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마5:3,10절)
기도는 자신이 필요한 것을 구하는 기도가 있고, 성령 안에서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께 나아가는 기도(프로스유케)가 있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이 간접목적(하나님에게 무엇을)이냐 직접목적(하나님을)이냐 하는 말이 나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로 난 자가 참 신앙의 궤도에 오르면 바로 하나님을 찾는 기도가 시작이 됩니다. 시편 1편의 복 있는 사람이며 주께서 주신 주기도를 하고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사람이며 끝내 늘 성령을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사람이 됩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은 거룩의 절실함과 영과 생명의 결핍을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항상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총을 따라 영 안에서 간절한 마음으로 긴장하게 됩니다.
당연히 하나님의 나라가 그 안에 임하게 되지요. 그 때부터 선과 악의 전쟁이 아니라 영과 육의 전쟁이 일어납니다. 당연히 애통하게 됩니다. 육체의 쓸모없음과 부정함을 처절하게 깨닫습니다. 탄식합니다. 이런 사람에게 노아(위로라는 뜻)에게 임한 성령의 위로(마5:4)가 임합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통과하는 자들에게도 주의 말씀이 위로가 됩니다(시23:4) 귀한 복입니다. 이런 사람은 자신을 십자가에 팔렸음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걸 주저하지 않습니다(마4:5) 모세(민12:3)와 세례요한이 온유의 대명사인 것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들은 쇠해야 하고 주는 흥해야 한다는 일념 때문입니다. 그래서 온유가 때론 exchange라고 표현됩니다.
이런 사람에게는 새 하늘로부터 오는 복을 심어 경작할 새 마음이 주어집니다. 구약을 치면 가나안에 정착한 것이며 새 언약 아래에서는 그리스도 안에 착근이 되었습니다. 이런 사람의 기도는 당연히 그리스도를 구합니다. 하나님의 의를 찾습니다. 끝내 그 의에 배부르게 됩니다(마5:6) 그 의에 배부르면 남을 긍휼히 여기게 되고 하나님으로부터 수천, 수만 배가 넘는 긍휼을 받게 됩니다. 있는 자는 더 받게 되는 원리입니다. 그래서 주기도 중에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구한 다음에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용서’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러나 긍휼이 없으면 긍휼없는 심판의 잣대가 하나님께로 다가옵니다(약2:13) 용서와 자비가 없는 그리스도인들의 말을 듣는 것조차 피곤합니다.
남을 긍휼히 여기고 하나님의 긍휼을 받는 사람의 영혼은 말끔합니다. 하나님을 향해 곧게 바로 서게 됩니다. 하나님을 뵙습니다. 그 영광을 봅니다. 그런 사람은 하나님과 화평하게 하고 사람과 사람 사이를 화평하게 합니다(마5:9) 성경이 그를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하고 보증합니다. 당연히 세상의 미움을 받습니다. 세상은 하나님을 등지고 원망하며 살고, 서로 미워하고 싸우는 곳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의를 위해 살면 당연히 유무형의 박해를 받습니다. 천국은 이런 사람들의 것입니다. 세상이야 어쨌거나 하나님을 향해 진리와 사랑을 갖고, 자신을 위해서는 의와 확신을 지니고, 남을 위해서는 용서와 자비를 가진 그리스도인은 이 복의 반열에 서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