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참한 조국의 현실이라도 잠잠히 기다림이 좋다
/쌍문동산소망교회 김 목사
비참한 조국의 현실이라도 잠잠히 기다림이 좋다
"사람이 여호와의 구원을 바라고
잠잠히 기다림이 좋도다(예레미야 애가3:26)"
예레미야는 유다왕국의 마지막 왕 시드기야가 멸망하기까지
부르짖었던 눈물의 선지자요 애국자였습니다.
예레미야는 유다의 멸망직전 왕과 방백들과 백성들이 여호와의 언약을
버리고 다른 신들에게 절하고 그를 섬긴 연고로 하나님의 진노하심을 경고하였습니다.
그런데 왕과 방백들과 백성들은 선지자 예레미야의 경고를 듣질 않았습니다.
오히려 방백들이 시드기야 왕에게 예레미야를 참소하였습니다.
예레미야의 예언대로 바벨론이 예루살렘을 공격하여 함락하였습니다.
바벨론은 예루살렘을 불태웠습니다.
시드기야 왕은 도망가다가 붙잡혔습니다.
아들들이 시드기야 보는 앞에서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시드기야는 두 눈이 뽑혔습니다.
바벨론으로 끌려가 죽는 날까지 옥에 갇혔습니다.
바벨론은 성전을 헐고 성전의 성물을 바벨론으로 가져 갔습니다.
예루살렘에는 비천한 국민만 남았습니다.
귀족들은 바벨론의 포로로 끌려가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예레미야가 비참한 조국의 멸망을 목격하였습니다.
예레미야는 너무나 슬퍼서 예레미야 애가를 지었습니다.
1.백성이 악을 행함과 예레미야의 외침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생수의 근원이 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물을 저축지 못할 터진 웅덩이니라(렘2:13)"
하나님을 버리는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비참한 버림을 당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생수의 근원입니다.
하나님을 버리는 것은 터진 웅덩이로 물을 채울 수 없는 목마른 갈증이었습니다.
물을 얻을 수 없는 패망을 보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을 버리고 가는 길은 넓은 길입니다.
크고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들이 많습니다.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은 길이 흡착하고 찾은이가 적을지라도
들어가는 자는 생명수강이 있는 천국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생수의 근원으로부터 생수가 넘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은 쉴만한 물가로 인도를 받습니다.
목마른 자가 값없이 생수를 마실 수 있습니다.
"또 저가 수정같이 맑은 생명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어린양의
보좌로부터나서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요한계시록22:1~2)"
예레미야가 주의 말씀으로 경고하니까 오히려 돌아오는 것은 조롱거리가 되고
종일토록 치욕과 모욕거리가 되었습니다.
예레미야가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중심에 불붙는 것 같아 외칠수 밖에 없었습니다.
"내가 다시는 여호와를 선포하지 아니하며 그 이름으로 말하지 아니하리라 하면
나의 중심이 불 붙는 것 같아서 골수에 사무치니 답답하여견딜 수 없나이다
(렘20:9)"
2.예레미야 애가
"밤새도록 애곡하니 눈물이 뺨에 흐름이여
사랑하던 자 중에 위로하는 자가 없고 친구도 다 배반하여 원수가 되었도다
(애가1:2)"
"내 눈이 눈물에 상하며 내 창자가 끓으며 내 간이 땅에 쏟아 졌으니
이는 처녀 내 백성이 패망하여 어린 자녀와 젖먹는 아이들이 성읍 길거리에
혼미함이로다(애가2:11)"
예레미야가 처한 상황은 낙심되어 희망이 없는 것 같아 보입니다.
그러나 중심에 회상한즉 소망이 있어 좌절할수만 없었습니다.
바벨론에게 패배한 유다의 형편은 비참하였습니다.
예루살렘성은 불타버렸습니다.
여호와의 전에 있는 성물은 바벨론으로 옮겨졌습니다.
불탄 성에는 굶주림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바벨론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그래도 남은 것은 절대적인 소망이었습니다.
전쟁의 폐허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하신 소망이 있었습니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 하는 생각이라(렘29:11)"
이스라엘은 나라가 망하여도 아주 망하지 않았습니다.
흩어지는 아픔이 있을지라도 돌아오게 하시는 하나님이 계셨습니다.
이스라엘은 진멸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70년만에 돌아오게 하겠다는 약속입니다.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바벨론에서 70년이 차면
내가 너희를 권고하고 나의 선한 말을 너희에게 행하여 너희를 이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 렘29:10)"
3.비참한 조국이라도 잠잠히 기다림이 좋도다
하나님은 믿는 자에게 성령의 감동을 주십니다.
돌아갈 처지가 전혀 아닌데도 돌아갈 마음을 주시는 감동입니다.
주의 성실하심은 예레미야의 입으로 하신 말씀대로 바사왕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키셨습니다.
고레스왕이 명하였습니다.
"바사왕 고레스는 말하노니 하늘의 신 여호와께서 세상 만국으로 내게 주셨고
나를 명하여 유다 예루살렘 전을 건축하라 하셨나니
너희 중에 무릇 그 백성된 자는 다 올라갈지어다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함께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였더라(역대하36:23)"
눈 앞에 아무 증거 보이지 않고 잡히는 것 없어도 하나님을 바라보고
기다리는 절대희망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오직 하나님을 바라는 자에게 절대희망으로 말씀하십니다.
세상이 내게 주는 것이 고초와 재난과 곧 쑥과 담즙이었습니다.
심령으로 낙심되어 정신적으로 피곤하고 몸도 상하는 것이 됩니다.
그러나 중심에 회상하여 간구하는 소망을 품어야 하겠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이 끓어지지 않았습니다.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끓을 수 없으리라(롬8:38~39)"
예레미야가 유다멸망으로 밤낮으로 눈물을 강처럼 흘려야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바라고 구하는 영혼이 되는 것은 하나님은 선을
배푸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비참한 조국의 현실이라도
여호와의 구원을 바라고 잠잠히 기다림이 좋습니다.
"사람이 여호와의 구원을 바라고 잠잠히 기다림이 좋도다(애가3:26)"
쌍문동산소망교회 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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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빌론 강가에서 ( Rivers of Babylon)
BC 587년 유다왕국이 멸망하고 유대인들은
바빌론에 포로로 잡혀간다.
바빌론의 강가에 우리들은 앉아 있었다오
그래요 우린 시온을 생각하며 눈물을 흘렸어요
바빌론의 강가에서 우리들은 앉아 있었다오
그래요 우린 시온을 생각하며 눈물을 흘렸어요
사탄이 나타나 우리를 납치하여 끌고가
우리에게 노래를 요구했지요
그런데 우리가 어떻게 이방의 땅에서
주님의 노래를 부를 수 있었겠어요
모세와 여러 예언자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경고가 심하게 있었는데도
그 경고를 무시하고 이방신을 섬긴 결과로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이 이미 예언하여 성경에 뚜렷이 기록하여 놓았듯이
다른 나라의 노예가 되어 70년간을 유배 생활을 해야 했습니다.
"우리가 바벨론의 여러 강변 거기 앉아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도다
그 중의 버드나무에 우리가 우리의 수금을 걸었나니
이는 우리를 사로잡은 자가 거기서 우리에게 노래를 청하며
우리를 황폐케 한 자가 기쁨을 청하고 자기들을 위하여 시온 노래 중 하나를
노래하라 함이로다
우리가 이방에 있어서 어찌 여호와의 노래를 부를꼬
예루살렘아 내가 너를 잊을진대 내 오른손이 그 재주를 잊을지로다
내가 예루살렘을 기억지 아니하거나 내가 너를 나의 제일 즐거워하는 것보다
지나치게 아니할진대 내 혀가 내 입천장에 불을지로다
여호와여 예루살렘이 해받던 날을 기억하시고 에돔 자손을 치소서
저희 말이 훼파하라 하였나이다
여자 같은 멸망할 바벨론아 네가 우리에게 행한 대로 네게 갚는 자가
유복하리로다
네 어린것들을 반석에 메어치는 자는 유복하리로다(시편137:1~9)"
성전에서 노래하는 것이 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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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샬롬^^*
마라나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