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1학년 때 조종사 만나보려
추석 용돈으로 서울행 비행기에 탑승
기장님의 따뜻한 격려 지금도 못잊어
힘든 재수 끝에 바라던 항공대 합격
하지만 좋지 않은 시력 때문 입학 못해
경희대서 건축 공부하면서도 꿈 계속
기사사진과 설명![고등학교 때 탄 비행기 객실에서 창밖을 내다본 풍경. 조종사의 꿈을 갖고 있던 나에게 당시 경험은 지금까지 잊지 못할 소중한 기억이다.](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kookbang.dema.mil.kr%2Fnewspaper%2Ftmplat%2Fupload%2F20180111%2Fthumb1%2FBBS_201801110446448060.jpg) 고등학교 때 탄 비행기 객실에서 창밖을 내다본 풍경. 조종사의 꿈을 갖고 있던 나에게 당시 경험은 지금까지 잊지 못할 소중한 기억이다. |
처음으로 용기 냈던 고등학교 1학년 그날
고등학교 때 공부가 안 되는 날이면 나는 집에서 한 시간 거리의 김포공항 전망대로 향했다. 그곳에 가면 내가 그토록 원하는 비행기를 원 없이 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착륙하는 점보 비행기를 보면서 가슴이 설?다. 비행기를 보다 보니, 조종사를 꼭 만나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하면 만날 수 있을까 고민했다. 하지만 주변에 내가 소개받을 조종사는 없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한가위를 맞아 고향 대구로 내려갔다. 그리고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조종사를 만나러 가자!” 나는 떨리는 마음으로 실행에 옮겼다. 부모님께는 서울로 먼저 올라가겠다고 말씀드리고, 서울로 가기 위해 동대구역이 아닌 대구공항으로 향했다. 난생처음으로 비행기를 혼자 타기 위해서였다. 내가 왜 비행기를 타려고 했냐 하면 그 이유는 단 하나였다. 바로 조종사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아는 사람이 없으니, 조종사가 있는 곳으로 가면 만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한가위 때 받은 용돈으로 떨리는 마음을 갖고 비행기 표를 샀고, 대한항공 비행기에 탑승했다. 이건 엄청난 모험이었다. 나는 자리에 앉자마자 객실 승무원에게 조심스럽게 물어봤다. “안녕하세요, 기장님을 만나고 싶어서 비행기를 탔어요. 잠시 인사드리는 것이 가능할까요?” 승무원은 웃으면서 기다려 보라고 했다. 이내 승무원은 나에게 다가왔고, 나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대답을 들었다. “미안하지만, 항공 보안법상 어려울 것 같아요.”
된다고 확신은 안 했지만, 당혹스러웠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꿈을 위해 자발적으로 용기를 냈는데, 서울로 가는 하늘 위에서 원하는 대답을 얻지 못하니 그때부터 머리가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법 때문에 안 된다고 하는데 억지를 부릴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내 목표가 조종사를 만나는 것임을 상기해보니 답이 나왔다. 비행기가 착륙한 뒤, 최대한 늦게 비행기에서 내린다면, 밖으로 나오는 기장님과 마주치지 않을까. 그렇다면 만났을 때, 어떤 말을 꺼내면 좋을까. 가슴이 두근거렸다. 어느새 비행기는 김포공항 활주로에 사뿐히 착륙했고, 나는 승객 중 가장 마지막에 자리에서 일어나 천천히 출구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드디어 조종석 출입구가 가까워져 오는 순간, 기적같이 문이 열리면서 기장님이 나왔고, 나는 숱하게 연습했던 인사말을 건넸다. “안녕하세요! 기장님. 저는 앞으로 기장님의 후배가 될 고등학교 1학년 미래의 조종사 이동진입니다. 기장님을 꼭 뵙고 싶어서 비행기를 타게 되었습니다!” 순간, 기장님께서 크게 웃으시면서 대단하다고 칭찬을 하시는 게 아닌가. 그러고는 뭐가 궁금하니 하시는 말씀에, 기회다 생각해 말했다. “조종석을 꼭 보고 싶습니다.” 기장님은 별거 아니라는 듯 들어오라고 하시면서 조종석에 앉아 계신 부기장님을 소개해 주셨고 자리에 앉으시더니 조종석의 수많은 버튼과 장비들을 간략하게 설명해 주셨다. 나는 그 시간 동안 꿈속에서 날아다니는 듯했다. 꽤 긴 시간을 함께 있었고, 기장님과 함께 비행기 밖으로 나왔다. 모든 승객이 빠져나간 상황에서 한 대의 활주로 이동 버스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고, 나와 기장님 두 분 그리고 승무원들이 같은 버스를 타고 공항 건물로 이동했다. 탑승구를 빠져나와 헤어지기 직전에 기장님께서 말씀하셨다. “너, 참 용기 있는 학생이구나. 열심히 해서 꼭 조종사가 되거라!” 나는 기장님께 떨리는 목소리로 최대한 정중하게 성함이 어떻게 되시는지 여쭤보았다. 그랬더니 “언제든지 연락해” 하시면서 명함을 건네주시고는 가셨다.
나는 고등학교 1학년 때 알았다.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한 것이고, 그 용기는 대단해 보이지만 사실 아주 작은 실천에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기사사진과 설명![고등학교 재학 때 떨리는 마음으로 대구공항에서 대한항공 항공기에 탑승했다.](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kookbang.dema.mil.kr%2Fnewspaper%2Ftmplat%2Fupload%2F20180112%2Fthumb1%2FYA_PG_20180112_01000258100011523.jpg) 고등학교 재학 때 떨리는 마음으로 대구공항에서 대한항공 항공기에 탑승했다. |
대학 낙방, 꿈에서 멀어지다
어릴 때 탑승했던 제주행 비행기 덕분에 조종사가 되고 싶다는 꿈이 생겼고, 꿈을 갖게 되면서 용기 내는 법을 배우기도 했다. 하지만 꿈과 현실은 엄연히 달랐다. 조종사가 되기 위해서는 항공대에 가야 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공부를 잘해야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결론적으로 항공대에 가지 못했다. 이것으로 나는 조종사로서의 삶은 시작도 못 하고 끝났다고 생각했다. 고등학교 졸업 후, 처음으로 마주했던 학교 밖의 사회는 냉혹해 보였다. 그리고 한 번 더 나에게 꿈을 펼칠 기회를 주기로 결정했다. “부모님, 재수를 해보겠습니다.” 그렇게 나는 처음으로 인생에서 ‘선택’을 하게 됐다. 동시에 선택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사실을 훗날 철저하게 깨닫게 됐다.
끈기와 인내를 배우다
2006년 봄, 나는 재수 생활을 시작했다. 재수를 통해 원하는 대학에 합격한 선배들을 보면서 나 또한 인생 역전을 꿈꿨다. 그것을 보면서 누구나 1년만 더 하면 원하는 대학에 들어갈 것이라고 생각했다. 잠자는 것을 제외하면, 2000명이 넘는 학원에서 온종일 닭장같이 좁은 공간에서 공부하며 1년을 이겨내야 한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나에겐 큰 도전이었다. 오전 7시부터 밤 11시30분까지 이어지는 학원 스케줄을 매일매일 소화해냈다. 하지만 생각보다 1년은 굉장히 길었고, 오르지 않는 성적과 매일 마주해야 한다는 현실을 부정하고 싶었다. 1년 중 반이 지났지만 성적은 여전히 그대로였고, 나는 존경하는 은사님을 찾아가 말씀드렸다. “선생님, 재수학원을 그만두고 혼자 해보겠습니다.” “네가 왜 재수하는지 아느냐?” “원하는 대학에 가려고 재수합니다.” “그게 아니다. 네가 선택한 것을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는 끈기와 인내를 배우기 위해서다.”
나는 은사님 말씀대로 ‘선택’에 대한 ‘책임’을 지기 위해서라도 재수학원을 마지막 날까지 다니기로 했다. 좋은 대학에 가는 것은 내 의지가 아니지만, 공부하는 것 자체는 내 의지였다. 선생님께서는 내가 포기하지 않는다면, 대학에 안 가도 성공할 거라고 하셨다. 그 결과 나는 재수학원에 다녔던 내내, 아팠던 단 하루를 제외하고 학원을 빠져본 적이 없었다. 제자리걸음이었던 성적은 수능을 얼마 앞두고부터 오르기 시작하더니 11월 수능에서 최고 성적을 받게 됐다. 그리고 나는 그토록 원했던 항공대학교뿐만 아니라 다른 학교에도 모두 합격했다. 심지어 장학생이었다. 재수학원에 다니면서 나는 인내와 끈기가 얼마나 중요한 삶의 덕목인지를 깨달았다. 결과 이상으로 과정이 위대한 것임을 또 알았다.
나는 재수학원에 다니면서 하루 17시간씩 공부했고, 그 결과 대학에 갈 수 있게 됐다. 하지만 항공대에 합격했음에도 시력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입학할 수 없게 됐다. 결과적으로 경희대학교 건축공학과에 입학하게 됐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꿈을 포기하지 않고 있었다. 학교 입학 후 첫 전공교수님과의 상담시간에 교수님께서는 꿈이 무엇인지 물어보셨다. “조종사가 돼서 세상에 보탬이 되는 것입니다”라고 답했다. 교수님께서는 더 이상 나에게 꿈을 물어보시지 않으셨다. 나는 건축을 공부하면서도 꿈을 포기하지 않고 계속 꿔 나갔다. 반드시 기회는 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항공대가 아닌 경희대학교에 다니게 됐으니, 여기서 진정한 내 삶을 준비해 보자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렇게 내 인생의 모험과 도전은 시작됐다.
사진=필자 제공
<이동진 파일럿/여행가>
첫댓글 너무좋아요 우리 미래세대들에게 꿈을 가지라고 어떻게 해야할지 나침반 역할을하고 있는 글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