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부터 급수, 환기까지 자급자족.
―남해에서 가장 아름다운 집으로도 꼽혀.
남해안의 창선도는 유명 도시인 통영과 여수와 비교하면 이름이 잘 알려지지 않은 벽지(僻地)다. 경남 사천시 삼천포에서 다리를 건너면 만날 수 있는 섬으로, 여름을 제외하곤 차 한 대를 보기 어려울 정도로 조용한 곳이다.
겨울부터 봄 녘까지 바지락 같은 조개류나 생선을 잡는 어선 소리만 드문드문 들리는 창선도에 지난해 초 현대적인 백색 주택이 산 중턱에 들어섰다. 이 집은 지난해 남해군에서 가장 아름다운 집으로 선정된 ‘소솔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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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해군 창선면 대벽리 소재 소솔집 전경/신경섭 사진작가
소솔집은 ‘아름다운 식솔이 있는 집’이라는 뜻으로 문화기획 전문가인 정소익(41)씨가 건축주다. 이 집은 겉으로 보면 산 중턱에 들어선 하얀 집이지만, 자세히 보면 에너지 자급자족을 위해 정교하게 설계된 주택이다.
집주인인 정 씨는 이탈리아 밀라노 유학 시절, 석유 가격 폭등 때문에 벌어진 운송업 파업으로 신선한 먹을거리를 구하지 못한 적이 있었다. 농가 창고에선 먹을거리가 넘쳐나 썩을 정도였지만, 도시민은 주린 배를 움켜줘야 했던 어처구니 없는 상황을 겪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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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솔집 대문과 마당 전경
정 씨는 “유가 폭등이라는 이슈 때문에 기본적인 생활조차 영위하기 어려웠다”며 “따지고 보면 도시민의 삶은 각종 변수에 얼마나 취약한지 알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정 씨는 이런 경험을 통해 마을공동체에 기반을 둔 자족 가능한 터전을 꾸린다는 계획을 세웠다. 첫 번째 시도가 전력·급탕·환기에 소비되는 모든 에너지를 자체적 해결하는 ‘넷(net) 제로에너지 하우스’로, 대학 후배 양수인(39) 소장과 함께 지난해 말 완공한 소솔집이 결과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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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솔집 지붕에 설치된 태양광 집열판 전경/신경섭 사진작가
양 소장은 연세대학교와 뉴욕 컬럼비아대학교에서 건축학을 전공하고서, 2011년 서울에 ‘삶것 건축설계사무소’를 열었다. 2006년 양 소장은 1981년에 제정된 뉴욕건축연맹 주관의 ‘젊은건축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전에 이 상을 받았던 한국인 건축가는 조민석 매스스터디스 소장뿐이다.
소솔집은 태양광 발전설비를 갖추고 에너지를 절감할 수 있는 신(新) 각종 건축법이 동원된 친환경 주택이다. 남북으로 비껴진 두 채 건물은 햇빛을 잘 받을 수 있도록 동서로 길게 배치됐다. 연간 태양을 가장 잘 받을 수 있는 평균 각도를 계산해 지붕 경사도를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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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솔집 다락 내부. 고깔모양의 지붕이 지닌 비효율을 다양한 수납공간을 설치해 해결했다.
고깔모양 지붕에는 3KW 규모의 태양광 발전설비와 태양광 집열판을 설치했다. 이 집열 에너지는 231㎡(약 70평) 규모 주택의 에너지를 책임진다. 건물은 햇살을 잘 반사할 수 있는 흰색 방수재로 마무리했고, 외부는 에너지 사용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 20cm 정도의 두꺼운 단열재를 부착했다.
창문은 전면으로 펼쳐지는 바다 풍경 때문에 일반 주택보다 크게 설치됐다. 대신 창문과 벽 사이의 기밀도를 높여 열손실을 줄였다. 양 소장은 “화석연료 사용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다”며 “친환경 주택이지만, 실리적인 설계를 통해 시공비도 일반 주택 시공비(3.3㎡당 400만~500만원) 수준으로 맞췄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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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수인 삶것 건축설계사무소 소장
양 소장은 건축주의 평생 주택이 될 소솔집의 시공 과정을 1~2일 간격으로 총 7개월 동안 사진과 동영상, 글로 남겼다. 건축주의 꿈과 시도, 과정을 기록해둘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양 소장은 “집을 지었다고 하면 흔히 결과물의 아름다움과 실용성에 대해 이야기하기 쉽다. 그러나 사실 많은 사람은 스스로 염원한 집을 짓는 과정, 그 속의 이야기를 하기 좋아한다. 완성된 건축물에 대한 감탄과 탄성은 한순간이지만, 그 건축물에 담긴 이야기는 입에서 입으로, 기록에서 기록으로 계속 이어지기 마련이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