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외 선수들을 가리지 않고 많은 선수들이 K리그를 이탈하고 있다. ‘선수 유출’을 두고 축구계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많이 나오는 한편, 언론에서도 선수들의 해외 이적을 걱정하고 있다. 그렇지만 1990년대 말 IMF 시대에는 수출이 우리의 살 길이었다. 축구 선수들이 카타르에 가서 수십억씩 벌어온다고 하면 외화벌이라고 칭찬했을 일이다. 선수들의 해외 이적 자체가 무작정 나쁘다곤 할 수 없다. 현 상황에서 선수의 유출 자체를 걱정할 상황인 것이 분명한데, 과연 우리는 무엇을 두려워해야만 하는가. 그것을 이해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1. 스타의 유출이 문제인가.
일부에선 K리그의 관중수가 부족한 것이 스타가 없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이는 분명히 틀린 말이다. 스타란 대중의 관심을 많이 받는 선수들을 의미한다. 이미 국내의 많은 축구팬들에게 스타는 메시나 호날두 같은 '세계적'인 스타들을 의미한다. 그런 의미에서 K리그를 벗어나는 선수들 중에 스타는 많지 않다. 이명주, 하대성, 고명진 등 중동과 중국에서 활약하는 선수들을 훌륭한 ‘축구 선수’지만 ‘스타’라고 하기엔 부족한 느낌이다. 현 상황에서 각 팀의 핵심 선수들의 이적으로 스타가 사라진다는 말은 유효하지 않다.
고속버스터미널에서 늙수그레한 육군 병사들이 어딘가 낯이 익어 살펴보다가 상주 상무 선수들인걸 알고 사진이라도 한 장 같이 찍자고 할까 고민했던 것은 내가 K리그 챌린지 경기를 챙겨보는 K리그 팬이었기 때문이다. K리그의 대표 꽃미남 임상협은 서울 고속버스터미널을 지나가는 여행객들에게 그냥 잘생긴 육군 일병이었다. K리그 팬들에게는 ‘전국구 스타’가 필요한 것이 아니다. 물론 차두리처럼 전 국민의 사랑을 받는 스타 선수가 많다면 좋겠지만, 그렇다고 FC서울 경기가 차두리를 보기 위해 항상 경기장을 붐빈다고 보기도 어렵다. 스타 선수는 리그 흥행에 필수적이지 않다.
팬들이 관심을 갖고 지켜보는 가운데 스타가 생기고, 이것이 리그의 흥행으로 이어지는 것이지, ‘별’이 하늘에서 뚝 떨어져서 K리그의 흥행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진정한 K리그 스타는 단순히 언론에 많이 오르내리는 사람이 아니라, 팬들에게 사랑과 관심을 많이 받는 사람이다. K리그에게 중요한 것은 스타의 유무가 아니라 K리그에 관심을 많이 가질 수 있도록 K리그와 팬들을 밀착시키는 것이다.
(△ 최용수 감독이 어마어마한 연봉을 거절하고 팀에 잔류했다고 선수마저 잡아 놓을 순 없었다. 매 이적시장마다 이어지는 선수 유출에도 성적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 대단하다. 출처: FC서울 홈페이지 )
2. 팬들의 박탈감도 문제다.
매우 중요한 문제임에도 자주 언급되지 않는 문제인 것 같다. ‘너무 좋은 조건이라 거절할 수 없었다.’ K리그 핵심 선수들의 이적 때마다 접해서 그렇게 놀라운 이야기도 아니다. 팬들도 더 이상 해외 이적에 대해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선수들이 중동과 중국으로 높은 연봉 때문에 옮기는 것을 이해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많은 K리그 팬들이 박탈감을 느끼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해외로 떠나는 선수들을 K리그에서 볼 수 없다는 사실에 박탈감을 느끼는 것은 아니다.
핵심 선수들의 이적으로 이적료가 발생하는 것이 분명한데 팀에 돌아오는 재투자가 없다는 것에서 팬들은 박탈감을 느낀다. 최근 중국과 중동으로 간 선수들의 몸값은 결코 적지 않다. 이명주가 56억원, 에두와 데얀이 40억 정도, 이번에 이적한 고명진이 20억 정도이다. 이적하는 선수들이 받을 연봉도 높지만 팀에게 지불하는 이적료도 적지 않다. 하지만 적절한 선수들이 보강되지 않는다는 점이 문제다.
FC서울의 경우가 대표적인 예이다. 데얀, 하대성, 에스쿠데로, 김주영, 고명진 등 불과 3,4년 사이에 팀의 핵심 선수들이 팀을 떠났다. 나름대로의 보강은 했으나 기대에 못 미치는 영입만 있었고 빈자리는 어린 선수들에게 자리가 돌아가고 있는 상황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경기력이 예전만 못하다는 사실이다. 여전히 순위표 상으로는 괜찮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지만 답답한 수비 축구는 예전에 화려했던 영광의 시절과는 분명 차이가 있다. 어린 선수들의 실력 향상을 지켜보는 맛도 있지만, FC서울처럼 규모가 크고 리그를 선도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클럽이 보여주는 경기력으로 보기엔 아쉬움이 많다.
반대의 예로 전북은 에두의 이적에도 팬들의 동요는 적었다. 전북 팬들에게 큰 충격을 주지 않은 것은 그의 공백을 메울 수 있어보였기 때문이다. 우선 이동국이란 선수가 워낙 든든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스페인 2부리그에서 17골이나 득점한 베라가 영입되었다. 이적 시장 막판에는 이근호까지 임대 영입하면서 오히려 에두가 있을 때보다 더 튼튼한 스쿼드를 구축한 것처럼도 보인다. 이적료 수입을 알뜰살뜰 잘 사용한 전북은 여전히 강한 스쿼드를 갖추면서 팬들의 마음을 안심시켰다.
K리그를 사랑하는 팬들은 당장 유명 선수가 팀을 떠난다고 해도 한 번에 관심을 끊을 리는 없다. 경기력의 저하가 일시적인 문제나 나아질 여지가 있는 것이라면 그저 답답해하면서 훗날을 기약할 수 있다. 하지만 돈 때문에 선수를 팔고 새로운 선수의 영입이 기대에 못 미쳐서 경기력이 저하된되면 ‘정이 떨어져’ 버린다. 그것이 우리 팬들이 느끼는 박탈감의 정체다. 분명 나가는 것은 있는데 들어오는 것은 없다. K리그를 지탱하는 것은 팬이다. 팬들의 마음을 무너뜨리고 꾸준히 사랑받길 바라는 것은 욕심이다. 연이은 이적으로 막대한 수입이 발생하고 있음에도 재투자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팬들은 K리그를 등지게 될지도 모른다.
3. 경기력 유지가 가장 중요하다.
그렇지만 선수 영입에 재투자가 이뤄져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경기력을 유지해야되기 때문이다. 핵심 선수를 파는 것은 사실 상 팀에 있어 장사 밑천 자체를 내다 파는 것이다. 선수 이적으로 한 순간에 수십억의 이익을 볼 수 있지만, 선수 이적으로 팀의 수준이 떨어지면 장기적으론 관중 수 저하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팬이 존재하지 않는 프로스포츠는 존재의 이유가 없다. 팬을 지속적으로 끌어들이기 위해선 K리그 자체가 경쟁력을 가져야 한다. 선수 이적이 당장 재정적인 도움이 되기에 달콤한 것이라 거부할 수 없다면, 떠나는 이들을 대체할 방법은 강구해야만 한다. 재정적으로 가난한 시민구단이 아니라 기업구단이라면 특히나 더 그렇다.
또 K리그에 ‘선수 유출’이 이어지고 있다는 인식 자체가 리그 전체 이미지에 타격을 입히고 있다. 해외로 떠나는 선수들의 이적만 대대적으로 보도되다 보니 K리그는 리그 수준이 떨어지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K리그의 실력과 여전한 위상을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은 국제 무대에서의 ‘성적’이다. 당연히 성적을 위해서라면 준수한 ‘경기력’이 선행되어야 한다. 요컨대 선수유출의 가장 큰 문제점은 경기력 저하에 있다.
현재 K리그가 ‘셀링 리그’가 된 형세임에도 꾸준히 K리그는 아시아의 '큰 손'들로부터 주목을 받고 있다. 이는 K리그의 위상을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증거다. 하지만 앞으로 AFC챔피언스리그 무대에서 꾸준한 성적을 낼 수 없다면, 혹은 선수 유출 때문에 제대로 된 경기력을 유지할 수 없다면, 언제라도 그들은 좋은 선수들이 떠나버린 K리그와 선수에 대한 관심을 끊을 것이다. 동시에 팬들로부터 외면을 받을 것임에 분명하다. K리그 구단들이 선수 이적을 통해 ‘한탕’ 하려는 생각을 버려야 하는 이유이다. 선수 이적으로 생긴 수입의 전부는 아니라하더라도 일부는 팀의 수준을 유지할 수 있도록 반드시 재투자해야 한다.
경기력이 저하되어 팬들로부터 외면 받게 되면 간판 선수들은 물론이고 유망주까지 모두 돈을 앞세운 해외 리그에 팔아넘기고, 남은 선수들로 근근이 리그를 이어가는 리그가 될지도 모른다. 인기를 잃은 K리그는 인기를 잃어 존폐 위기에 처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현재 네덜란드 리그의 침체는 우리에게 좋은 교훈이 될 수 있다.
(△ 에두가 떠나 허했던 팬들의 마음을 든든하게 한 이근호 임대 영입. 최근 전북의 행보는 가히 K리그의 모범이다. 출처: 전북현대모터스 홈페이지)
‘농부는 굶어 죽어도 종자를 베고 죽는다.’는 속담이 있다. 다음 해에 농사에 가장 중요한 밑천인 종자를 먹는 농부는 없다는 건데, 어차피 종자를 먹어치우고 나면 다음 해 농사를 지을 수가 없어 굶어 죽는 것은 매한가지이기 때문이다. 막대한 돈이 더 이상 굴러다니지 않는 K리그에서 ‘종자’란 결국 알토란처럼 성장한 ‘선수’들이다. ‘선수’들이 잘 자라야 ‘경기력’과 ‘성적’이란 ‘열매’가 주렁주렁 열리는 것이다. 지금 선수 유출로 걱정해야 하는 것은 K리그의 경기력 저하와 이로 인한 팬들의 외면이다. 하지만 선수들의 해외 이적을 막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현실적으로 K리그가 취할 수 있는 대안은 없는 것일까.
<2편에서 계속>
http://blog.naver.com/hyon_ta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