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제국주의 열강의 아프리카 분할
아프리카의 혹독한 자연 환경과 토착 왕조의 저항은 대항해시대 이후 수백 년간 그럭저럭 유럽인의 아프리카 본격적 진입을 좌절시켰다. 그러나 18세기부터 유럽은 데이비드 리빙스턴, 헨리 스탠리 같은 탐험가를 파견하면서 내륙 아프리카의 지도를 완성했으며, 슬슬 아프리카 내륙에 눈독을 들이기 시작했다. 19세기에는 아시아 식민화가 고착 상태에 빠지고, 원래 유럽인의 노예 상태에 있었던 아메리카 대륙의 나라들이 대대적으로 독립했고 노예무역도 거의 폐기되었다. 유럽인들은 이 피해를 보상받을 새로운 만만한 ‘먹잇감’을 찾았고, 그것이 아프리카 내륙의 완전 식민화였던 것이다.
이 때쯤이면 아프리카 국가들도 유럽과의 교역을 통해 총과 대포로 무장했으나 유럽 각국은 비유럽인을 압도하는 개틀링, 맥심 기관총, 야포 등의 더 대단한 무기를 개발하여 아프리카 국가들을 손쉽게 압도한다. 의학 기술의 발달로 아프리카 내륙의 질병을 견딜 수 있게 된 것도 큰 도움이 되었다. 그 결과 19세기에는 아프리카 대부분의 국가가 식민지로 전락하였다. 이에 저항해 투쿨로르와 수단 등에서는 마흐디(Mahdi, 구세주) 신앙에 근거한 이슬람 저항 운동이 벌어지기도 했으나 진압되었다. 수단에서는 마디 교단이 다스리는 신정 국가가 들어서서 한동안 영국의 침입에 잘 저항했으나, 맥심 기관총으로 무장한 영국군과 싸운 옴두르만 전투에서 5만 명의 군대가 무참히 궤멸되는 참패를 당하는 바람에 결국 영국한테 60년 동안 식민 지배를 받았다.
서구 열강들의 아프리카 나눠먹기는 경쟁이 심해져 공개적으로 자기들끼리 보어전쟁 같은 싸움을 벌이기도 했지만, 1884년 베를린 회담을 통해 거의 최종적으로 확인되었다. 그 결과 프랑스와 영국이 각각 아프리카의 35.6%, 29%를 잠식해 가장 큰 지분을 차지하고 그 다음으로 포르투갈, 벨기에, 독일 등이 아프리카의 7% 정도씩을 차지하게 된다. 프랑스는 마그리브 지역과 서아프리카 해안에서 시작해 끝내 서아프리카 내륙을 대부분 식민지로 장악하였고, 영국은 이집트와 수단, 남아프리카, 나이저 강 하구를 장악한 뒤 서서히 동아프리카 지역 전역을 장악하였다. 스페인은 신대륙 식민지에 집중했던 나라라 아프리카에는 식민지가 많지는 않았지만 서사하라를 포함한 모로코와 적도기니를 정복했으며, 포르투갈은 앙골라, 모잠비크, 기니 등 전통적인 해안 식민지에서 좀 더 주변 내륙 지역으로 뻗어나간 지역에 지배권을 인정받았다. 이 외에도 후발주자인 벨기에, 이탈리아, 독일 등도 아프리카의 영유권을 인정받았다. 특히 벨기에의 콩고 자유국은 같은 제국주의 열강마저 맹비난할 정도로 비인도적인 통치로 악명 높았다. 최종적으로는 미국 흑인들의 이주를 명목으로 미국이 독립시켜준 라이베리아와 메넬리크 2세의 근대화 정책이 성공을 거둔 에티오피아 제국 두 케이스를 제외한 아프리카 전역이 서구 열강에 의해 식민지화 되었다.
그러나 흔히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아프리카에 대한 경제적 착취’는 20세기 초반까지 성공적이지 못했고(경제 목적으로 점령한 지역은 목화 산업이 번영했던 이집트 정도뿐), 흔히 알려진 ‘아프리카 횡단 정책’과 ‘아프리카 종단 정책’도 영토 과시 외에는 큰 기능을 하지 못했다. 식민지를 확보한다고 철도가 바로 이어지는 것도 아니고... 통치 형태도 대체로는 간접 통치 형태였다. 사실 유럽에서 아프리카의 식민지화를 촉진한 동인은 경제적 타산이 아닌 유럽 각국 자본가들의 시장 확보를 위한 탐욕, 정치가들의 국가주의적 경쟁의식 등이었다.
하지만 유럽에게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해서 아프리카에 도움이 되었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착취적인 플랜테이션 농업과 군사적인 지배 구조, 타 유럽 국가와의 정치적 대결을 위한 무분별한 식민지의 확장, 인종주의와 사회진화론에 입각한 인종차별 등으로 인해 이 시기의 아프리카는 큰 고통을 받아야 했다. 유럽의 제국주의 정책이 미친 가장 큰 악영향은 그나마 아프리카에 존재하던 고유 국가 체제를 파괴하여 결과적으로 부족들이나 소국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분쟁의 통제력을 떨어뜨리고, 이를 유럽의 취향대로 통합하거나 해체하여 이후 아프리카에 벌어질 혼란상을 야기했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오늘날에도 아프리카 국가들은 유럽에 대한 감정이 좋지 못하다.
제2차 세계 대전이 일어났을 때 아프리카도 예외가 될 수는 없었다. 이탈리아 왕국이 아프리카를 정복해 이탈리아 제국을 세울 야심을 품고 있었기에 이탈리아는 이집트를 침략하면서 아프리카 전선이 시작되었다. 나치 독일, 비시 프랑스도 이탈리아 편을 들었고, 이집트는 영국과 함께 연합군 측으로 참전했다. 한편 나치 독일은 북아프리카 전선에 유명한 에르빈 롬멜을 파견하여 연합군과 독일군 모두를 놀라게 했다. 그러나 결국 추축국은 패배했고, 영국은 아프리카에서 추축국 세력을 모두 몰아냈다. 에티오피아도 1936년 잠시 이탈리아의 지배를 받았다가 이 때 해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