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화> (번외) 이함의 하루
벌써 1년이 지났다.
한국을 떠나온 지가 벌써 그만큼이 지났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한국에 좀 다녀올게요, 엄마."
어린 아들처럼 엄마라고 곧잘 부르는 이함은 되도록 웃으려고 애쓰면서 이야기했다.
하지만 표정이 이미 뻣뻣하게 굳어버렸는지, 얼굴 신경이 모두 마비된 건지― 이함의 표정은 밝아 보이지 않았다.
어머니는 글을 쓰다 말고, 아들에게로 달려와 손을 잡는다.
"사고 치지 마, 응? 우리 아들 착하지?"
이담은 그런 어머니에게 포옹을 해주면서 간단한 짐 가방을 들고 집을 나선다.
"금방 올게요. 사고 안 쳐요, 아마도."
이함이 문을 닫고 나가자, 어머니는 근심 어린 표정으로 말한다.
"마감 날에 맞춰서 원고를 넘겨야 하는데…. 아들이 가버렸으니…. 누가 밥 해주지…?"
어머니의 그런 깊은 걱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이함은 오랜만에 비행기를 탔다.
좌석에 앉자 마자 일단 느슨하게 온몸에 힘을 빼고 잠을 잘 준비를 했다.
'긴장 따위는 하지 말자. 멀미 안 하잖아. 사고도 안 나. 별로 높게 나는 것도 아냐.'
그랬다. 이함은 고소공포증이 있었다.
아니, 비행기 공포증이라는 것이 더 맞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함은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서 종종 호주에 있으면서도….
파리, 뉴욕, 베를린 등 몇 개의 국가의 주요 도시를 찾아 여행을 했었다.
의학 공부는 때려치우고 경영학을 공부하면서 틈틈이 시간 내서 여행을 다녔다.
그렇지만 역시 비행기를 탈 때마다 긴장 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킁, 이 따위 기계.'
그러나 무섭긴 무서웠다.
이륙할 때의 그 부웅― 하는 느낌.
마치 롤러코스트에서 제일 높은 지점을 향해 올라갈 때의 그 느낌은, 언제 느껴도 거부반응이 일어난다.
'몸은 많이 나아졌다고 들었는데…….'
아버지와 가끔은 전화 통화를 했었다.
어머니와 자신에게 늘 미안하다는 말로 전화를 끊었지만, 이함은 그런 전화가 고마울 때가 많았다.
어머니를 위해서나, 자신을 위해서나…….
이국 땅에서 외국인으로 살면서 아버지의 목소리쯤은 들어야 조금은 위안이 되었으니까.
공항에 도착 후 꽤 늦었다는 것을 알아차린 이함은 결혼식장에 늦지 않게 택시를 타고 도착했다.
그러나 이함은 입구에서 조금 망설이며 서성이다가 들어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 둘을 발견할 수 있었다.
부케를 던지고, 사진을 찍고, 퇴장을 하는 그 두 사람의 모습…….
'건강해 보이네…….'
이함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이라고 얼굴에 써있었다.
'나는 악역으로 무대에서 퇴장했으니……. 시간이 조금 더 지난 후에…….'
이함은 슬며시 입가에 웃음이 머물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호주에 간 뒤로 전혀 웃지 않았었기에.
지금 이함이 웃고 있는 것을 스스로도 눈치채지 못했다.
'이미지 변신해서, 좋은 역할로 다가갈게. 그동안 잘 지내라.'
이함에게도 첫사랑이었던, 미소는 정말 두근거리게도 아름다웠다.
식지 않은 심장의 뜀박질을 불현듯 느낀 이함은 말 없이 그들을 숨어서 바라보고 있었다.
"휴대폰 좀… 빌릴 수 있을까요?"
왠지 이함의 근처를 어슬렁거리면서 속닥거리면서 수다를 떨고 있는 여자들에게 이함이 다가가 말을 건넸다.
"문자 두건만 보내게 해주실 수 있……."
"가져가세요∼ 여기∼"
그저 잠시 빌려달라는 것인데, 이함이 손에 덥썩 쥐어주면서 얼굴을 붉히는 여자가 있었다.
다른 여자도 휴대폰을 꺼내려다가 늦었다는 듯이 아쉬워하고 있는 표정이었다.
이함은 문자를 썼다.
'021 라는 숫자가 영원히―와 비슷한가?'
아무렇게나 발송 번호를 찍어 보냈다.
이담과 미소의 번호는 늘 외우고 있었다. 호주에서도 전화를 몇 번인가 하고 싶었다.
비록 전화는 하지 못하고 이담이 잘 지내는지, 다리는 괜찮은 지― 병원으로 몰래 전화를 했을 뿐이었지만.
'영원히 사랑하며 행복하게 살아가길. 진심으로 축하한다.'
이함은 얼굴에 시원스러운 미소를 머금고 그 둘의 모습을 한참이나 지켜보았다.
'내 동생…….'
이함의 얼굴에는 1년만에 환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어머니가 봤으면 놀랄 만큼 눈부신 미소였다.
'그리고……. 제수씨…….'
이함은 조용히 그들의 사랑이 영원하기를 진심으로 빌었다.
조금은 씁쓸한 기분이 들기도 했지만…….
물러나기로 한 이상……. 포기하기로 한 이상은…….
깨끗하게 지워야만 했으니까.
'그래도……. 다 잊지는 못 할 것 같다.'
여전히 옆에 있는 여자들은 꺄꺅 거리면서 힐끔힐끔 눈길을 주면서 이함을 보고 있었다.
대체 뭘 보러 결혼식장에 왔는지 알 수 없는 그녀들.
그러나 그녀들에게는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조용히 한참을 사랑하는 두 사람을 보다가…….
휴대폰을 돌려주고 천천히 예식장 밖으로 나왔다.
"아……. 조금은……. 괜찮아진 느낌이야……."
이함은 그 때, 미소의 솜사탕을 뻔뻔히 먹었던 그 날이 떠올리면서 중얼거렸다.
"솜사탕이나 사 먹을까."
인연의 끈들은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 보이지 않게 뒤엉켜 있다.
그 엉킴을 풀고 풀어 실 끝을 찾아내면 그때서야 진정으로 보이는 사람이 있다.
이함이 솜사탕을 찾아 서울을 오랜만에 헤매고 있을 때…….
스쳐갔던 어떤 두 사람 중에서 이함과 연결된 실을 묶은 채 지나가는 여자가 있었다는 것.
그것은 이함도, 그 여자도 알 수 없는 것이었다.
그들이 만나는 것은 언제쯤?
이함과 그 여자의 이야기도 언젠가 시작될 것이다.
"와― 이 솜사탕 맛있는데? 저어― 이거 유통기한이 얼마입니까?"
"그건 왜 물으슈?"
"안전하게 다섯 개 포장됩니까? 돌아가는 길 비행기에서 먹게……."
"다섯 개? 비닐에 잘 싸드릴터니 알아서 가져가슈."
"음……. 비행기에 반입되는 걸까…?"
머리를 긁적이면서, 막대기에 서서히 솜사탕이 부풀어 오르듯이 생기는 그 과정을 지켜보는 이함.
특유의 무표정과 차가운 듯한 이미지.
적당히 그을린 매끈한 피부에, 알맞게 근육이 붙은 마른 체형.
커다란 키에, 잘 빠진 스타일의 이 남자.
솜사탕을 들고 먹고 있는 모습은, 정말이지…….
깬다……. 킁.
그래도 이함의 머리 위에 펼쳐진 하늘은, 너무 아름다웠다.
금방이라도 무언가 일이 생길 것만 같은! 그런 행복한 날.
행복한 이야기는 언젠가 다시 시작된다.
그래서 이함에 관한 짧은 하루 이야기도 여기서 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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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nus-_-@hanmail.net
오늘도 행복 백만배 증가되는 하루 되세요+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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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스 소설 1.
[ 번외 ]
한미소, 그녀의 남자 낚시 <25화>
eun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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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6.21 00:36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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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재밌게읽었어요 ~ 쓰신지1년씩이나된소설을읽어서 뒷북?이아닌가하네용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