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은 시간을 아픈 채로 살지마요.
무거운 짐이 어깨를 짓누르는 시간은 참으로 무거운 시간이고 어두운 시간입니다. 이 시간에 복기를 해서 자신을 단단하게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무거운 짐을 지면서도 앞의 어느 시간에 그 짐이 내려질 것이라는 낙관을 가지고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뒤를 보면서 성장하는 사람은 지난 일을 복기하면서 목적과 방향을 분명히 세우는 사람입니다. 이에 비하여 과거를 기억하면서 복기하는 것보다는 과거에 매이지 않고 앞의 일만 보고 성장하는 동력을 가지는 사람도 있습니다. 보다 나은 삶을 향하는 두 가지의 길을 상황에 따라 적절한 것을 택하면서 살면 좋을 것입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한 가지만 택하려는 중독성이 있기에 문제가 발생합니다. 복기와 낙관은 서로 밀접해서 복기 속에 낙관이 숨어 있고 낙관 속에 복기가 숨어 있다는 것을 이제야 깨우칩니다.
저는 쓰린 지난날을 기억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비참한 자신의 삶을 자주 기억하기보다는 지난날의 비참함을 잊고 비참이 사라진 날을 향해 달려가고자 하는 삶입니다. 그래서 이집트를 탈출한 성경 이야기를 볼 때마다 과거를 복기하는 것의 중요성을 떠올리게 해 불편하기도 했습니다. 출애굽기는 비참한 이스라엘백성이 하느님을 향해 달려가면서도 하느님의 뜻을 배반하는 이야기가 나오고 그로 인해 벌을 받고 고쳐서 결국 가나안 땅에 도착하는 이야기입니다. 하느님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이 일상에 적용되어질 때 가나안의 생활이 될 것입니다. 일상에서의 하느님의 뜻이 이행되는 신앙생활이려면 복기와 낙관이 잘 어울려진 삶의 방법을 발견해야만 합니다.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은 그렇게 일상에서 말씀이 살아나는 것으로 사는 것이기에 복기와 낙관으로 어울려 사는 것으로 다가옵니다. 한 방식만 고집하면 앞으로 남은 시간을 아픈 채로 살게 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아프지 않고 제대로 살고자 늦었을지라도 늦게나마 복기와 낙관을 어울리게 하면서 살려고요.
과거가 생각나지 않고 과거를 잊고 지낸다는 아우의 말을 듣자마자 제 삶과 같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가난하게 살았기에 가난을 잊지 말고 가난에서 벗어나자는 일념으로만 살았기에 삶이 주는 여유와 기쁨을 즐기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과거가 잊는다고 하여 잊혀지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우리 몸의 피와 살과 뼈와 뇌에 과거가 이미 녹아져 있기에 현재를 사는 자신에게 과거는 늘 되살아나기도 합니다. 과거를 잘 다스리는 것이 중요하게 다가왔습니다. 수없이 방심하다가 덜미를 잡혀 큰 손해를 보거나 큰 슬픔을 겪거나 큰 아픔을 겪었던 일들을 잊고 싶은 마음이 있는 것입니다. 어둠과 실연과 치과진료실은 늘 잊고 싶은 기억이지만 지금도 여전히 잇몸이 약해 치과진료를 자주 가는 것을 보면 과거의 비참함에 대한 두려움을 지금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완성된 사랑을 못했던 기억이 사랑에 주저하는 두려움으로 드러나서 나를 지금도 잡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상에서 아우를 자주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같이 밥을 자주 먹고 생일날도 챙겨 주자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청와대 뒷고개를 넘으면 높은 산에 학교가 있습니다. 그 학교에서 일하는 아우를 보려고 경사각이 높은 길을 따라 올라 아우를 만나고자 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아우가 일하는 곳에 처음 방문하는 형이라 죄송한 마음이 듭니다. 몇주 전에 막내아우가 작은 형이 일하는 곳을 올라가 만났는데 작은 형이 그렇게 좋아하셨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막내아우가 형보다 훨씬 마음이 커서 큰형인 제가 막내 아우에게서 배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