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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은 남 허물 보지 않는 것
월호스님
세간에 있으면서도 수행은 가능하다.
그것은 남의 허물 보지 않는 것이다.
흔히 참선수행이라고 하면
가부좌를 틀고 조용히 앉아 있는 것으로만 생각하기 쉽다.
물론 움직이지 않는 이가
모든 사람의 허물을 보지 않는다면
이는 자성이 움직이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자기의 몸은 움직이지 아니하나
입만 열면 곧 사람들의 옳고 그름을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는 미혹한 사람으로 도와는 어긋나 등지는 것이다.
왜 그런가. 다투기 시작하면 자성이 생사에 떨어지기 때문이다
. 그러므로 참다운 좌(坐)라는 것은
밖으로 모든 경계 위에 생각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요,
선(禪)이라는 것은
안으로 본래 성품을 보아 어지럽지 않은 것이다.
이것이 좌선의 참다운 의미이다.
그래도 몸뚱이 좌선에 국집하는 이들을 위해서
육조 스님은 다음과 같은 게송을 남기셨다.
살아서는 앉아서 눕지 못하고 죽어서는 누워서 앉지 못하네
한덩어리 냄새나는 뼈무더기로 어찌하여 공과를 세우겠는가.
(生來坐不臥요 死去臥不坐로다 一具臭骨頭로 何爲立功課리요 )
이러한 가르침에도 불구하고,
다시 ‘도를 알고자 하거든
반드시 좌선하여 정을 익혀야 할 것이니
, 만일 선정을 말미암지 않고는
해탈을 얻을 수 없다’고 주장하는
이들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대답하셨다.
“도는 마음으로 깨닫는 것인데
어찌 앉는데 있겠는가?
경에 말씀하시기를
‘만일 여래가 이렇게 앉고 이렇게 눕는다고 말하면
이것은 삿된 도를 행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여래는 어디로부터 오는 바가 없으며
또한 가는 바도 없기 때문이다’ 라고 하셨다.
남도 없고 멸함도 없는 것이
이 여래의 청정선(淸淨禪)이고,
모든 법이 비어 고요함이 여래의 청정좌(淸淨坐)이어서
마침내 증득할 것조차 없거늘
어찌 하물며 앉을 것이 있겠는가?”
그렇다고 해서 좌선을 하지 말라는 것은 아니다.
다만 좌선을 하면서
진정으로 보아야 할 것은 나의 허물이요,
진정으로 보지 말아야 할 것은
세상과 사람들의 허물이라고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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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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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새기고 갑니다 감사요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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