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다의 가르침은
나는 없다라고 하는 무아로 말씀하십니다.
말을 하고 말을 듣고하는 사람이 있고
보고 냄내 맡고 아는 내가 있는데 어떻게 나라고 하는 것이 없다고 얘기 하는 것인가 라고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많을 것입니다,
또 배고파하고 먹고나면 포만감을 느끼는 것이 내가 아니냐고 이같은 부분을 반문할 수 있고요.
그외
꿈을 위해 노력을 하고
때로는 인내해야지 라고 하며 인내도 할 것입니다.
이것이 나 가 아니면 누구이고 무엇이냐고 의문을 갖습니다.
그같은 논리들이
틀린 얘기입니다.
말하고 냄새 맡고
생각하고 노력과 인내하는 등의
'나' 가 있다 하는 것도
그같은 것을 두고서
'나' 는 없다도 것 역시 똑같이
그릇된 견해입니다.
나 = 오온.
나는 오온(몸, 느낌, 인식, 행, 의식)이라고
말 할 수도 없지만
그렇다고
'나' 를 오온과 전혀 무관한 무엇이라 하거나,
오온 이외의 다른 무엇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무아란 이런 의미입니다.
...
인도와 한국의 시간차이는 3시간 30분으로
한국이 앞서갑니다.
어제는 보드가야 대탑근처에서
좌선하며 보냈습니다.
이렇게 수행하며 보낼 수 있는 축복받은 인연에
고마움을 느끼며 모두에게 그들이 원하는
행운과 행복이 함께 하시기를 축원드립니다.
...
불교 수행을 하기 위해서는-
첫째 계율을 철저히 지키고,
불선업이 되는 인연을 삼가합니다
수행만이 아니라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서라도
계율은 지켜야 합니다.
둘째 즐거움도 결국 괴로움이 되는 것임을
새겨야합니다.
모든 즐거운 현상은 결국 괴로움으로 끝나버리니
괴로움은 우리 삶에 항상 함께 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한 자세로 있으면 몸의 불편함이 올라와 자세를 바꾸게 됩니다.
이때 그자세를 바꾸지 말고 그같은 행동이 나오게 되는 근원을 추적하여 살펴보면,
몸의 불편한 것은 고통인데 이같은 괴로움이
우리의 일상이라는 것을 이해하게 됩니다.
이같은 이해를 통해서
탐진치를 관찰하는 힘이 생겨나고
탐진치를 따라가던 마음이 줄어들게 됩니다.
마음으로부터 일어나던 욕망들을 싫어하게 되는 자신을 발견은 하지만
성냄은 여전합니다.
성냄은 여전히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 지혜이며
이렇게 알아지는 것을 통해서 성냄의 번뇌 탐욕의 번뇌를 버릴수 있습니다.
넷째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호흡을 바라보고, 마음을 차분히 하고, 무엇보다 긴장하지 않고 수행 시간을
보낼 수 있어야 한다.
수행중에 보이고 들리는 일체가 대상임을 뚜렷이 인식하고, 사성제 팔정도는 일상에서 자주 듣고 읽어서 다른 사람에게 설명 할 수 있을정도로 외워야 합니다.
다섯째 공부하다 보면 어느 정도 수준에 이르게 되면
어떤 느낌에도 견디게 됩니다.
그냥두면 사라진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또,화장실을 갈 때나 음식을 먹을 때처럼
매일 하는 일상들의 관찰을 타성에 젖거나 하지 않게 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자기 자신도 모르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점검해주는 스승과 스승이 없다면 도반이 있어야 합니다.
하루 종일
몸과 마음에 밀착되도록 사십시오.
무엇을 하고 있으며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을 알려고 하십시오.
이것이 깨어 있음입니다.
수행을 멈추지 말고, 멈춰져 있음을 알고 끝없이 의도를 일으켜서 알아차림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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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심내지 마시고, 나쁜 사람 멀리하고, 빚 없이 살며
매일 조금씩 경전의 내용을 사유 해 보며 살아가는 것이 행복에서 멀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보드가야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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