확산 시킨 주류층은 서민층인, 농민과 도시 하층민이 중심이었습니다. 예수님도 베드로와 같은 어부들을 사용 하셨듯이, 기독교 역사를 돌아보면 소외되고 억압 받는 자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어 가셨습니다.
신분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믿음에 있는 자들, 말씀과 진리를 붙잡는 자들, 그리고 예수님 곁에 가까이 머물러 있는 자들을 반드시 크게 사용하여 주셨습니다. 우리나라 초기 교회 성장을 이끌었던 주축 세력도, 그 당시 멸시와 천대를 받았던 하층민과 여성들과 어린 아이들 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스스로 강하다고 자랑하고 목을 곧게 하는 자들은 내 치시고, 스스로 연약하다고 인정하며 예수님처럼 겸손한 자세를 취하는 자들을 높여 주셔서 놀라운 부흥과 성장의 역사를 이루어 가십니다.
00교회 모든 분들은 우리 교회의 미래를 위한 소중한 자산입니다. 하나님께서 크게 사용하시고자 준비하시는 택함 받은 그릇인줄 믿습니다. 죽음을 불사하고 종교개혁을 일으킨 루터와, 무모하지만 기개 넘치는 베드로의 우직한 충성심이 우리 모두에게 선한 영향력이 되어서, 내 교회의 부흥과 성장은 내가 주역이라는 자세로, 최선을 다해 헌신하고 수고하는 주님의 제자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이어지는 24, 25절 말씀을 읽어 드립니다. “24.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25.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베드로 혼자서 예수님을 지켜 드리겠다고 말을 했지만, 예수님은 제자들 전부에게 다 들으라고 이 말씀을 하셨습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져라”, 들을 때마다 참으로 부담이 되고 실천하기 어려운 말씀입니다. 더군다나 목숨까지 잃을 각오를 해라, 그 마음이 준비되는 자가 진정으로 나를 따라오는 자가 된다는 말씀은 부담이 아니라 그만 포기 하고 싶은 생각이 듭니다. 죽을 각오로 따르는 정신이 곧 종교개혁자들의 일관된 정신이었습니다.
종교개혁은 1517년 12월 31일 루터로부터 시작되었지만, 이미 그 이전에 초석을 닦았던 선배 목회자들이 있었습니다. 대표적인 인물이 영국의 신학자 존 위클리프(John Wycliffe, 1320 ~ 1384)와 체코의 신학자 얀 후스(Jan Hus, 1372 ~ 1415년)가 있습니다.
존 위클리프는, 교황이 교황좌에서(ex cathedra) 내린 결정에는 오류가 있을 수 없다는 교황 무오설(Papal infallibility)에 반박하여 모든 사람이 성경을 읽어서 진리를 따라야 한다는 신념으로 당시 라틴어 성경을 영어 성경으로 번역(1328년)했습니다. 키톨릭 교회에서는 위클리프 사후에 그를 이단으로 정죄하고 그의 모든 서적을 불태우게 하고 무덤을 파헤쳐 부관참시하는 만행을 저질렀습니다.
위클리프를 이어 받아 윌리엄 틴들(William Tyndale, 1494 ~ 1536)이라는 카톨릭 사제는 그리스어를 영어 성경으로 번역하였고, 그 죄목으로 화형을 당합니다. 윌리엄 틴들의 영어 번역 성경의 70%가 기초가 되어 그 유명한 킹제임스(KJV) 번역 성경이 탄생 되었습니다.
또한 체코 출신의 얀 후스는 존 위클리프의 영향으로 성서를 믿음의 유일한 권위로 강조하는 복음주의적 성향을 보였으며, 서방교회 교황 지지자들과 지도자들의 부패를 비판하다가 1411년 대립하던 교황 요한 23세에 의해 파문당했으며, 1415년 7월 6일 화형에 처해졌습니다.(위키백과 참조)
루터 이전에 수 많은 순교의 희생이 바탕이 되어 거대한 종교개혁의 물결이 휘몰아 치게 된 것입니다. 무언가를 바꾸고 새롭게 한다는 것은 아주 작은 움직임으로부터 서서히 시작 됩니다. 예수님 한 분으로 시작된 기독교 복음의 역사가 2천년 이상 지속되어 오고 있습니다. 바울의 희생과 수고의 결실 위에 세상에 교회들이 세워져 왔습니다. 우리 나라에도 주기철 목사님, 손양원 목사님 같은 순교의 피로 인해 교회가 든든히 세워져 왔습니다.
누군가 한 사람이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를 때 엄청난 결과로 나타납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따라 자기 목숨을 아끼지 않을 만큼 충성하고 헌신하면 예수님께서는 반드시 그 사람의 목숨을 가장 먼저 찾으셔서 부활 영생으로 인도하여 주실 것입니다.
역설의 종교인 기독교는 죽어야 사는 종교입니다. 루터가 죽음을 각오했기에 종교개혁이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나는 절대로 주님을 떠나지 않고 끝까지 지켜 드리겠습니다” 라는 각오와 결단은 참으로 중요 합니다. 그러나 그 결단 대로 과연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죽기 까지 주저하지 않고 생명 다하는 그 날까지 살아낼 수 있는가는 아무도 장담하지 못합니다.
00교회 모든 성도들 한 사람 한 사람에게는, 내가 이 교회의 부흥과 성장의 출발점이다, 나로부터 시작 되어 이 교회가 하나님 뜻을 방해하는 사탄의 세력을 물리치고 구원의 역사를 이루어 가는 교회 중의 교회가 세워지게 하겠다는 굳은 결심이 서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모든 부흥 성장의 산 증인이 되셔서 맡겨진 사명을 능력있게 감당하는 주님의 신실한 제자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본문 마지막 부분인 26~28절을 읽어 드립니다. “26.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과 바꾸겠느냐 27.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리라 2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서 있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인자가 그 왕권을 가지고 오는 것을 볼 자들도 있느니라” 아멘
각 사람의 행한 대로 갚으리라는 무서운 말씀과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과 바꾸겠냐는 두 말씀이 겹쳐지면서 엄청난 중압감과 두렵고 떨리는 마음이 강하게 느껴집니다.
“무엇을 주고 제 목숨과 바꾸겠느냐” 오늘 설교 제목입니다. 자기 목숨을 함부로 사용하다 구원 받지 못하는 사람이 제일 불쌍한 사람입니다. 재물과 권력과 명예는 한 낱 구름 같은 것입니다. 종교개혁자들은 타락과 부패에 넘어가지 않고 자기 목숨을 절대로 돈과 권력에 넘기지 않았습니다.
종교개혁이 일어날 당시 중세교회는 그야말로 교회와 성직자들이 타락의 절정을 이룬 시기였습니다.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는 말처럼 1,500년 간이나 지속된 교회 권력은 어느 누구도 통제할 수도, 자제 시킬 수도 없이 썩지 않은 곳이 없었습니다.
당시의 성직자라고 하면 존경과 권위의 대상이 아니라, 성직매매, 뇌물수수, 재물 강요의 대명사처럼 여겼습니다. 돈을 버는 최고의 수단은 성직자가 되는 것이라고 여길 정도이고, “아들이 나쁜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면 성직자를 시켜라”라는 말이 유행할 정도였습니다.
하나님께 드려지는 거룩한 헌금(예물)이 지옥 형벌을 면하게 하는 일종의 보험금으로 전락되었습니다. 귀족들은 자녀들에게 성직을 돈으로 사 주어서 20대 초반에 대주교도 있었고, 16세기 동안 성 범죄자의 1/4이 성직자 였습니다. 교회는 가장 많은 현금이 유통되고, 가장 많은 부동산을 소유한 거대 조직이었습니다.
그 당시의 교회와 성직자들은, 오늘 본문의 26, 27절을 몰랐던 것일까요? 한 번도 읽어 보지 않은 것일까요? 다 알면서도 이런 엄청난 타락과 부패를 일삼은 사람들은 각 사람의 행위대로 갚으시는 공의의 심판을 받았을 겁니다.
천하를 다 얻고도 자기 목숨을 잃어버리려 작정한 사람은, 하나님이고, 말씀이고, 예수님이고, 구원이고, 아무 것도 그를 통제하지 못합니다. 그저 뜨거운 불길을 향해 무조건 질주하는 불나방과 같을 뿐입니다.
이런 어처구니 없는 교회와 성직자들의 추악한 모습이 있었던 시대에도 불의와 거짓에 맛서 진리를 수호하려는 종교개혁자들의 거룩한 투쟁과 희생이 있었기에 우리가 평안 가운데 예배할 수 있게 된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불나방과 같은 추악한 자들이 있는 반면에,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서 있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인자가 그 왕권을 가지고 오는 것을 볼 자들도 있느니라”는 28절과 같이 의을 지키며 살아가는 사람도 분명히 있습니다.
죽기 전에 인자가 그 왕권을 가지고 오는 것을 볼 자들도 있느니라고 했는데, 성경 인물 중에 살아서 주님을 본 자가 누구 입니까? 순교 하기 전에 스데반 집사님이 보좌에서 일어서시는 예수님을 보았고, 사도 요한도 살아있 때 하나님 나라의 영광과 종말에 되어질 일들을 다 이루어 가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똑똑히 보았습니다.
천하의 권세, 천하의 재물, 천하의 명예와 예수님, 둘 중에 하나를 택하라면 무엇을 택하시겠습니까? 저는 단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예수님을 선택 하겠습니다. 더 실감난 예를 들어보면, 누가 나에게 1000억을 줄테니 오늘 주일 예배 하루만 빠져라 라고 한다면 저는 역시 단 1초도 망설임이 없이 예배를 택하겠습니다. 여러분의 생각도 저와 같으실 겁니다.
천하를 얻고도 자기 목숨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천억, 천평 집, 천 개의 명품을 얻고 예수님을 놓치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종교개혁은 오직 예수님 한 분만이 나의 유일한 선택이자 영원한 선택임을 고백한 운동입니다. 우리는 종교개혁의 정신을 계승한 개혁교회의 전통안에 있습니다.
00교회 모든 성도는, 천하의 그 어떤 것보다 내 목숨이 예수님 손에 달려 있음을 명심하시고, 오직 예수, 오직 믿음, 오직 말씀, 오직 은혜, 오직 하나님께 영광, 종교개혁의 정신으로 무장하여, 소중한 우리 목숨을 예수님이 찾으시는 그 날까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만을 묵묵히 따라가시는 굳건한 믿음의 자녀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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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아버지! 우리 모두에게 믿음에 믿음을 더하여 주셔서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천하 보다 귀한 예수님만 따라가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우리의 목숨과 생명을 지켜 주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