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순이와 옥규 , 천당에서 만났겠지?
친구를 떠나보내며
일년을 넘긴 공백 끝에 날아온
청천 벽력같은 친구의 소식!
"중환자실에서 임종을 앞두고 있다" 는
친구남편의 문자를 받고
한동안 머리속이 깜감해졌었다.
"이게 무슨 날벼락 ?"
온몸의 작동이 한순간 멈춘듯
꼼작달싹도 할 수 없었던 짧은 순간 뒤에 오는 묵직한 충격!
그날 밤 난 한 숨도 잘 수가 없었다.
'어떻게 이런일이!?? "
"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 지금 난 무엇을 해야하나? "
아무 생각도 아무 것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는것을
깨달았을 때의 무력감과 그 절망감,
친구의 죽음을
오롯이 기다리고 있을 수 밖에 없는
시간들이 정말 지옥이었다.
그 지옥같은 시간들이 계속 되는동안
머리속은 뒤죽박죽
오만가지 생각들이 헝크러져 정신이 없었고
끈이질 않고 떠오르는
70년지기 친구와의 지난 일들로
정상적인 나의 일상이 완전히 무너질 위기였다 .
그렇게 지옥같은 날들을 며칠 보내다가
머리가 돌 것 같아 "이 지옥을 빠져 나와야 되!"
별별 생각을 다 하다가 궁여지책으로 내린 결론이
지금 우리 나이가 몇 살인데..
젊어 살 날이 많이 남은것도 아니고
옛날 같았으면 벌써 입고 갈 수의 다 해놓고
떠날 준비하며 기다리고 있을 나이가 지금 우리들 나이인데
우리 친구들 모두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떠날 길이라
지금은 우리가 모두 죽음이 예약된 상태여라
예약된 차례되면 순번 데로 절차 밟아 가야 되는것 뿐이야
언제 어느때라도 차례 되었다고 연락 오면
남은 우리도 반항 없이
순번데로 하늘나라로 떠나야 하는 길.
그러니 옥규는 우리보다
예약번호가 조금 일찍 당첨 된 것 뿐이니
더 이상 놀라서 슬픔에 젖어있지 말자.
우리도 순번 되어 부르면 곧 바로 가게될꺼니까
옥규가 먼저 가서 좋은자리 잡아놓고 기다리면
우리가 나중 편하지 뭘 그래?
전에도 우리, 서울숲 놀러갈 때마다
늘~ 누구 한 명이 먼저 가서
몫 좋은곳에 들마루 잡아놓고친구들 기다렸잖아
그거나 마찬가지야
그러니 하늘 나라 가는것도
이번엔 옥규 번호가 당첨되어
미리 가서 좋은 자리 잡아놓고 우릴 기다릴 차례였나 보다고..
이렇게 생각을 바꾸니
지옥같은 마음이 한결 편해지더라구,
다만 우리가 한 평생 함께 했던 친구를
이 세상에선 다시 볼 수없다는 막막함과 슬픔을
처음 당하여 놀라고 충격이 큰 거지
우리도 언제 어느때 올라오라는 차례가 되면
나도 친구들도 정 들었던 모든것들과 이별하고
올라 갈 각오를 하고있자.
그래도 다행인게 멀지않아 곧 차례로 가게 될꺼니까
옥규가 기다리는 날이 송순이 보다는 짧잔아 ㅋ
둘이서 반갑게 만나게 되길~~
단단히 마음을 먹고 나서 이틀 뒤,
옥규의 선종 소식이 날아왔다.
"기어코 떠났구나 "
온 몸에 힘이 쏙 빠지고 정신이 아득~~
다시 허둥대기 시작했고
버스를 타야하는데
내가 버스정거장을 지나 계속 걷고 있더라구
어떻게 집으로 왔는지? 미리 잡힌 약속을 취소하고
"어떡하지? 어떡하지? "정신을 못차리고 있는중에도
놀란 친구들의 연거퍼 오는 전화로 내 폰은 불이 나고 있었고
난 허둥 지둥 갈피를 잡지 못하고 대답을 건성으로 하며
생각은 내내 옥규생각,
3년전에 떠나신 우리 큰언니
돌아가셨다는 소식 듣고도 이러지는 않았는데...
" 향수가 정신 차려"
마음을 다져먹고 간 장례식장,
함께 모인 친구들 모두가 어이없고 황망한 표정들인데
저 혼자만 해맑게 웃고있는 영정속 옥규의 얼굴이
눈에 들어온 순간 주체 할 수 없는 울음이 터졌다.
옥규를 마지막으로 본게 22년 11월 어느날
번개팅으로 친구집에 모여서
여느때와 같이 신나는 수다로 즐거운 하루를 보내고
그것도 아쉬워 다음달 만나자며 약속을 하고 헤어졌다.
그때는 그날의 만남이 옥규와의 마지막만남이 될줄은
꿈에도 몰랐었다.
그 만남 이후 옥규의 모습은 볼 수가 없었었고
목소리 조차 들을 수가 없었는데
심지어 문자까지도 보지않았다.
그리고 일년이 지난 작년 연말
옥규에게서 날아온 문자 한통!
"향수가! 나 살아는 있는데
지금 많이 아파"
무지 무지 반가웠고 그리고 놀라고 안타까왔다.
일년만에 날아온 그 짧은 문자를 읽고 또 읽으며
저절로 떨어지는 눈물,
"아! 그동안 혼자서 아프고 있었구나~~
어디가 아플까? 얼마나 아플까? "
그동안 살아오며
지금처럼 이렇게 연락이 오래 끊어진지는
단 한번도 없었으니까
끽 해야 며칠 이였지.
"이럴수는 없지 " 하면서
그래, 어디가 많이 아플지도 모른다 고 짐작은 했었지만
두문불출에 연락 두절의 의미를 애써 찾으며
"그래도~~ 연락은 좀 해주지 " 하면서
오매불망 기다리는 동안
답답하고 궁금해하는 마음속 한편
가끔씩은 서운하고 야속한 생각이 들 때도 있었는데
그 오랜 동안을 혼자서 외롭게
아픔과 고통을 견디며 병마와 싸우고 있었다니...
친구의 그런 상황을 전혀 알 길 없었던 우리 친구들이
너무 무심했던 것 아닐까 하는
반성과 자책으로 뒤늦게 밀려오는 후회와 미안함에
마음이 천근같이 무거워 오며 아파왔다. .
그런가운데 새해는 어김없이 찾아왔고
구정을 지나 대보름날 밤.
전혀 답장 기대없이 옥규한테 문자를 보냈는데
기적같이 답장이 왔다.
얼마나 기뻤든지.....
"향수가 ! 넌 내가 밉지도 않니? "
" 니가 보름달 나랑 같이 보자고 해서
나, 지금 누워서 창밖으로 보름달 보고있어,"
"내가 곧 기운차려서 우리 단톡방에 그간의 내소식 올릴께 꼭~ "
"고맙고 그리운 내 친구 향수가!"
내가 답장을 쓰기도 전에 연거퍼 날아온 네통의 문자 !
네통의 문지를 빋으며
아!! 이제 거의 회복이 되고 있는모양이다.
글 올릴 생각을 하는거보니
기쁘고 깨운한 마음으로 옥규가 올릴 글만 기다리며
카톡을 "풀빵구리 쥐나들 듯" 들락거리며
열어보고 또 열어봤다.
그 후 3월 초순
카톡에 "손옥규" 이름이 뜨길레
" 아! 이제 옥규가 글을 올렸나 보다" 반가움에 열어보니
임종이 기깝다는 남편의 문자였고
대보름날 옥규가 보낸 4통의 문자가
우리의 70년 우정의 마지막 말이 되어버렸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이 4통의 문자를 쓰기위해
아픈 몸으로 얼마나 애를 쓰며 죽을 힘을 썼을까?
한 글짜, 한 글짜 , 가슴이 아리도록 내 가슴에 박혀오네.
" 옥규야 수고했어 그리고 많이 고마워"
"그래, 너 먼저 가서 자리잡고 기다리고 있어 우리 곧 따라갈께
한동안은 우리 기다리며 혼자 있을 너 외로울까
걱정도 되긴하지만
먼저 간 송순이 있으니까 걱정이 덜 되여
우리도 금방 따라갈께
만나서 수다도 떨고 매년 하던 윷놀이도 하고
그 곳에 있는 올레길도 찾아봐서 길 알아 둬
만나면 우리 즐겁게 걸어보자구
그땐 니가 올레대장 해 ^^
옥규야!!
그동안 긴세월 친구되어 함께 놀아줘서 즐거웠고
그리고 고마웠어
추억거리 많이 만들어 놓았으니
너 가고 없는 동안에도
그 추억 꺼내보며 너랑 함께 할거니까
그 곳에서 송순이랑 우리 기다리고 있어
가끔씩은 꿈속에도 나타나 주고 .....
우리 만나게 될 날까지 둘이서 잘 ~ 지내. "
친구가 우리곁을 떠나던 날
첫댓글 이 글을 읽는데 눈물이 줄줄 흐른다. 병마와 싸우며 얼마나 힘들었을까 생각하니 마음이 아프다. 장례식장에서 아들들이 만든 동영상 보며 결혼, 아이들 성장, 가족모임 남편과 여행 ...옥규는 참 행복하게 살다갔다는 생각을 했어. 우리에게 많은 추억을 남기고 먼저 떠난 친구 천국에서 주님 만나 평안누리며 잘 지내. 우리 다 보고 있겠지?
작년 크리스마스때
"창희야
올해 화이트 크리스마스네
고마워"
올 2월 26일에
"네가 보낸 꽃이 보이는 게 일년만인거 같아
고마워"
그래서 동영상 꽃이 보인다니까 많이 좋아졌나보다 올해는 모임에 나올 수 있을래보다
옥이랑 통화하며 희망을 가졌었는데...ㅠㅠ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 무릎 꿇을 수 밖에 없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