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기린 / 김 륭
“이 육체 속에서 우리는 무얼 한단 말인가.”
내 옆 침대에서 누울 준비를 하고 있던 사람이 말했다.
⸺안토니오 타부키, 『인도 야상곡』
영혼을 다 써 버린 후 검은 연기처럼, 다
언젠가는 돌아올 것이다 나는, 내 몸이 어떻게 지내는지
당신이 지새는 밤과 어떻게 섞이는지 보려고
내가 없는 내 죽음도 보일지 몰라 하얀 침대시트를 함께
말았던 당신의 죽음 또한
그러나 지금은 자는 게 좋겠다고
선반 위에 올려놓은 130g 햇반처럼 납작해지는
별, 하얀, 검게 그을리기 좋은
문득 배가 고프다는 생각이 들면 당신 또한 돌아왔다고
나는 다 써버리지 못한 울음으로 가만히
두 눈을 꺼트릴 것이다
없는 아름다움도 막 팔아먹을 만큼 우린 참
식물적으로 아팠지, 이런 문장 하나쯤은 서로의 입에
넣어 줄 수 없을까?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여행을 떠나듯
검게 부러져 가는 서로의 목을
베개처럼 껴안고
나는 왜 자꾸 눈사람 머릿속이
검다는 생각이 드는 걸까
⸺ 계간 《시인수첩》 2020년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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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륭 시인
1961년 진주 출생.
2007년 〈문화일보〉 신춘문예 시, 〈강원일보〉 신춘문예 동시 당선.
시집 『살구나무에 살구비누 열리고』『원숭이의 원숭이』
동시집 『프라이팬을 타고 가는 도둑고양이』『삐뽀삐뽀 눈물이 달려온다』『별에 다녀왔습니다』
『엄마의 법칙』『첫사랑은 선생님도 일 학년』『사랑이 으르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