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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카드의 신화들에 묘사된 인간
악카드(Akkad)는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수메르인들을 몰아내고서 새로운 셈족 문화를 형성한 민족을 지칭하는 용어인데, 주전 24세기경에 사르곤(Sargon)에 의해 실질적인 악카드 시대가 열린다. 악카드인들은 수메르의 종교적인 유산들을 거의 그대로 물려받아 그것을 조금씩 그들 나름의 것들로 발전시켜 나갔다. 악카드는 그 언어를 중심으로 바벨론과 앗수르로 나누이는데, 이제 창시기의 원역사와 평행되는 이 시대의 주요 신화들을 살피고 거기에 나타나 있는 인간 이해를 정리하고자 한다.
1. 바벨론의 창조신화 “에누마 엘리쉬”(Enuma Elish)
에누마 엘리쉬는 앗수르바니팔(Ashurbanipal, 주전 668-630) 왕의 도서관에서 발견된 7개의 토판 서사시로서, 원시 대양인 압수(Apsu)와 그의 아내 티아맛(Tiamat)으로부터 비롯된 여러 신(神)들의 출생, 신들 사이의 갈등 및 투쟁, 마르둑(Marduk)신의 승리, 우주 만물의 창조, 인간 창조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서사시에 의하면, 인간은 신들 사이의 투쟁에서 승리한 마르둑의 지시에 의해 지혜의 신 에아(Ea)가 만들게 되는 바, 그 구체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그들은 킹구(Kingu)를 결박하여 그를 에아 앞에 데려가서
그에게 벌을 주고 그의 피를 거두었다.
그들은 그의 피를 가지고서 인간을 만들었다.
그(에아)는 인간에게 신들을 위한 노역을 부과하고
신들을 자유롭게 해주었다.
현명한 에아는 인간을 창조하고서
그들에게 신들의 노역을 부과했는데
그 노역은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제6토판 31-37행).
이러한 묘사에 의하면 인간은 티아맛에 파트너인 킹구의 몸에서 흘러나온 피를 재료로 하여 만들어진 셈이다. 그리고 그 하는 일은 신들이 해야 하는 모든 노역을 대신하는 것이다. 이것은 인간을 신적인 기원을 가진 존재로, 그리고 인간을 노동하는 존재로 보는 악카드의 인간관을 반영하고 있다. 인간 창조가 갖는 이러한 특징은 “어머니 여신에 의한 인간 창조”(Creation of Man by the Mother Goddess)라는 신화에도 그대로 방영되고 있다. 이 신화에 의하면 인간은 신들이 해야 할 일을 대신하게 할 목적으로 닌투(Nintu)라는 어머니 여신이 죽은 한 신의 몸과 피에 흙을 섞어서 만든 것으로 나타난다:
인간을 창조하여 그에게 멍에를 매게 하라.
그는 멍에를 맬 것이다...
인간은 신의 일을 대신할 것이다...
한 신을 죽게 하라.
그리고 다른 신들은 침례를 통해 정결케 하라.
그의 몸과 그의 피에
닌투로 하여금 진흙을 섞게 하라.
신과 인간을.
그 둘을 진흙으로 문지르라(7-25행).
2. “아다파 서사시(The Epic of Adapa)”
이 서사시에 엘-아마르나(El-Amarna)궁중 문서 보관소(주전 14세기)에서 발견된 것과 앗수르바니팔 도서관에서 발견된 것의 두 종류가 있다. 그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지혜의 신 에아의 사제인 아다파(Eridu 신전 담당)가 고기잡이를 나갔다가 남풍의 날개를 꺾자 하늘의 신 아누가 진노하여 그를 심판하기로 한다. 아누의 심판에 직면한 아다파에게 에아는 조복을 입게 한 후 그가 지켜야 할 여러 가지 수칙들을 가르쳐준다. 그리고서 마지막으로 그에게 아누가 죽음의 떡을 주면 먹지 말고 죽음의 물을 주면 마시지 말 것이며, 의복을 주면 입고 기름을 주면 몸에 바르라고 지시한다. 심판 자리에 선 아다파는 아누의 여러 가지 질문에 에아가 가르쳐준 대로 대답을 한다. 아누는 에아가 그 모든 대답을 가르쳐준 것을 알고서 아다파에게 생명의 떡과 생명의 물을 준다. 아다파는 에아가 하라는 대로 다 행하지만 그것이 결국은 그로 하여금 영생을 얻지 못하게 하고 만다:
그들이 그에게 생명의 떡을 가져다주자 그는 먹지 않는다.
그들이 그에게 생명의 물을 가져다주자 그는 마시지 않는다.
그들이 그에게 의복을 가져다주자 그는 그것을 자기 몸에 바른다.
아누는 아다파를 보고서 웃으면서 말한다:
‘아다파여, 왜 그대는 도무지 먹지도 마시지도 않는가?
그대는 영생을 얻지 못하리라! 비뚤어진 인간이여!’(61-68행).
아다파는 신의 명령을 그대로 이행했지만 결국 영생을 얻지 못하고 마는 것이다. 이는 인간이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것을 나타내는 신화이지만, 신의 명령을 순종한 것이 영생 상실의 근원이라는 설명은 구약성서의 선악과 기사와 정반대의 성격을 갖는다.
3. “아트라하시스 서사시”(Atrahasis Epic)
아트라하시스 서사시는 암미사두카(Ammisadqa 1582-1562) 왕의 때에 만들어졌거나 복사된 것으로 여겨지는 초기 바벨론판(3개의 토판으로 됨)과 니느웨의 앗수르바니팔 도서관에서 발견된 신앗시리아판(2개의 토판으로 됨)의 두 종류가 있다. 이 서사시는 인간이 죽을 신의 피로부터 만들어진다는 내용에 이어 인류를 멸절시키려는 신들의 계획이 실행에 옮겨진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신들이 인류를 멸망시키려는 이유는 신들이 인류 번식으로부터 비롯된 지독한 소음으로 인해 잠을 자지 못한다는 데에 있었다.
땅이 넓어지고 사람들이 증가했다.
땅이 가축들로 가득 차게 되었다.
신(=엔릴)이 그들의 소음 때문에 방해를 받았다.
그가 그들의 소란스러움을 들었다.
그리고서는 위대한 신들에게 말했다.
“인간의 소음이 너무 커졌다.
그들의 시끄러움 때문에 잠을 못자겠다”(제2토판 2-8행).
엔릴은 단순히 인간 세상의 소음으로 잠을 자지 못한다는 이유 때문에 인간을 멸하기로 작정하고 각종 질병과 기근을 보내지만 성공하지 못한다. 마지막으로 그는 홍수로 모든 인간을 쓸어버리기로 결정하는데, 엔키(=에아)신이 이를 알고서 ‘지극히 지혜로운 자’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아트라하시스에게 꿈을 통해 그 사실을 알리면서 갈대로 된 배를 만들어 피신하게 한다. 이 신화는 인간이 왜 멸망당해야 하느냐의 이유를 인간의 번식과 그로 인한 소음에서 찾는다. 그러나 인간의 번식과 소음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뜻하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굳이 이것을 창세기와 관련시킨다면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 원인에 대한 묘사가 이에 해당될 것이다.
‘소돔과 고모라에 대한 부르짖음(즈아카)이 크고 그 죄악이 심히
중하니 내가 이제 내려가서 그 모든 행한 것이 과연 내게 들린 부르짖음과
같은지 그렇지 않은지 내가 보고 알려 하노라’(창18:20-21)
그런 이 서사시는 인간의 번식과 그로 인한 소음이 어떠한 점에서 멸망을 자초할 만한 것인지를 분명하게 언급하고 있지 않다. 다시 말해서 인간이 어떠한 점에서 멸망 받아야 할 죄인인지 창세기원역사에서처럼 분명하게 서술하고 있지 않다는 말이다. 물론, 시문학, 특히 탄원시에 속하는 “신에게 드리는 기도”에서 인간이 죄인임을 고백하는 내용이 나타나지만, 과연 그것이 원역사에 나타나는 것과 같은 존재론적인 죄의 인식에 기초한 것인지, 아니면 단순히 수사학적안 죄의 고백인지는 알 길이 없다:
자기 신에게 죄를 짓지 않은 자가 어디 있겠는가?
그의 계명들을 계속해서 지킨 자가 어디 있겠는가?
살아 있는 모든 인간은 다 죄인이다.
당신의 종인 저는 모든 종류의 죄를 다 범하였나이다.
참으로 저를 불성실하게 당신을 섬겼나이다(132-35행).
4. “길가메쉬 서사시”(Gilgamesh Epic)
길가메쉬 서사시는 앗수르바니팔 도서관에서 발굴된 12개 토판의 서사시로서, 그 11번째 토판에 실린 내용이 흔히 창세기 6:5-8:22와 평행을 이루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똑같은 홍수 이야기를 싣고 있는 아트라하시스 서사시에서는 홍수 이야기가 창조로부터 이어지는 일련의 사건들의 클라이맥스인데 비해서, 길가메쉬 서사시에서는 홍수 이야기가 그저 하나의 삽화에 불과할 뿐이다.
이 서사시는 우룩(Uruk)의 성주(城主)인 길가메쉬가 자신의 친구였던 엔키두(Enkidu)를 잃고서 영생을 찾아 헤맨다는 내용으로 시작한다. 우여곡절 끝에 그는 홍수의 주인공 우트나피슈팀(Utnapishtim)을 만나게 되고 그에게서 홍수 이야기를 듣게 된다. 이 이야기가 제 11토판에 기록되어 있는데, 우트나피슈팀은 자신이 어떻게 해서 영생을 얻게 되었는지를 말하는 과정에서 홍수 이야기를 전하게 되고, 홍수 후에 신들이 자기에게 영생을 주었다고 말한다. 그런데 그의 이야기에는 왜 신들이 인간을 멸망시키지 위해 홍수를 일으켰는지에 관한 이유가 분명하게 나타나 이지 않다. 우트나피슈팀이 길가메쉬에게 홍수가 어떻게 시작되었는가를 밝히는 다음의 말에서 우리는 중요한 한 단서를 얻을 수 있다:
네가 아는 성읍 슈리팍(Shurippak)은
유프라테스 강가에 위치해 있는데
그 성읍은 오래되었고 그 안에는 신들이 살고 있었다.
그들, 곧 위대한 신들의 마음이
그들로 하여금 홍수를 일으키게 만들어다(제 11토판 10-14행).
신들의 마음이, 다시 말해서 그들의 변덕스러운 마음이 홍수를 일으켰다는 것이다. 그러나 홍수가 끝난 후 에아 신이 엔릴 신의 사려 깊지 못한 홍수 심판과 부당한 파괴 행위를 비난하는 다음의 말은 홍수가 인간의 알지 못할 어떤 죄와 관련되는 것 같은 암시를 준다:
죄인에게 그의 죄를 부과하시오.
범죄자에게 그의 범행을 부과하시오.
관용을 베풀어 그가 멸망치 않게 하시오.
삼가 그가 쫓겨나지 않게 하시오.
홍수를 일으키는 대신에 사자가 나타나
인류를 감소시키게 하시오.
홍수를 일으키는 대신에 기근이 일어나
땅을 망치게 하시오.
홍수를 일으키는 대신에 이라(Ira=온역)신이 나타나
인류를 멸망시키게 하시오(제 11토판 80-85행).
홍수가 끝난 후 우트나피슈팀은 신들에게 향기로운 제사를 드리고 엔릴은 다음과 같이 말하면서 그와 그의 아내에게 영생을 선물한다;
이제까지 우트나피슈팀은 인간에 부과했다.
그러나 앞으로 우트나피슈팀과 그의 아내는
우리 신들처럼 될 것이다.
우트나피슈팀은 멀리 떨어진 곳,
곧 강들의 입구에서 살 것이다(193-195행).
홍수 이야기를 끝낸 우트나피슈팀은 길가메쉬에게 엿새 동안 잠을 자지 않으면 영생을 얻을 수 있다고 하나, 길가메쉬는 피곤을 견디지 못한 채 엿새 동안 줄곧 잠에 빠진다. 실의에 찬 길가메쉬는 우트나피슈팀에게 다른 방도가 없는가를 묻는다. 이에 우트나피슈팀은 그에게 생명의 풀을 얻는 방법을 가르쳐주고 길가메쉬는 그 가르침을 따라 생명의 풀을 얻는다. 그것을 가지고 고향으로 돌아가던 길가메쉬는 생명의 풀을 연못가에 둔 채로 목욕을 하다가 뱀에게 그것을 빼앗긴다:
길가메쉬는 시원한 우물물을 발견했다.
그는 그 물 속에서 목요하기 위해 그곳으로 내려갔다.
뱀 한 마리가 그 풀의 향기를 맡았다.
그 뱀은 물로부터 나와서 그 풀을 가져갔다.
뱀은 그 풀을 먹고 나서 허물을 벗었다(285-289행).
영생을 얻으려는 모든 시도에 실패한 길가메쉬는 눈물을 머금고 고향인 우룩으로 돌아가는데, 이러한 결말은 길가메쉬 같은 영웅도 결국은 영생을 얻지 못한다는 것으로 인간의 필멸성을 인정하고 있는 셈이다. 흥미로운 것은 그의 영생 획득을 방해한 마지막의 장애물이 다름 아닌 뱀이었다는 사실이다. 이는 창세기 3장의 뱀을 연상시킨다. 생명의 풀에 관한 이야기도 에덴동산에 있는 것으로 묘사되는 생명나무와 평행을 이루고 있다.
이상을 종합해 볼 때, 수메르의 중요한 종교적인 유산을 거의 그대로 물려받은 악카드의 문헌들 역시 수메르와 동일한 인간 이해를 보이고 있음을 분명하게 드러난다. 인간이 신들의 노역을 대신하려는 목적으로 만들어졌다는 내용은 노동하는 인간에 관한 묘사이며, 모든 인간이 영생을 추구하지만 결국에 가서는 좌절할 수밖에 없다는 내용은 필멸의 존재로서의 인간에 관한 묘사이다. 물론 악카드의 문헌들은 수메르의 단편적인 문헌들을 잘 결합시키면서 그 주제를 보다 확대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다소 발전된 듯한 인상을 준다. 이를테면 인간이 죽은 신의 피로부터 만들어진다는 묘사나, 인간을 왜 각종 질병이나 홍수로 멸망시키려고 하는지의 이유를 인간 사회의 소음과 죄와 관련시켜 설명하려고 노력하는 내용들, 그리고 생명의 풀에 관한 이야기나 뱀의 역할에 관한 이야기 등이 그렇다. 그러나 악카드 문헌들에 나타나는 신관이나 인간의 죄성에 관한 묘사는 여전히 창세기 원역사에 나타나는 도덕적인 차원을 결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나름의 한계를 노출하고 있다.
히브리어를 처음 대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글자 모양이 복잡하고 어렵다는 선입견을 갖는 경향이 있다. 그렇지만 히브리어 알파벳을 가만히 보면 우리 눈에 익숙하지 않을 뿐이지 오히려 단순하게 생겼음을 알게 된다(문법편에서 히브리어 알파벳의 특징을 미리 익혀두기 바람). 즉, 히브리어의 모든 글자 모양이 한결같이 네모난 틀 속에 들어간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는데, 이 때문에 히브리어 글자를 장방형 문자(Square Letter)라고 부른다. 이는 BC 3-2 세기 경 아람어의 각(角) 문자 형태를 빌려와서 만든 것이다. 따라서 히브리어와 아람어의 알파벳은 글자 모양이 서로 같다. 그러나 그 이전의 고대 히브리어 서체는 현재보다 훨씬 각이 예리하며 특이한 형태의 모양을 가졌었다.
히브리어는 북방계 셈어(Semitic)의 일종으로서 두말할 것 없이 히브리인들이 사용하는 언어이다. 그런데 고대에 사용한 히브리어와 오늘날의 히브리어는 전혀 다른 언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많은 역사적 변천을 겪었음을 알아야 한다. 히브리인( )이라는 명칭은 강을 건너온 사람이란 뜻인데, 성경(창 14:13)에 보면 BC 2100년 경인 아브라함 때부터 사용되어져 왔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아브라함의 가족이 메소포타미아 유역의 한 지역인 갈대아에서 가나안으로 오는 이주해 오는 과정에서 얻은 이름이다. 그러므로 히브리인들이 갈대아 지역에서 사용한 셈어는 당시 고대 근동의 표준어인 수메르어와 악카드어에 의해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 높다.
히브리인들이 살았던 고대 근동에는 수메르어와 악카드어가 있었다. 수메르어(Sumerian)는 BC 4000-3500년 경에 티그리스강과 유프라데스강 사이에서 발현하여 찬란한 메소포타미아 문명을 꽃피운 수메르인들의 언어이다. 수메르어는 처음에는 상형문자(Hieroglyph)를 사용하였으나, 추상적 개념을 표현할 수 없는 한계로 인하여 곧이어 쐐기형 설형문자(Cuneiform)가 고안됨으로써 BC 3000년경부터 고대 근동에서 널리 사용되었다. 메소포타미아 지역에는 수메르인들보다 먼저 정착한 셈족(Semitic)과 함족(Hamitic)이 있었으나 그들보다 우월한 문명을 가진 수메르인들에게 정복당하고 문화와 언어에 이르기까지 많은 영향을 입었다. 수메르는 BC 2300년경 수메르 북방에서 일어난 셈족의 일부인 악카드의 사르곤 왕에 의해 멸망당했지만, 수메르어는 그 이후에도 악카드어가 확산되기 전까지 고대 근동의 대표적 언어로서 셈어에 많은 영향을 끼치며 사용 되어 졌다.
악카드어(Akkadian)는 셈어의 일종으로서 악카드인들이 수메르 문화를 계승하여 발전시킨 언어로서 역시 쐐기형 설형문자로 되어있으며 수메르어보다 더 복잡한 개념을 표현할 수 있는 특징이 있다. 수메르어와 악카드어는 고대 근동에서 한때 혼용되었으나, BC 1800년경 고대 바벨론의 하무라비 왕에 의해 메소포타미아 지역이 통일된 이후에는 앗수르, 바벨론에 의해서 사용된 악카드어가 고대 근동의 표준어로 지배하였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아람어에게 그 지위를 물려주게 되었다. 악카드어 역시 다른 셈어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발전해 갔다.
그런데 수메르어나 악카드어는 모두 독특하게 고안된 쐐기형태의 기호인 설형문자를 사용하는 언어였기 때문에 읽고 쓰기가 매우 어려웠다. 따라서 누구나 쉽게 배울 수 없었으며 사제(司祭)와 일부 학자들만이 사용할 수 있는 특수계급의 언어였으므로 일반 대중적 언어가 될 수는 없었다. 그래서 대중적 전달 수단으로서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서는 글자를 더욱 단순화시킬 필요가 있었는데, 이때 알파벳 개념이 도입된 것이다. 알파벳은 히브리인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면서 처음으로 발명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이를 페니키아인들이 근동과 지중해 지역으로 널리 유포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제한된 숫자의 글자를 가지고 마음대로 조립하여 무한한 사상을 표현할 수 있는 장점이 있으며 후대 모든 알파벳의 기원이 되었다.
아무튼 아브라함의 자손인 히브리인들이 가나안에 거주하면서 사용한 셈어는 수메르어와 악카드어와 관련이 많다는 것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한편 그들이 야곱을 따라 애굽으로 이거한 후 약 430 동안은 애굽의 문자에 영향을 받았을 것이고 또 실제 생활에서는 애굽 언어를 사용했을 것이다. 모세가 성경을 최초로 기록한 BC 1500년 경의 옛날 히브리어의 서체(Old Hebrew Script)가 애굽의 상형문자에서 일부 모양을 본 따서 만들었다는 것이 그 증거이다. 애굽어는 함어인데, 애굽은 오리엔트와 다른 또 하나의 문명의 발상지로서 일찍부터 상형문자로 된 고유의 언어를 가지고 있었는데, 특징은 알파벳적인 요소가 처음부터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히브리인들이 애굽에 거주할 때 애굽 상형 문자에서 알파벳을 고안했다고 보기도 하는데, 그렇다면 모세가 성경을 기록한 시기엔 나중에 페니키아에 의해서 보급되는 그 알파벳이 벌써 고안된 후였다는 것이다. 이상을 종합하면 최초 히브리어 성경은 원래 가나안 셈어에 바탕을 두면서도 메소포타미아와 애굽이라는 양대 문명의 영향을 모두 받은 고대 히브리 서체로 기록되었다고 할 수 있다. 즉, 히브리어는 히브리인들이 근동과 아프리카의 문명을 교류하는 가운데서 그들 나름대로 독특하게 형성한 언어라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고대 히브리 서체로 된 사본은 거의 발견되지 않고 있으며, 오늘날까지 전해져온 히브리어 성경은 거의 모두 장방형 문자로 기록되어있다. 이는 BC 3-2 세기 경 당시 팔레스타인의 보편 언어였던 아람어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서 훨씬 후대의 산물인 셈인데, BC 1 세기경에 쓰여진 사해의 쿰란 사본과 AD 7 세기 경의 맛소라 사본 모두 장방형 문자로 기록되었으며, 현대 히브리어에서도 채용되어 사용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