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해범 논설위원
일본 미야자키 하야오 부자(父子)가 만든 애니메이션 영화 '코쿠리코 언덕에서'는 1960년대 고도성장기 요코하마를 배경으로 10대 청소년들의 사랑을 그리고 있다. 이 작품에서 눈길을 끄는 부분은 고교생들의 풋풋한 러브스토리가 한국전쟁과 이어져 있다는 점이다. 주인공 남녀의 두 아버지는 6·25전쟁 때 소해정(掃海艇) 선원으로 미군을 돕다가 원산 앞바다에서 기뢰에 부딪혀 전사한 것으로 그려져 있다.
일본 정부는 자국인의 한국전 참전을 지금까지 한 번도 인정한 적이 없다. 그러나 1998년 간행된 '해상보안청 50년사'나 한국전쟁 때 해상보안청 장관을 지낸 인물의 회고록 같은 기록에서 이는 사실로 확인된다. 일본은 당시 연합군총사령부 내 일본상선관리국 소속 선원 2000명과 군 수송선 하역 선원 1300명, 소해대원 1200명, 근로 선원 2000~3000명 등 총 7000여명을 한국전에 투입했다. 한반도 지형을 잘 아는 이들은 유엔군 상륙작전에 앞서 기뢰를 제거하거나 군사 정보를 제공했다.
2차대전 패전으로 돌아간 일본인을 한반도로 다시 부른 사람은 맥아더였다. 그는 북한군의 공세로 한국군이 대구까지 밀리고 일본에 망명정부를 세운다는 얘기까지 나오던 긴박한 상황에서 한국인의 뜻과 상관없이 모든 것을 결정했다. 최근 한·일 간 '집단 자위권' 논란 속에서 미야자키 영화가 떠오른 것은 '그때와 유사한 상황이 또 벌어지면 어떻게 하나' 하는 걱정 때문이다.
한국 정부는 최근 일본의 집단 자위권 행사와 관련해 '한국 헌법과의 정합성' 등 전제조건을 제시했다. 자위대가 미군 지원을 명분으로 한국인의 뜻과 관계없이 한반도에 다시 들어와 우리 운명을 좌지우지하는 상황을 우려해서다. 한·미·일 3국 간에 이런 조율은 당연히 필요하다. 근본적으로는 한반도에서 다시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고, 만에 하나 전쟁이 재발하더라도 자위대의 도움이 필요 없을 만큼 우리의 안보를 튼튼히 하는 것이 중요함은 물론이다.
그러나 우리 내부를 들여다보면 이런 당위론은 힘이 빠진다. '자주국방'이라는 용어가 사라진 지 오래다. 안보 문제만 제기되면 정부 인사들 입에서 '한·미 동맹'만이 레코드처럼 반복된다. 한·미 동맹은 중요하지만 미국에만 기대려는 '소국 근성'을 극복하지 못하면 오히려 독(毒)이 된다. 최근 "집단 자위권은 한국을 위한 것"이라는 미·일 인사들의 발언에서 매년 북한보다 34배나 많은 군사비를 쓰고도 "한국군 단독으로는 (북한에) 진다"고 말하는 한국 군부에 대한 '경멸'이 느껴진다. 미국의 눈에 한국은 중·러 견제에 어떤 역할을 하기는커녕 북한 하나도 상대하지 못하는 '유약한 나라'로 비칠지도 모른다.
동북아 격변 상황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정쟁으로 날을 새우는 여의도 쪽을 보면 한숨은 커진다. 일본이 5년 전 광우병 파동에 휩싸인 이명박 정권을 얕잡아봤듯이 국정원 댓글 사건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박근혜 정부도 무시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한국은 내분으로 망하는 나라'라고 볼까 걱정이다. 한국은 지금 1인당 소득 2만4000달러로 단군 이래 가장 잘 먹고 잘사는 시대를 보내고 있다. 이런 때에 스스로 지키는 힘을 키우지 않는다면 장차 63년 전과 같은 급박한 상황이 다시 오지 않는다고 누가 보장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