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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는 그제 하루를 쉬었을 뿐 토요일인 오늘 까지도 거침 없이 내린다.
아침 뉴스에서는 호우니 태풍이니 하는 말을 연신 뱉어내고 어느 동네에서는 어른들의 아랫도리가 물에 잠길 만큼 난리가 났다고 법석을 떨지만, 난 오늘도 동네 아이들과 야구를 하지 못 하게 될 것에 대해 실망하고 있다.
연이는 어제 현숙이 이모가 사준 노란 비 옷을 입었다.
줄곧 많은 비가 내리는데도 어젯 밤 부터 밖에 나가고 싶다며 떼를 쓰던 연이는 엄마에게 실컷 야단을 맞고서도 밤새 곰 인형에게 오늘 아침에도 비가 내렸으면 좋겠다는 말을 해대다 잠이 들었다.
곰 인형이 생긴 후로 연이에게 난 찬 밥이 되버렸다.
잠을 잘 때면 어느 땐 내게 기대 곤하게 잠을 자기도 했던 녀석이 이젠 잠들기 전 까지 곰 인형과 이야기를 나누다 잠이 든다.
다른 날 보다 늦게 잠이 들었던 연이는 엄마나 내가 깨우기도 전에 아침 일찍 일어나 창 밖 부터 내다본다.
주륵주륵 빗 소리가 방 안 가득 스며들자 비 옷 부터 챙겨 입고 거울 앞에 선 연이는 마냥 즐거워 보인다.
이제 연이가 비를 맞으며 나를 기다릴까 걱정하지 않아도 되지만 조금은 샘이 나기도 한다.
공장에 가기 위해 집을 나서던 엄마가 연이를 보며 웃는다.
"그렇게 좋아?"
"웅, 나 병아리 같아 엄마"
연이는 엄마가 다락을 내려간 뒤에도 학교에 갈 때 까지 몸을 빙글빙글 돌려가며 거울 앞에서 떠날 줄을 모른다.
빗줄기가 조금 가늘어지긴 했지만 오늘도 운동화가 무겁게 젖을 만큼 비가 많이 내린다.
연이는 우산 밖을 너풀너풀 춤을 추듯 뛰어 다니며 한 껏 신이 났지만 난 학교로 향하는 내내 장화를 신은 아이들의 발을 부러운 시선으로 바라 볼 뿐이다.
사흘내내 젖어 있는 내 발은 실내화도 없이 교실을 들락거리는 통에 청소 분단 아이들에게 곱지 않은 시선을 받기 일쑤다. 그나마 우리 반에서는 내게 덤빌 만한 녀석이 없다는게 위안거리다.
은경이는 오늘도 가벼운 눈 인사 조차 없다.
녀석은 내게도 그렇지만 사흘내내 반 아이들과도 어울리지 않고 있다.
하루 종일 녀석의 재잘거림을 듣는 것 보다 배불둑이 담임 선생님의 질문에만 짧고 낮은 목소리를 내고 있는 지금의 녀석이 날 더 곤혹스럽게 하고 있다.
2교시가 끝날 무렵 답답한 마음에 용기를 내어 말을 걸어 본다.
"야, 다음 시간 뭐냐?"
한참을 망설이다 꺼낸 내 물음에 은경이는 기대와 달리 얼굴도 돌리지 않은 체 자신의 책받침에 그려 넣은 시간표를 내 앞에 놓아줄 뿐이다.
어서 빨리 방학이 오기를 기다려 왔지만, 막상 다음 주로 다가온 방학은 왠지 모를 조바심을 갖게 한다.
수업을 마친 후에도 은경이는 선생님에게 인사를 마치자 마자 조용히 가방을 메고 다른 아이들 보다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 교실을 빠져 나간다.
축 쳐진 어깨로 교실을 나서는 녀석을 불러 세우고 싶지만 마음 뿐이다.
영준이와 종규, 그리고 수학이 녀석 까지 벌써 복도 끝 한 자리를 차지하고 나를 기다리고 있다.
녀석들을 보니 아직도 비를 뿌리고 있는 하늘이 원망스럽기만 하다.
복도를 지나는 아이들을 툭툭 건드리며 장난을 치던 영준이가 나를 보자 아이들의 얼굴을 찡그리게 만들던 그 주먹을 내게로 휘휘 저어보이며 장난을 걸어 온다.
"야 조현, 오늘 수학이네 집에 가서 놀자"
평소 같으면 컴퓨터 게임기와 종이 게임 판등 갖가지 놀이가 많은 수학이네 집에 가자는 말이 솔깃하련만 오늘은 왠지 시큰둥하다.
"내 동생 집에 데려다 줘야 되는데 지금 어떻게 가냐?"
"같이 데려가면 되잖아. 오늘 수학이네 아빠랑 엄마랑 시골 가서 아무도 없다잖아"
영준이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수학이가 나를 보며 고개를 끄덕이고 종규 녀석도 영준이가 하던 것 처럼 내게 주먹을 쥐고 권투를 하듯 허공에 날리며 날 부추긴다.
"그래, 같이 가자 현아. 수학이 새끼네 집에 가면 놀거리 많잖아"
내가 조금만 험악한 표정을 지어도 겁을 집어 먹으면서도 종규는 늘 이렇게 깐죽거리기를 잘 한다.
썩 내키지는 않지만 연이를 데리고 갈 수 있다니 축축히 젖은 다리로 비 내리는 거리를 어물쩡거리기 보다는 수학이네 집에 가서 노는게 나쁘지는 않겠다.
"알았어. 나가서 연이 데리고 가자"
내 말이 끝나자 녀석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한달음에 계단을 내려가 운동장으로 달려 나간다.
운동장으로 나와보니 연이가 또 보이질 않는다.
아직도 적지 않은 비가 내리고 있는데 연이가 또 혼자서 집으로 간 모양이다.
하긴, 오늘은 연이가 비 옷을 입은 탓에 그다지 걱정스럽지는 않지만 이상하게도 기분이 좋지는 않다.
처음엔 연이를 늘 데리고 다녀야 하는 일이 귀찮기만 햇지만 지금은 꽤나 익숙해져버린 탓일 게다.
영준이가 내 어깨에 손을 얹으며 운동장을 둘러본다.
"현아, 연이 없는데?"
"그 계집애, 먼저 집에 갔나봐"
내 말에 영준이는 조금 놀란 얼굴로 이번엔 꼼꼼하게 학교 운동장을 살핀다.
"네 동생, 혼자 집 찾아 갈 줄 아냐?"
"응, 저 혼자 잘 찾아 가"
"그래? 에이, 연이도 데려 가고 싶었는데"
"왜?"
"네 동생 귀엽잖아 임마"
"뭐가 귀엽냐? 맨날 데리고 다니려면 얼마나 귀찮은데"
내 말에 영준이는 내 어깨에 얹은 팔에 잔뜩 힘을 주어 내 목을 감싸 안고 끌어 당긴다.
"야, 그럼 앞으로 내가 데리고 다닐까?"
"뭐?"
엄마가 정말로 영준이에게 연이를 시집 보내 준다고 한 것일까? 녀석은 요즘들어 유난히 연이를 챙기려 한다.
생글거리는 영준이를 보며 느껴지는 알 수 없는 이 기분은 뭘까?
꽤 오랫동안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수학이네 집에 있었다.
가게를 하는 집 답게 먹을거리도 많고 부루마블이나 인생게임 같은 종이 판 놀이도 나와 아이들을 오후 내내 수학이 방에서 쉽게 일어나지 못 하게 만들었다.
종이 판 놀이에 푹 빠져 연이가 또 혼자서 반찬도 없는 밥을 차려 먹게 될 것 조차 생각하질 않았다.
그렇게 정신 없이 놀다보니 종일 좋지 않았던 기분도 어느 정도 날아가버린 듯 하다.
늦은 저녁, 수학이네 집을 나와서야 연이를 걱정 한다.
'칫, 또 저 혼자 알아서 잘 차려 먹겠지 뭘'
아빠가 집을 나간 후로 연이를 더 잘 챙겨줘야겠다고 마음 먹었었는데, 오늘따라 왜 이렇게 연이에게 심술이 나는 걸까? |
첫댓글 오호~ 영준인가? 연이를 좋아하는 건가요+ㅁ+? 그런데 연이는 정말 집에 간걸까요..=ㅁ=? 걱정됍니다.. 으흑..ㅠㅅㅠ! 이번편 재미있었어요+ㅁ+!! 다음편도 기다리겠습니다아~>ㅁ<!
혹...연이가 길을 잊어 버렷다거나 집에 안 들어 와 잇다거나 이런거면 우짠데요 ㅠ.ㅠ;;;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