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도 흐른다 14

[가을달]

초롱초롱 박철홍의 고대사도 흐른다.14

ㅡ '한사군' 설치 의미와 위치 ㅡ

초등학교 시절 눈물 콧물 짜면서 감명깊게 본 영화가 있었다. 지금도 영화장면들이 생생하게 기억난다. 1971년 작 <왕자호동과 낙랑공주> 라는 만화영화였다. 우리는 보통 '호동왕자와 낙랑공주'로 기억한데 제목을 왜 저렇게 뽑았는지는 모르겠다.

내 기억에는 '로미오와 줄리엣' 보다 더 먼저 접한 동화같은 '비극적인 로멘스' 이야기이지만 이 이야기는 실제 역사적 사실에 근거를 두고 있다. 내용면에서도 로미오와 줄리엣에 전혀 뒤지지 않는다.
단지 우리나라에는 '세익스피어' 같은 작가가 없었을 뿐이다.

'삼국사기'에 고구려 3대 왕, 대무신왕15년(서기 32년)에 일어난 일이라며 아래처럼 자세히 쓰여져 있다.

[어느날 옥저로 유람을 나선 고구려 호동왕자는 낙랑의 왕 최리와 마주쳤다. 최리는 호동왕자의 비범한 풍모를 알아보고 궁궐로 초대했다. 호동왕자는 궁궐에서 낙랑공주를 보았다. 둘은 서로 한눈에 반하였다. 그래서 둘은 사랑하는 사이가 되었다. 호동 왕자는 낙랑공주를 아내로 맞이하였고 꿈 같은 나날을 보냈다. 그러나 호동은 자신의 나라인 고구려로 떠나야 했다. 물론 낙랑공주와 함께 떠나야 했지만 아버지 대무신왕의 허락도 없이 혼인하였기 때문에 그럴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호동 왕자는 "내가 다시 와서 당신을 꼭 데려가리라." 라고 말하고 고구려로 떠나고 말았다. 고구려로 돌아온 호동 왕자는 그동안의 일을 대무신왕에게 아뢰었다. 하지만 대무신왕은 허락하지 않았고 꼭 데려와야 하면 낙랑을 멸망시키고 데려오라고 하였다. 그 말에 호동 왕자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기분이 들었다. 여러 궁리 끝에 호동왕자는 낙랑공주에게 사실을 알리는 편지를 보냈고, 공주는 몰래 낙랑의 보물인 자명고 와 뿔나팔을 부숴뜨렸다. 낙랑공주에게 소식을 전해들은 호동왕자는 대무신왕에게 소식을 알려 총공격 명령을 받고 낙랑을 공격했다. 한편 낙랑의 궁전은 발칵 뒤집혔다. 한 신하가 적군이 쳐들어온다고 했지만 낙랑 왕은 믿지 않았다. 낙랑 왕은 뒤늦게 적이 쳐들어 왔을 때 알아차리고 말았다. 낙랑 왕이 무기고로 가보았을 때는 이미 자명고와 뿔 나팔이 찢어져 있고 부서져 있었다. 낙랑 왕이 낙랑공주가 부숴뜨린 걸 보고 낙랑공주의 목을 베었다. 낙랑 왕은 공주를 죽인 후 고구려에게 항복하고 말았다. 호동은 훗날 태자다툼에서 패하여 자살을 하였다.]

'삼국사기'는 국가에서 간행한 정통사서였다. 철저한 유교주의 현실주의자인 김부식은 현실성이 없는 기록들은 제외시켰다. 그래서 단군신화도 삼국사기에서는 뺏다. 그럼에도 호동왕자 이야기를 이렇게 상세히 실은 것은 이야기 대부분이 사실이고, 고구려가 낙랑을 멸망시킨 것은 우리 역사에서 중요한 사건이라 보았기 때문이다.

내가 본 만화영화는 동화처럼 훨씬 더 '비극적인 로멘스'였다. 그러나 역사적 사실로만 보면 '비극적인 로멘스'라기 보다는 호동은 아주 나쁜남자였다. 사랑을 빌모로 자기 아내가 된 연인을 죽게 만들었고 그로인해 자기 목적을 성취했다. 영화처럼 낙랑공주 죽음을 슬퍼했다는 기록은 전혀 없다.

윗 삼국사기 내용 중 호동이 낙랑에게 보낸 편지가 그걸 말해준다. 진짜 사랑했다면 저런 편지를 쓸 수가 없다. 역사 현실에서 호동은 순수한 사랑만을 추구한 낙랑공주를 철저히 이용했다.

오늘 이야기는 사랑이야기를 하려던 것은 아니니 이쯤한다. 호동과 같은 남자지만 성질이 난다.

어쨌든 중요한 것은 삼국사기에 나오는 '낙랑국'이 한무제가 고조선을 멸망시키고 설치한 한사군 중 하나인 '낙랑군'이라는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다.

여기에는 여러 이설들이 있다.

한사군(漢四郡)은 한무제가
위만조선을 공격해 멸망시킨 뒤 유민들을 통치하기 위해 세웠다고 하는 다섯 개 군급(대방군 포함) 행정구역이다.

한사군(漢四郡)은 기원전 108년에 한나라(한漢) '무제'가 고조선을 멸망시키고 그 지역에 설치한 네 개의 군을 말한다. 한사군은 낙랑군, 임둔군, 진번군, 현도군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러나 한사군이라고는 하나 실제로는 진번군이 폐지된 자리에 대방군이 세워졌기 때문에 총 5개 군이 있었다. 보다 앞선 4개 군 경우에도 동시에 존속한 기간은 25년으로 매우 짧았다. 대신에 '한군현'이라는 명칭으로 부르거나'동방변군'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기도 한다. 그러나 널리쓰이는 명칭은 '한사군'이다.

'한사군'은 인접해 있는 부여, 고구려 등과는 직접적으로 대치 및 교류 하기도 했고, 한반도 중남부에 위치한 백제와도 적극적으로 '철' 등을 교역하면서 상당한 영향을 주고 받았다.

중국본토가 한나라가 멸망하고 삼국시대를 거쳐 '위진남북조' 시대 난세로 접어들며 약화되고 고구려가 성장하면서 '한사군'을 흡수하고 멸망시켰다.

그런데 삼국사기에 나오는 '낙랑국' 은 '최리'가 왕으로 나온다. 그리고 멸망하는 것은 서기 32년이다.

한무제가 설치한 한사군 '낙랑'은 '낙랑군'으로 부르고 왕이 아닌 태수가 통치했다. 이 낙랑이 멸망한 것도 서기 313년 고구려 '미천왕'에 의해서이다. '최리낙랑국' 멸망과는 300년이나 시차가 있다.

그런데도 나도 마찬가지였지만 거의 대부분 사람들은 이 두 낙랑을 구별하지 못했다.

고구려가 마지막 '한사군'이었던 낙랑을 호동왕자가 낙랑공주를 이용해 몰아내고 한반도에 지금 우리가 아는 고구려라는 국가를
만들어 낸 것으로만 기억하고 있다.

많은 역사학자들도 헷갈려했고 또 많은 가설들을 만들어 내고는 있다.

지금은 낙랑공주가 살았던 최씨낙랑은 한반도 북부에 있었다고 추정되는 국가로, 추정되는 위치나 이름 때문에 한사군 중 낙랑군과는 분명하게 구별한다. 단지 두 낙랑이 어떤 관계였는지를 두고는 논란이 있다. 삼국사기 문헌에서 등장하는 '최리'라는 낙랑왕 때문에 편의상 '최씨낙랑국'이라고도 부른다.

삼국사기 내용대로 '최씨낙랑국'이 아니라 '낙랑군'이 서기 32년에 멸망했다면 우리나라 고대국가는 큰 변화가 있었을 것이다.

'최씨낙랑국'이 멸망한 후에도 한사군 중에서 낙랑군은 약 300여년 간 존속하며 한반도 남부에서 거대 세력이 등장하는 것을 철저히 방해했다. 우리 고대국가 역사 발전을 가로막은 것이다.

실제로 낙랑군의 영향으로 한반도 남부에서 제대로 된 거대 세력이 등장하는 것은 3세기 중후반 '백제'가 성장하면서 부터이다.

한사군 5개의 군을 좀 더 상세히 설명 하면 아래와 같다.

낙랑군(樂浪郡): 평양을 중심으로 한 지역으로, 한사군 중 가장 중요한 군으로 여겨졌다. 400여년이나 지속했다.

임둔군(臨屯郡): 현재의 함경도 일대에 위치했다.

진번군(真番郡): 한반도 중부 지역에 위치했으나, 설치된지 25년만에 가장 빨리 폐지되었고
대신 그 자리에 '대방군'이 들어 섰다.

현도군(玄菟郡): 현재의 중국 동북부 지역에 위치했다.

대방군(帶方郡): 고대 한반도 서북부 지역에 있었던 중국의 군(郡)으로, 삼국시대 초기인 3세기 초에 설치되었다. 대방군 위치는 오늘날의 북한 평양과 그 주변 지역으로 추정된다. 이 지역은 원래 한사군 중 하나인 낙랑군에 속해 있었으나, 낙랑군의 남부 지역을 분할하여 대방군이 설치되었다.
대방군은 중국의 영향력 하에 있는 동안 문화와 기술의 교류가 이루어졌으며, 한반도 초기 국가들의 발달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러나 4세기경 고구려의 세력 확장과 함께 대방군은 고구려에 의해 흡수되었고, 이후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졌다.

이처럼 한사군 설치는 한나라가 고조선을 정복한 후, 그 지역을 직접 통치하기 위해 설치한 행정구역에 불과했다. 이로 인해 한반도 북부와 중국 동북부 지역에 중국 문물이 전파되고, 한반도의 역사와 문화에 큰 영향을 미쳤다.

한사군 중 일부는 이후 고구려와 같은 한반도 내의 세력들에 의해 흡수되거나 정복되었다. 낙랑군은 특히 삼국시대 고구려와의 경쟁 속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러나 그 동안 대부분 우리국민 인식은 한사군이 설치된 지역이 중국의 식민지였다고 보는 시각 이었다.

중국과 일본에서는 한사군 영역을 신라 및 진한과 변한 지역을 제외한 한반도 남부까지 확대해서 바라보고 있다. 한국사의 중국 종속성을 최대한 강조하려는 모양이었다
허나 해당 주장은 중국과 일본 역사학계에서도 한사군 초기라면 모를까 나중에는 이 지역이 전부 한사군의 지배 밖으로 벗어났다고 (즉, 현지인인 마한인들이 독립을 쟁취했다고) 인식하고 있다.

특히 일제강점기시절 당시 조선사편수회 등이 일본민족의 우위성을 입증하고 한국인 민족 의식 말살을 목적으로 한 식민 사관이 설파될 때 이 한사군이 중국식민지 였다는 것을 강조했다.

그 식민사관으로 지금까지도 우리는 그렇게 알고 있었던 것이다.

또한 중국도 동북공정을 위해 다시 또 한사군은 한반도 깊숙한 이남까지 차지한 중국식민지였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중국 역사 지도(아래 사진참고)에서 한사군 영역이 북한을 넘어 남한 경기도와 충청도까지 확장된 점은 유심히 볼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 사학자들 이런 역사전쟁 에서 정말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한다.

한사군 설치에 대한 요즘 통설은 결과적으로 본래 목적인 한의 통치, 지배가 관철된 것이 아니고, 현대 동아시아 한자문화권 형성과 같은 동아시아 문화권을 형성하는 발단이 되는 사건이라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1000년 후 쯤, 당나라는 고구려, 백제를 멸망시킨 후 한사군과비슷하게 <안동도호부, 웅진도독부, 계림도독부>를 설치하여 당나라가 한반도를 지배하려는 시도를 했지만 신라가 여기에 반발해서 '나당전쟁'이 일어나 실패한다. '계림도독부'는 이름만 지었을 뿐 한순간도 실제로 작동하지 못했고 안동도호부와 웅진도독부는 10년 정도 운영하다 요동으로 쫓겨났다. 이는 기원전 1세기와 달리 7세기에는 한민족이 상당한 국가적 역량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요즘 한사군 위치에 대해서 논란이 아주 심하다.

한사군 위치에 대한 논란 실질적 시발점은 신채호, 정인보 등 민족사학 학자들로서, 일제강점기 당시 일제발굴이 조작된 것이라 주장하며 민족주의적인 방어 논리로서 제기하였다.

신채호는 평양지방 지명이 '낙랑'이며, 진번, 임둔, 현도 역시 마찬가지로 각각 가리키는 지명이 있을 것이라 했다.

또한 신채호는 한사군은 한무제가 삼조선 전체를 공격해 합병한 뒤 각각의 지명의 위치에 세우려고 하다가 실패한, 즉 '가설'된 군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한사군에 관한 신채호 등 견해는 대부분이 특정 역사서 원본 한문을 오독했거나, 추측이나
희망사항에 따른 결론이 나오는 경우가 많고 고고학적 성과와도 배치되기 때문에 현대 사학계는 이를 수용하지 않고 있다.

신채호 정인보 같은 민족사학자들이 독립운동에 매진하면서 제대로 된 연구를 할 수 없는 환경이었던 점은 감안해야 하며, 일제에 대한 저항측면에서 일부러 더 민족주의적 사고를 강조했던 점도 있겠으나, 학문은 연구자 목적에 사실을 끼워맞추는 것이 아니므로 이들 독립운동에서 업적과 별개로 이러한 주장은 역사학계에서 인정받지 못 하고 있는 것이다.

주류 사학계의 통일된 견해에 따르면, "한사군은 당초 옛 고조선의 영역인 한반도 북부지역에 설치 되었으며, 이 가운데 '현도군'은 후에 고구려 등 원삼국 토착민의 저항과 독립으로 인해 요동 지역으로 이전되었고 다른 군현은 기원후 4세기 고구려 미천왕 때까지 존속했다가 고구려에 복속되었다." 고 보고 있다.

[흔히 '재야사학'이라는 통칭으로 불리는 유사역사학 및 아마추어 민족주의 논단에서는 '난하 요수설', '한사군 한반도설 식민사관설'을 주장하면서 "한사군은 한반도가 아닌 중국 내륙에 있었으며, 한반도에 있었다는 것은 민족의 자긍심을 해치기 위한
동북공정 내지 식민사관 음모다."라는 논리를 펼치나,
오히려 이들의 주장이 내셔널리즘에 기반한 역사 왜곡이다.
이러한 주장을 설파하는 논단 가운데에는 '환단고기' 계열 강연이나 인터넷 신문이 많아 연구 부정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

(윗 말은 내가 한 말이 아닌 인터넷에 나온 주류학자들이 한 말이라니까 이 말에 대해서 만큼은 날 공격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어쨌든 한사군 역사는 한반도와 중국 간의 초기 교류와 갈등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료로 여겨지고 있다.

한무제의 고조선 침략은 당시 동아시아의 정치적 지형을 크게 변화시켰으며, 한반도와 중국 간의 역사적 관계에도 큰 영향을 미쳤던 것이다.

이어서 본격적으로 삼국시대로 들어갑니다.

ㅡ 초롱박철홍 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