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와 스토리텔링의 조선사 여행 : 인조 ~ 현종
동방 5현 ; 이황, 조광조, 이언적, 정여창, 김굉필
조식 - 모르는 것보다 실천하지 못함을 부끄러워하라.
관동팔경 : 간성의 청간정, 강릉의 경포대, 고성의 삼일포, 삼척의 죽서루, 양양의 낙산사, 울진의 망양정, 통천의 총석정, 평해의 월송정
조선 전기 4대 사화는 각각 어떤 특징을 지니고 있었나 ; '무오사화'때 연산군은 사림의 언론 활동을 억제하는 과정에서 훈구 세력과 사림 세력을 모두 억누르고 왕권을 강화했다. '갑자사화'때는 연산군이 부족한 재정을 훈구 대신에게 떠넘기는 과정에서 이에 반발했던 훈구 세력과 연산군의 생모인 폐비 윤씨 사건과 관련된 사림 세력을 제거했다. '기묘사화'때는 중종이 사림의 거두 조광조를 등용했지만, 조광조의 급진적인 개혁에 거부감을 느껴 조광조를 비롯한 사림을 정계에서 몰아냈다. '을사사화'는 외척의 대립과 갈등이 원인.
인조반정을 일으킨 세력이 내세운 명분 : 하나는 광해군이 명에 대한 사대를 저버렸으니 그것을 바로잡는다는 '천명배금'이고, 다른 하나는 광해군이 선조의 정비인 인목대비를 유폐하고 그의 소생인 영창대군을 살해해 인륜을 어겼다는 것이다.
조선 시대 당쟁은 과연 나라를 망하게 한 원인이 되었을까 ; 조선에서 사림은 훈구파에 이어 새로운 세력을 형성했다. 하지만 사림은 입지를 굳히자 자신들끼리 뭉치고 흩어지며 다투었다. 이러한 당쟁은 망국의 원인으로까지 거론되었다. 당파싸움은 순조, 헌종, 철종 시기에 세도 정치로 변질해 권력이 소수의 근친이나 신하에게 집중되었다. 이런 흐름으로 보아 망국의 원인을 당파적인 민족성에서 찾을 게 아니라, 지배 세력이 성리학적 신분 질서에 안주하고 기득권을 고수하려는 수단으로 삼은 데서 찾아야 할 것이다.
조선의 유교적 예법에는 어떤 문제점이 있었나 : 조선의 기득권층은 통치 기강 확립과 기득권 유지를 위해 유교 예법을 강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