렘37장
"11:갈대아인의 군대가 바로의 군대를 두려워하여 예루살렘에서 떠나매 12:예레미야가 베냐민 땅에서 백성 가운데 분깃을 받으려고 예루살렘을 떠나 그리로 가려 하여13:베냐민 문에 이른즉 하나냐의 손자요 셀레먀의 아들인 이리야라 이름하는 문지기의 우두머리가 선지자 예레미야를 붙잡아 이르되 네가 갈대아인에게 항복하려 하는도다 14:예레미야가 이르되 거짓이다 나는 갈대아인에게 항복하려 하지 아니하노라 이리야가 듣지 아니하고 예레미야를 잡아 고관들에게로 끌어 가매 15:고관들이 노여워하여 예레미야를 때려서 서기관 요나단의 집에 가두었으니 이는 그들이 이 집을 옥으로 삼았음이더라 16:예레미야가 뚜껑 씌운 웅덩이에 들어 간지 여러 날 만에 17:시드기야 왕이 사람을 보내어 그를 이끌어 내고 왕궁에서 그에게 비밀히 물어 이르되 여호와께로부터 받은 말씀이 있느냐 예레미야가 대답하되 있나이다 또 이르되 왕이 바벨론의 왕의 손에 넘겨지리이다 18:예레미야가 다시 시드기야 왕에게 이르되 내가 왕에게나 왕의 신하에게나 이
백성에게 무슨 죄를 범하였기에 나를 옥에 가두었나이까 19:바벨론의 왕이 와서 왕과 이 땅을 치지 아니하리라고 예언한 왕의 선지자들이 어디 있나이까 20:내 주 왕이여 이제 청하건대 내게 들으시며 나의 탄원을 받으사 나를 서기관 요나단의 집으로 돌려보내지 마옵소서 내가 거기서 죽을까 두려워하나이다 21:이에 시드기야 왕이 명령하여 예레미야를 감옥 뜰에 두고 떡 만드는 자의 거리에서 매일 떡 한 개씩 그에게 주게 하매 성중에 떡이 떨어질 때까지 아르니라 예레미야가 감옥 뜰에 머무니라"
예레미야는 갈대아인들이 물러가자 베냐민 땅에서 백성의 분깃을 받을려고 예루살렘을 떠나려고 베냐민 문(북문)에 이르자 이리야라는 문지기 우두머리에게 붙잡혀 옥에 갇히게 됩니다
예루살렘과 유다의 멸망을 선포한 선지자! 허나 멸망이 끝이 아니라 바벨론 포로기 70년이 지나면 반드시 여호와께서 그들을 해방시키사 다시 본토로 돌아 오게 할 것을 선포한 선지자 답게 백성으로서의 분깃을 받으러 가는 예레미야!
그의 발자취가 참으로 경이롭습니다. 그의 눈물도 그의 갇힘도 그의 외침도 다 경이롭습니다. 왕권도 주권도 다 잃어버린 망한 나라가 다시 재건하려면 칠십 년이 지나야 하고 그때면 이미 고인이 될 사람에게 뜬금없이 웬 분깃이련가?
더구나 분깃이라해봤자 백성의 한 사람으로서 받게 된 평범한,어쩌면 비옥하지도 않은 작은 땅이 뭐그리 대단하다고 그것을 받으려 가다가 옥에 갇히게 되는가?
그러나 선지자는 이를 통해 하나님의 생각과 말씀과 뜻을 대변해 주는 사람답게 <분깃>의 소중함과 영원성을 유감없이 계시해줍니다
분깃은 나누었을 때 분배 받는 몫으로 땅이나 기업을 뜻합니다 여호와께서는 자기 백성을 분깃이라 하셨습니다(신32:9).이는 하나님께서 열국가운데 이스라엘을 택하셔서 자기 기업을 삼으셨기 때문입니다.
역으로 하나님을 사람의 분깃이라고도 합니다(시73:26,119:57). 이 세상에서나 이 세상을 떠나서나 항상 우리에게 생명과 양식을 공급해 주시는 하나님이시야말로 우리의 영원한 기업이 되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골로새서에서 바울은 기업의 부분을 얻기에 합당하게 하신 아버지께 감사하기를 원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이 여호와께서 기업으로 주기로 언약한 가나안 땅에 입성하자 열 두 족속들이 그 땅을 나누어 분배 받게 됩니다. 이와같이 신약 성도들도 언약이시며 기업이시며 순전한 떡이신 그리스도를 떡을 떼어 형제들이 다 함께 나누어 먹듯이 전부가 아닌 일부분을 분배 받는 것입니다. 이로써 우리는 한 주의 피와 살을 나눠 먹는 형제가 된 것입니다 때문에 바울은 이 기업의 부분을 상속 받도록 아들을 주신 아버지께 감사하라고 한 것입니다.
분깃의 어떠함을 성경을 통해 끄집어 내기만 해도 예레미야가 왜 망국 처지에서도 베냐민 땅에서 백성 가운데 분깃을 받으려고 예루살렘을 떠났는지 이해가 갑니다. 분깃을 받으려 함에는 모든 상황과 시제를 초월해야 함이 마땅하기 때문입니다.
허나 수문장 이리야는 예레미야가 북문을 빠져나가 바벨론에게 항복하려 간다며 다른 고관들과 함께 이때까지 참아왔던 분노를 폭력으로 터트립니다.
예레미야 한 사람이 바벨론에 가서 항복해서 나라를 건질 수만 있다면 그는 분명 그리했을 것입니다. 아니 예레미야는 바벨론에게 항복하라는 여호와의 말씀을 선포할 때부터 이미 여호와께 순종하는 마음으로 바벨론에게 항복한 사람입니다.그리고 예레미야와 뜻을 같이 한 소수의 사람들도 그렇습니다.
문제는 나라의 정치와 종교와 국방의 기득권자들이 여호와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음으로 최소한의 징벌을 최대한의 저주와 재앙으로 극대화 시키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 날 옥에 갇혀 있을 때 시드기야가 비밀히 그를 왕궁으로 불러 여호와께 받은 말씀이 있냐고 묻습니다. 예레미야는 왕이 바벨론 왕의 손에 넘겨질 것이라고 합니다.
항복도 때가 있습니다. 이젠 항복으로도 통하지 않습니다. 그래도 순수히 여호와의 말씀대로 순종하여 무조건 항복하면 보존할 수 있었던 수많은 백성들의 생명과 가옥과 농산물들과 가축들이 다 바벨론 왕의 손에 넘겨져 약탈되거나 불에 타거나 죽임 당할 것입니다. 시드기야의 두 눈도 보존되었을 것이고 아들들의 생명도 보존되었을 것입니다
늦었다고 생각하는 이 순간이 어쩜 우리가 두 손 두 발 다 들고 여호와께 항복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일 수도 있다 싶습니다.
이렇게 담대하게 시드기야에게 말씀을 선포한 예레미야가 왕에게 담대하게 탄원합니다. 내가 무슨 죄를 지었습니까? 나로 서기관 요나단의 옥으로 보내지 말라고 청합니다. 그곳에서 죽을까 두렵다합니다. 사명을 다 이루기 전에 죽는 죽음은 두려울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사실 그에겐 아직 더 전해야 할 말씀들이 있습니다
우리들이 여호와께서 각자에게 주신 선한 일을 다 이루기 전에 죽어서 여호와 앞에 서는 것과 다 이룬 후에 서는 것과는 차이가 있을 것입니다. 성도라면 죽음이 두려운게 아니라 주 앞에 어떤 모습으로 서게 될 것인가에 좀 두려워 할 필요가 있습니다.
물론 성도라면 당연히 주의 공로 의지하여 은혜로 설 것을 믿습니다. 허나 그 사랑,그 은혜 거저 받아 거저 베풀지 못하다 가는 그 죄송함을 생각한다면 죽음이 두려울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아멘!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