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제아제바라아제 바라승아제>
위 구절은 불교의 반야심경 중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부분입니다.
본격적인 뜻을 헤아리자면 한권의 책으로도 다 설명할 수 없는 매우 심오한 불교철학적 의미를 담고 있지만
단지 속세俗世의 이 어리석은 우민愚에게는
<가자 가자 저 피안의 세상으로>라는 뜻으로만 간략화 됩니다.
구절 중의 <바라>는 인도어이고, 중국의 현장법사가 번역을 할 때 피안彼岸으로 번역하였다 합니다.
차안此岸은 이 언덕이고 피안彼岸은 저 언덕입니다.
우리는 흔히 이안 즉, 이 세상을 고통의 바다인 고해苦海라 하고, 피안을 고통이 없는 이상형의 세계로 생각을 합니다.
태어나서부터 우리는 죽을 때까지 세상의 모든 고통에 시달리다가
피안으로의 강은 건너지 못한 채, 마침내는어느날 갑자기 죽음에 이르게 되지요.
이 세상에 피안은 없고, 사람들은 각자의 종교적 신념에 따라 저 세상의 피안, 천국을 믿을 뿐입니다.
현세에서는 오직 해탈한 승려만이 건널 수 있다는 피안의 세계...
만약 진실로 그 피안의 세계가 있다면, 지금이라도 머리를 깎고 생사를 초월하는 저 언덕에 이르고 싶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지고 있는 고통의 무게는 모두 비슷한 것 같습니다.
가난한 사람이나 부자나, 배운자나 못 배운자나, 각자 위치에서 받는 고통의 무게는 같다는 것이지요.
행복하게만 보이는 사람들도 가만 들여다 보면
한보따리의 고민과 고통을 안고 삽니다.
때로 절친인 친구에게 묻습니다.
네 나이에 아직 회사를 운영하면서 일 할 수 있고
자식들도 잘 키워 성공한 듯 하고
여유도 있어 돈 걱정은 안하는 것 같고
너 마음대로 자유롭게 취미생활 하며 즐길 수 있고
넌 뭐가 걱정이냐?
그냥 사는 재미가 없고 그저 힘들다.
아직도 쉬지 못한 채 회사와 직원들을 책임져야 하는 짐을 지고 있고
자식들은 외국에서 살고 있어 자식인지 타인인지 몰라 세상 혼자인 것 같고
돈이야 나이든 내가 쓰는 돈이라는 게 몇푼이나 되며
마음대로 자유롭게 취미생활을 한다 하지만
이 나이엔 취미생활도 때로 허허롭고 부질없구나.
그렇습니다.
사는 재미가 없는 것만큼 위태롭고 힘든 일도 없는거 아닐까요?
저 역시 저 언덕, 피안의 세상으로의 삶을 살기 위해 죽어라 살아왔지만
아직도 피안의 세계는 요원하고 세월은 무작정 흘러 이만큼 와버렸습니다.
꽃이 피고 꽃이 지고
단풍이 들고 또 단풍이 지는 세월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었는지, 제가 꿈꾸던 피안의 저 언덕은 어디에 있는지
홀로 묻고 또 물으며
훠이 훠이 여전히 비탈진 고갯길을 힘겨이 넘어가고 있습니다.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 승아제
첫댓글
읽으면서 '화양연화'란 말이 생각났습니다.
봄을 바라며 견뎌내던 겨울 같던 시절이
지나보니 늘 봄이었다는 흔한 말도.
생각케 하는 깊이 있는 글 잘 읽었습니다.
네네 그렇습니다.
지나온 고통조차도 그때가 좋았더군요.
현재는 늘 미래에서 그리움의 시절이었습니다.
단풍나무숲님의 글, 의미가 깊습니다.
사람의 고뇌가 유형이 다를 뿐이지
거기서 거기인 것 같습니다.
우리는 피안의 세계를 그리기도 하고
상상도 하는 어쩌면,
힘든 세상살이를 피안의 세계에서 위안을 찾기도 합니다.
그래서 종교의 힘을 얻고
선한 마음을 가지고 살아 갈려고 노력도 해 보지요.
글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꽃님의 마음 쓰심이 늘 정제된,낌을 갖습니다.
그렇지요. 이를 수 없는 곳이라 하지만
그래도 피안이 있을거라는 막연한 기대와 희망으로 살아가기도 합니다.
요즘 그냥 호탕하게 웃고 삽니다.
가장 가깝고 늘 함께 있고
같이 늙어가는 부부의 삶이 지루하고
답답하여서 별거 아닌 일에도 호탕하게
웃어줍니다.
나 좋아라고 그냥 웃고 있지요.
초코렛 들고 옆으로 와서
남편이~ 묵어? 안묵어? 묻습니다.
댓글쓰려고 아니.! 하였습니다.
정답이 없는 삶
어떤 지혜로 살아야 되는지
그냥 사랑하라 했는데
참 알수가 없네요.
하루를 호탕하게 웃고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행복한 삶이지요.
윤정님은 충분히 그러실 분 같습니다.
저도 살면서 많이 묻고 답을 찾아 헤매던 주제입니다.
반야심경 중에 저는 '오온개공 도일체고액' 이란 부분이 특히 마음에 닿았습니다.
요즘 유투브에서 자주 접하는 법상스님의 피안 또한 방편이니 스스로에게서 그 답을 찾으란 설법이 생각납니다.
나는 누군가, 지금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
현재 위치는 어디쯤인가....
그 물음을 찾고 또 찾습니다.
저는 불교도도 아니고 깊이 있는 철학도도 아닙니다만...
"어떻게 살아야 하지. 어떻게 사는 것이 그나마 뒤돌아봤을 때 후회를 최소화할 수 있지"
살아있는동안 끊임없이 따라오는 질문이지만 아직도 그 대답은 궁색하기만 합니다.
때론 정말 삶 그자체가 고통이고 업보의 씨앗이며 정답이 없는 것인가 하는 생각을 하면서
너무 염세적인 접근인가 싶어서 애써 아니라며 마음을 다잡아보곤하지만...
이런 생각의 틀에서 자유롭기가 마음처럼 그리 쉽지가 않네요.
피안의 세계를 믿으며 힘을 내보고자 합니다.
올려주신 귀한 글을 읽으며 다시 한번 나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로 삼아야겠습니다.
후렴구가 익숙하나 정확히 무슨 의미인지 몰랐습니다.
사람 사는 일이 끝까지 의문과 질문속에서 하루하루 보내는
것 같기도 하니 그 나름대로 의미가 있을 것 같기도 합니다.
종국에 어디를 향해 가는지 몰라도 ㅎ
의미있는 글 잘 읽었습니다.건강하세요.
다 갖추셔 행복하실 듯 한데
우울하신 모양입니다.
고통이 심하면 누구나 견디기 어렵지요.
돌아보면 그래도 견딜만 했더라 싶습니다.
그래서 감사하지요.
이안,피안,다시 생각해 봅니다.
잘 읽고 갑니다.마음 편하시길 빌어 드릴께요.
이 세상이 원하는 대로 다 이루어지면
무슨 재미가 있을까요 ?
고통없이 즐거움만 있다면 그게 과연
어떨런지요 ?
오징어 게임 드라마에서 그렇듯이
모든게 완벽하게 갖추어져 있으면
무엇인가 자극적인것을 찾아 헤매는게
보편적인 사람들의 심리라 생각 해
본적도 있습니다 .
그렇지만
저도 피안의 세계를 가보고 싶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