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부터 속도에 큰 호기심을 가지고 있던 「의식의 강」의 저자 올리버 색스는 나이가 들면서 모든 동식물의 속도로 관심이 확대되었다. 모기가 혐오스러운 높은E음으로 소음을 내는 것도 날갯짓의 속도 때문이며, 살찐 호박벌이 느긋한 베이스 음역대의 비행음을 내는 것도 역시 날갯짓의 속도 때문이다. 각중에 아침 일찍 동네 골목을 돌아다니며 호박꽃의 꿀을 빨아먹고 있는 호박벌을 꽃에 가둔 채 잡아서 귀에 대고 소리를 듣던 어릴 적 기억이 떠오른다. 벌을 잡다가 숱하게 쏘였는데도 아픔보다는 잡는 재미에 이끌려 다시 잡곤 했었다. 다음 벌이 눈에 띄면 먼저 잡은 벌은 미련 없이 놓아주었다. 그런데 사람들이 못생긴 여자를 호박꽃에 비유하는 건 상굿도 못마땅하다. 그 은은한 노란색과 꽃술이 울매나 예쁜데.
동식물의 속도에 대한 관심 덕분에 고속 또는 저속 촬영이라는 흥미로운 예술분야가 탄생하기도 했다. 이러한 촬영기법은 인간 시각의 한계를 넘어서는 변화를 포착하는 데 획기적인 영상을 제공한다. 저자 색스는 대학교에 다닐 때부터 자기 집 정원에서 식물 촬영실습을 하곤 했는데, 단단히 똬리를 틀고 있는 청나래고사리가 손가락을 서서히 펼치는 고속촬영 영상은 무한한 상상력을 자극했다. 이틀에 걸쳐 찍은 고사리의 영상을 감상하는 데는 고작 1~2초면 충분하다. 이와 반대로 접시꽃 주위를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 벌을 고속으로 촬영하여 저속으로 돌리면, 날개를 아래위로 휘젓는 벌의 연속동작을 명확하게 관찰할 수 있다.
흔히들 연말이 다가오면 하루하루가 후딱후딱 지나가고, 나이가 들면 들수록 세월이 빨리 지나가는 것 같다고 얘기한다. 반면 나이가 들면 시간이 더디게 가는 것 같다고 지루해하는 사람도 있다. 어느 경우든 순전히 본인 위주의 인지속도일 뿐 시간의 자연속도는 우주가 탄생한 138억 년 전부터 지금까지 변함이 없다. 저만 늙었지 이제 태어나는 사람도 있지 않는가. 시간의 속도는 나이보다는 어딘가에 몰두할 때 더 빨리 가는 것처럼 느끼는 게 정상이다.
1892년 스위스 지질학자 알베르트 하임은 위험에 직면한 사람이 시간을 어떻게 인식하는지를 체계적으로 연구했다. 그는 알프스산맥을 탐험하다가 추락하고도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30명을 대상으로 당시의 정신상태를 분석하여 그들의 정신활동 속도가 무려 100배가량 증가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시간이 엄청나게 확장되어 대부분의 사람들이 평생 겪었던 일을 주마등처럼 떠올렸다는 진술을 듣고 내린 결론이었다. 천 길 낭떠러지에서 떨어져 내리는 순간,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불안감이 완전히 사라지고 수용의 태도가 자리잡기 때문에 발생하는 증상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죽는다고 판단하면 현실을 100% 수용하게 된다. 이후 하임과 같은 연구는 여러 학자들에 의해 지속적으로 실시되어 동일한 사실을 확인했다.
이처럼 죽음이 임박한 상태의 정신적 체험을 임사(臨死) 체험이라고 한다. 사람에 따라 임사체험은 무력감‧수동성‧이인증(異人症. 다른 사람이 된 듯한 느낌) 등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즉각성‧현실성‧민첩성 등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후자의 경우에는 즉각반응으로 위험을 피하여 목숨을 구하기도 한다. 전투기가 항공모함에서 부적절한 방법으로 발진하다가 바다에 추락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런 경험이 있는 조종사 노이스 클레티는 다음과 같이 증언했다.
“나는 그 순간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나는 불과 3초 동안 10여 가지 대응조치를 취함으로써 비행기의 상태를 바로잡아 목숨과 전투기를 구했습니다. 나는 거의 완벽한 통제력을 유지하면서 평소에 훈련해온 모든 대응조치를 거의 동시에 수행할 수 있었습니다.”
이는 정신적‧신체적 능력이 순간적으로 극대화되었기 때문인데, 대부분의 경우에는 이와 반대로 무력감과 수동성에 빠져들어 아무런 대응조치도 취하지 못하고 그대로 추락하게 된다.
만약 인간에게 생각의 속도를 높이는 기술이 있다면 삶의 범위도 그만큼 더 확장될 것이다. 이는 인간의 능력으로는 도달하기 불가능한 분야지만, 많은 과학자들이 그러한 열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아마도 인간의 진화 메커니즘은 부지런히 그쪽 방향으로 진화해가고 있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신경세포 수준이 아니라 뉴런그룹들 사이의 상호작용에 의해서만 가능한데, 인간의 과학적 수준은 상굿도 흥분력과 억제력을 조절하는 수준에 머물고 있다.
사람들은 저마다 활동과 운동의 속도가 다르다. 같은 사람도 경우에 따라 속도가 달라진다. 평소 천천히 걷던 산책길이라도 소나기가 후두둑 떨어지기 시작하면 빨리 달리게 된다. 젊었을 때 활기차게 움직이던 사람도 나이 들면 운동속도가 느려지게 마련이다. 보행자 교통사고 사망자 가운데 노인들이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연산‧인지‧시각연합 등의 속도에도 큰 차이가 있다. 자폐인 가운데는 슈퍼컴퓨터보다 빠른 속도로 연산처리를 하는 사람도 있다. 이는 정교하게 구성되어 있는 기술 때문으로 기본적인 신경속도에는 큰 차이가 없다.
오늘날에는 다양한 종류의 도구가 개발되어 있어 인간의 감각 및 신체의 속도를 엄청나게 높일 수 있게 되었다. 인간의 능력이 마침내 시간의 자물쇠를 열 수 있게 된 것이다. 광학계에는 이미 시간현미경과 시간망원경이 정착되어 있는데, 이를 이용하여 인간은 1000조 배의 가속 또는 감속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인간의 기술은 나노초※의 단계를 넘어 펨토초※ 동안 이뤄지는 화학결합의 형성 및 분해과정도 관찰할 수 있게 되었다.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통해 빅뱅에서 현재에 이르는 138억 년 동안의 역사를 단 몇 분으로 압축할 수 있는 기술도 보편화되어 있다. 인간의 기술은 이미 속도가 시간을 넘을 단계에 이른 것이다.
※ 나노초 ; 10억 분의 1초
펨토초 ; 1000조 분의 1초
첫댓글 아하
그게 인지속도였구나..
요즈음 지하철 타는 과정에서 늘 느끼는 것인데...
내 걸음이 빠르다고 생각하는데도,
앞서 가는 젊은이들의 발걸음을 따라가지 못하겠더라고...
뛰는 느낌으로 걸어야 겨우 따라 잡게 되던데...
그게 인지속도라는 걸 오늘에야 알게 됐네.
감사 감사
자연속도와 인지속도라 좋은 것 배우네
강원도 정선에 있을때 빙판도로를 운전하는데
핸들이 지맘대로 움직여
제어가 안되어 마주하는 차와 충돌하니 아무생각이
안나 머리속이 텅빈 상태가 한참 되더군
여러가지 생각이 떠오르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