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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창조주가 선물한 세상 원문보기 글쓴이: 박종태목사
이 거룩하신 하나님 여호와 앞에 누가 능히 서리요/삼상 6:19-7:2
성경본문 : 사무엘상 6:19-7장2
19. 벧세메스 사람들이 여호와의 궤를 들여다 본고로 그들을 치사 (오만)칠십인을 죽이신지라 여호와께서 백성을 쳐서 크게 살륙하셨으므로 백성이 애곡하였더라
20. 벧세메스 사람들이 가로되 이 거룩하신 하나님 여호와 앞에 누가 능히 서리요 그를 우리에게서 뉘게로 가시게 할꼬 하고
21. 사자들을 기럇여아림 거민에게 보내어 가로되 블레셋 사람이 여호와의 궤를 도로 가져왔으니 너희는 내려와서 그것을 너희에게로 옮겨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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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상 7:1-17
1. 기럇여아림 사람들이 와서 여호와의 궤를 옮겨 산에 사는 아비나답의 집에 들여 놓고 그 아들 엘리아살을 거룩히 구별하여 여호와의 궤를 지키게 하였더니
2. 궤가 기럇여아림에 들어간 날부터 이십년 동안을 오래 있은지라 이스라엘 온 족속이 여호와를 사모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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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기 10장 12절의 말씀에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요구하시는 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나님의 도를 지켜 행하는 것이 바로 우리들의 행복을 위한 것임을 밝혀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복의 근원 되시는 하나님과 복이 되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많은 오해를 합니다.
이 하나님을 사랑하지도 않고,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지만, 하나님을 사랑과 은혜는 모르고 두려워만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또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이 복이지만, 그 복을 복인 줄도 모르고 싫어하고 불순종하는 사람들이 있어 복이 될 하나님의 말씀을 도리어 화로 받는 사람이 있습니다.
오늘 우리 앞에 복과 저주가 놓여 있습니다.
순종은 복이요, 거역은 저주입니다.
사무엘상 5장에 보면, 이스라엘을 침략한 블레셋 사람들은 복 중의 복, 아니 만복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하나님의 언약궤를 빼앗아 가지고는 어이없게도 자기들이 믿는 신들 중 하나인 다곤 곁에 두었습니다. 바로 그 다음날에, 그들은 농사 신인 다곤의 상이 언약궤 앞에 엎드러진 것을 보고 기겁을 하여 있던 곳에 다시 세웠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일찍이 그들이 본 것은, 하나님의 궤 앞에 엎드러진 다곤의 몸둥이와 문지방에 떨어져 있는 다곤의 머리와 두 손목이었습니다. 그것을 보고도 깨닫지 못하는 그들에게, 하나님께서는 독종의 재앙으로 그 일대를 망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우상 숭배의 헛됨을 깨닫고 하나님을 믿는 대신에, 그 법궤를 이스라엘로 돌려보내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복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만났지만, 복 없는 사람들은 그 기회를 놓쳐버리게 됩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기는 했지만, 그 하나님을 믿음으로 구원에 이르지 못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계실 때에도 그렇습니다. 많은 기적과 능력이 행하여진 그 현장에서 어떤 이들은 그 마음이 가난하여 예수님을 자신의 구주로 영접하여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한 자리에 있었지만, 마음이 바로와 같이 강팍한 사람은 기적과 능력을 봐도 예수님을 믿지 않고 오히려 그 일로 더욱 예수님을 핍박하고 죽이려고 까지 했습니다.
에베소서 2장에는 우리들이 구원을 얻은 것은 어떤 행위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요, 우리들의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 것인데, 그 본문에서는 그 믿음이 바로 하나님의 선물이라 했습니다. 오늘 우리들이 이 복음을 듣게 되고 들었을 때에 믿음으로 구원에 이르게 된 것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믿게 된 것입니다. 믿음으로 구원을 얻지만 그 믿음 또한 하나님의 선물임을 감사하기 바랍니다.
이제 결국 하나님의 법궤는 이스라엘의 벧세메스 사람들에게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벧세메스 사람들은 생각지도 않았는데, 만복의 근원이신 하나님의 법궤를 모시게 된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가지가지 필요한 복을 얼마든지 받을 뿐만 아니라, 받은 복들을 얼마든지 누릴 수 있는 기회를 만난 것입니다.
그러나, 복 없는 그들은 하나님의 법궤를 하나님의 백성들 답게 경건하게 모시지 않고, 블레셋 사람들이 갖다 놓은 장소에 그대로 둔 채, 멋대로 들여다보는 등 함부로 취급하는 바람에 무려 70명이나 되는 적지 않은 사람이 죽는 재앙을 당했습니다.
벧세메스 사람들이 언약궤를 보고 기뻐하며, 번제를 드리는 좋은 일을 했다고 하나님의 궤를 무시하는 그런 일을 눈 감아 주시는 분이 아닙니다. 순종이 제사보다 나은 것입니다.
언약궤는 하나님의 거룩한 임재의 상징이기 때문에 죄에 빠진 인간들이 함부로 들여다 보거나 만질 수가 없었습니다.
민 4:15에서 하나님의 성물은 아무나 만질 수가 없고, 레위지파의 고핫자손만이 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성물을 만지면 죽을 것이라 했습니다.
민 4:20 성소를 보거나 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벧세메스 사람들은 호기심으로 그 궤를 들여다 보다가 큰 화를 당하신 것입니다.
우리들은 죄라고 하면 그저 사람이나 죽이고, 도적질 한 것만 죄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당신의 거룩하신 이름을 욕되게 한 것을 죄 없다고 하지 않는다 했습니다. 가장 큰 죄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업신여기고 하나님이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죄입니다. 하나님의 법궤를 들여다 본 것은 그들의 세속적인 호기심을 가지고 한 것인데 하나님께서 이를 징벌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영화롭게 하며 당신을 존중히 여기는자를 존중히 여기시고 당신을 멸시하는 자를 경멸히 여길 것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이 하나님의 법궤가 옮겨진 곳을 추적 해보면 하나님께서 역사 하시는 사건들을 볼 수 있습니다.
사무엘하 6장을 보면 다윗이 이제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왕이 된 후에 제일 먼저 한 일이 하나님의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기는 일을 하려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모시고, 하나님 말씀 중심으로 정치를 하겠다는 다윗의 귀중한 생각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때에도 아비나답의 아들 웃사와 아효라는 사람이 새 수레에 궤를 싣고 갔는데 갑자기 소들이 뛰어서 하나님의 궤가 떨어지려고 합니다. 이 때에 여러분이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웃사가 옆에 있다가 손을 들어 궤를 붙들었는데 하나님께서 그를 치시니 저가 그 궤 곁에서 죽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여야하지만, 하나님의 두려우심을 알아야합니다.
하나님께 돌릴 영광을 우리가 다른 것에 돌리는 것을 하나님은 미워하십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훼손하는 죄를 하나님께서는 대적하심을 보여주십니다.
신약의 오늘 우리들은 이런 죄를 범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가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자이고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자이니 하나님께서 우리들의 작은 잘못들은 이해하실 것이 아닌가 하는 하나님을 만홀히 여기는 죄를 짓지 말아야합니다.
목적이 좋으면, 그 방법은 정당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목적뿐만 아니라 그 방법도 옳고 바로 되어야하는 것을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진정 기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야합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은 우리들의 생각대로 정성을 다하면 되는 것 아닌가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사울 왕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다고 자신이 생각하면서 아말렉을 칠 때에 짐승 중에 가장 좋은 것 몇 마리는 살렸고, 그 아말렉의 왕을 사로잡아왔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온전히 순종했다고 생각하고, 사무엘에게 축복해 줄 것을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은 순종입니다.
제사를 기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귀하게 보시고 기뻐하시는 것은 순종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전도, 선교를 위한 것이면 하나님의 계명 정도는 적당히 여겨도 됩니까? 아닙니다.
사람들은 하나님보다 더 자신이 의롭고 자비롭다고 생각합니다.
벧세메스 사람들을 왜 하나님께서 그렇게 치셨을까?
6장 20절에 보면
"이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누가 능히 서리요" 했습니다.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의 뜻이 우리들의 거룩함입니다. 우리들을 통해서 당신의 거룩을 나타내시고 영광을 받으시려는 것인데, 아무렇게 살아도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궤는 하나님의 상징일 뿐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의 상징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가 알고 행하는 것이 복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알되, 세속적인 호기심을 가지고 알려고 하든지, 자신을 위해서 이용하고, 자신을 높이기 위해서 쓰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와 그 거룩하심에 도전하는 죄악이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인간에게 이용당할 말씀이 아니라 순종해야할 신적인 권위를 가진 말씀인 것을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우리가 이 죄를 짓지 말아야합니다.
항상 말씀 앞에는 "종이 듣겠나이다. 말씀하옵소서" 의 자세여야합니다.
이렇게 복으로 임한 말씀을 복으로 알고 귀하게 대할 줄 모르므로 오히려 화를 당한 것이 블레셋이요, 벧세메스 사람들입니다.
등잔에 불을 켜고 답답하게 살아 본 사람들은 너무나 잘 압니다, 전기가 인류에게 얼마나 엄청난 복인가를 압니다.
그러나, 그 전기를 잘못 다룰 때에 얼마나 끔찍한 비극을 겪게 되는지 모릅니다.
굴러 들어온 복을 차 버린다 는 속담처럼, 벧세메스 사람들은 블레셋 사람들과 하나도 다를 바 없이 하나님의 법궤를 다른 곳으로 옮겨 버릴 생각만 했습니다.
그래서, 기럇여아림에 사자들을 보내어 블레셋 사람이 여호와의 궤를 도로 가져 왔으니 너희는 내려와서 그것을 너희에게로 옮겨가라 라고 전했습니다.
하나님의 법궤를 대하는 기럇여아림 사람들의 태도는 전혀 달랐습니다.
최고의 경외심을 가지고 지성스레 모셔 왔고, 또한 법궤를 안치할 가장 거룩한 장소를 물색했습니다. 일단 법궤를 모셔 온 이상, 그 지역에서 가장 거룩한 곳을 차지하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럇여아림 사람들은 산에 사는 아비나답의 집에 들여놓았습니다. 그리고 아비나답의 가족들 중에서도 그 아들 엘리아살을 거룩히 구별하여 법궤를 지키게 하였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그들 중 어느 누구도 호기심에 끌려 함부로 법궤를 만지거나 들여다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지혜롭게도 다른 사람들의 실수와 불행의 원인을 마음에 새김으로써, 그들과 같은 실수와 불행을 겪지 않은 것은 말할 것도 없고, 하나님의 법궤로 인해 풍성한 복을 받아 누릴 수 있었습니다.
이 사실은 궤가 기럇여아림에 들어간 날부터 이십 년 동안을 오래 있은지라 이스라엘 온 족속이 여호와를 사모하니라 라는 말씀을 보아 알 수 있습니다.
기럇여아림 사람들은 하나님의 법궤를 모시고 그 법궤에 합당하게 행함으로써, 20년 동안이나 법궤를 모시는 영광과 복을 누릴 수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값진 신앙 생활은, 온 이스라엘로 하여금 하나님을 사모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사무엘하 6장에서 웃사가 죽은 후에 다윗은 여호와를 크게 두려워하며 가드 사람 오벧에돔의 집에 궤를 메어 갔습니다.
웃사가 죽은 것은 하나님의 법을 따르지 않은 연고입니다. 고핫 자손들이 어깨에 메고 가도록 설계, 제작된 궤를 수레에 매었습니다. 하나님의 궤를 잘못 다룬 것입니다. 이번에 오벧에돔의 집으로 갈 때에는 삼하6:10에 메고 갔다고 했습니다.
오벧에돔의 집에서 석달동안 있는데 하나님께서는 오벧에돔과 그 온집에 복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오벧에돔의 집에 복을 주셨다는 하는 소문을 듣고서 다윗이 법궤를 기쁨으로 메고 다윗성으로 올라 왔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를 보여주는 사건들입니다.
하나님을 모시고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가 듣고 순종하는 것은 복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우상시하고,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를 도전하는 행위를 하나님께서 미워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들이 듣고 순종하면 영생이 되며, 우리들의 지혜와 능력이 되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멸시하고 순종하지 않으면 하나님은 그 멸시를 받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사무엘서의 주제입니다.
하나님께서 쓰시는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을 오늘도 찾으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내게 임하였지만, 그 말씀을 무시하는 일이 얼마나 많습니까? 하나님께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면 하나님께서 그를 무시하시고 미워하십니다. 그러나 못나고 부족해도 하나님의 말씀을 귀히 여기고 순종하는 사람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그를 높이실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여러분의 마음속에, 여러분의 가정에, 여러분의 직장에, 여러분의 사업체에 하나님의 법궤를 모시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 있습니까? 법궤가 법궤 됨은 그 속에 십계명이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를 마음에 모시고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행해야합니다. 바로 이것이 진정한 의미의 복을 받은 것이요, 또한 복을 누리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14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그 주님은 지금도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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