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주 한 병이 공짜 ]
임희구
막 금주를 결심하고 나섰는데
눈앞에 보이는 것이
감자탕 드시면 소주 한 병 공짜란다
이래도 되는 것인가
삶이 이렇게 난감해도 되는 것인가
날은 또 왜 이리 꾸물거리는가
막 피어나려는 싹수를
이렇게 싹둑 베어내도 되는 것인가
짧은 순간 만상이 교차한다
술을 끊으면 술과 함께 덩달아
끊어야 할 것들이 한둘이 아니다
그 한둘이 어디 그냥 한둘인가
세상에 술을 공짜로 준다는데
모질게 끊어야 할 이유가 도대체 있는가?
불혹의 뚝심이 이리도 무거워서야
나는 얕고 얕아서 금방 무너질 것이란 걸
저 감자탕 집이 이 세상이
훤히 날 꿰뚫게 보여줘야 한다
가자, 호락호락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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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겹살과 소주 ]
김병훈
소중한 친구들이
함께 모인 자리에
술이 빠질 수 없다
삼겹살 같은 사람은
소주 같은 친구를
만나야 한다
그래야 마음이 편하다
오늘 하루도
열심히 일하고
찌푸린 일상에
그만 지친 그대여
이제 편히 쉬어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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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주 ]
강세화
술 한잔 마시는 데에
너무 많은 의미는 지겹다.
둥글둥글 살자는 세상이
너무 많이 기울어 있으니
세상에 한결같은 건
소주 맛을 쳐줄까.
도시에 내린 어둠은
너무 오래 잠을 자고
이리 저리 얽힌 매듭이
너무 깊이 조여 있구나.
우리는 소주맛에 빠져
마냥 젖어나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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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막소주라도 한 잔 ]
나태주
막소주라도 한 잔 처억 걸치고 나면
한오백년이나 어랑타령 같은 노래 듣고 싶어진다.
젊고 이쁜 여자가 아니라 얼금뱅이* 중년 여자
조금은 쉬고 갈라진 목소리로 듣고 싶어진다.
* 얼금뱅이: 곰보, 마마자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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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동소주 ]
유안진
이 풍진 세상을
아무리 아모리
저 세상의 마음으로 살아간다 해도
때없이 맞닥치는
겨울비 같은 좌절과 낭패를
들켜지고 마는 굴욕과 수모 …를
불싸질러 흔적 없이 사루어주는
45도 화주 안동소주
사나이의 눈물 같은
피붙이의 통증 같은
첫사랑의 격정 같은
내 고향의 약술 그 얼로 취하여
이 풍진 시대도
저 시대의 너털웃음 웃어가며
성큼성큼 건너뛰며 나 살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