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낼 수 없는 마음/ 白蓮 원화윤
-하늘 나이 한 달도 채 못 된 애석한 친구야,
오래 전 일이지. 한 줌 몸뚱이 중요 부분 두 군데나 적출술로 텅 빈 몸일 때도 이렇듯 허무하고 쓰리지는 않았던 것 같아. 요즈음은 좁은 공간이 숨이 막힐 듯 답답해 창 밖 세상이 더 그리웠어. 뛰쳐나가 무작정 달렸지. 달리다 보니 우리가 가끔씩 머물었던 그 찻집이 보이더군. 숲 속에 폭 묻힌 찻집을 보니 반가우면서도 울컥울컥 목울대가 얼얼했어. 흐려지는 시야를 닦아내며 서성 서성거렸어. 국악 명상곡이 그립고 차향기가 그리워도 들어갈 수가 없었어.
친구와 즐거웠던 시간을 추억하면 슬퍼질 것 같아 덜컥 겁이 났지. 나무 그루터기에 걸터앉아 멍 하니 왁자한 들판을 바라다보았어. 그 때는, 시원한 바람에 춤추는 나뭇잎도, 이 나무 저 나무로 날아다니는 맑은 새소리도, 조약돌과 노래하는 예쁜 시냇물 소리도 감미로운 풍금 소리로 느껴졌지 그랬었는데, 오늘은 아니었어. 사방이 탁 트인 창 밖 세상의 소리인데도 외로운 산책길에서 만나지는 자연의 소리는 가슴을 후벼 파는 아픔으로 다가와 뜨거운 슬픔에 젖게 했어.
이름 있는 날이면 조촐하게 마음을 나누던 우리, 나보다 더 나를 알뜰히 챙겨주던 애틋한 마음은 번번이 깜짝 깜짝 놀라게 하는 감동이었지. 그 무서운 투병 중임에도 잊지 않고 지난 봄 그날, 택배 해준 정애스러운 장미꽃바구니, 체온이 배인 그 소중한 장미꽃바구니가 지금은 마른 소재로 꽃보다도 더 아름다운 친구 마음처럼 여전히 살가운 모습이지. 햇곡식과 과일이 그득그득 풍성한 만가을인 친구 생일을 손꼽는 나날, 두루두루 염치없던 이런 저런 감회는 생각할수록 가슴이 저려와.
내 발등에 떨어진 불끄기에 급급하던 일상, 변명에 지나지 않는 구차한 핑계로 통화로만 문자로만 문병에 뜨악했던 어는 날 오후, 많이 보고 싶어 했다는 부군의 문자에 부랴부랴 병실로 달려갔지. 그러나 이미 친구는 눈도 닫고 입도 닫고 귀만 열고 있었어. 차마 보기도 안쓰러운 얼굴을 비비는 못난 친구를 야왼 볼을 적시며 반겨주던 애석한 친구야, 그 다음 날 분양소에서 뵌 환자보다 더 환자 같은 부군은 차마 뵙기조차도 민망 했었어.
장지에도 삼우제에도 못 가 두루두루 죄송한 마음에 삼우제 지난 며칠 후, 조심스레 시어머님을 통화로 뵈었지. 이미 떠난 자식을 못 보내시는 어머님은 마음 속에 효부 외며느리를 꼭 보듬고 계셨어. 여전히 조용하신 말씀은 그 간 안쓰러움을 자근자근 알려주셔서 투병생활 중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이 보여 지고 느껴져 미안한 마음 더 아팠어. 자식을 앞세운 죄인이라고 자책하시는 어머님, 땅이 꺼질 듯한 한숨은 더없이 효부였던 외며느리 빈 자리를 못 견뎌하셨어.
“아범아, 어멈하고 싸웠던 생각만 하거라.” “어머니, 싸운 적 한 번도 없는 걸요.” 습관처럼 가슴을 쓸어내리는 아들을 보다 못해 하신 얘기라며 말씀을 잊지 못하시는 통화 속 어머님을 붙들고 얼마나 울었던지. 흐릿한 꿈 속에서 거처할 집이라며 함께 둘러보자던 환한 미소가 영영 헤어질 꿈일 줄이야, 애석하고도 애석한 친구야, 그간 함께 했던 알토란 시간들의 빈 자리가 이렇듯 클 줄 몰랐어, 투병 중 소홀했었던 회한에 갇혀 잠 못 드는 이 새벽, 수신인이 없어 보낼 수도 없는 멍 한 마음을 저 별만 헤며 지면을 적시고 있어.
2006년 08월 13일.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