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
개똥을 치운 뒤
손바닥만한 텃밭을 둘러보려고
뒷짐을 지고
산수유 옆을 지나가다
얼굴에 붉은 거미줄을
신경질적으로 떼어냈습니다
어제도 뜽뚱한 산비둘기 부부가
몰래 다녀갔는지
긴 가뭄에 애지중지 살려 놓은 콩 싹은
이제 절반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우선 눈에 띄는 참나무 꼭대기의 까치집만
서운한 눈으로 잠깐 올려다보다
길을 잘못 든 호박 덩굴을
한쪽으로 유인했습니다
그리고는 허리를 굽혀
얼갈이 배추 잎사귀에 붙은
애벌레 몇 마리를
손으로 막 눌러 죽일 그 순간에
느닷없이,
힘차게,
아침 방귀가 터져 나왔습니다
슬그머니 허리를 펴는데
서둘러 논둑길로 질러가는
시골 여학생 같은 보랏빛 나팔꽃이
잎 뒤의 얼굴을 가리고는 키득거립니다.
카페 게시글
문학
나의 아침 방귀에 당신의 신중한 하루가/ 이창기
시너먼
추천 0
조회 24
23.01.30 23:35
댓글 1
다음검색
첫댓글 이른 아침 일어나
개똥을 치고
텃밭을 둘러보는
근면한 농부
밭에 나가 살피니
콩의 새싹을
산비틀기가 쪼아
엉망이 됐네.
길 잃은 호박 덩굴
인도해주고
허리굽혀 배추를
살펴보는데
애벌레 몇 마리가
있지 않는가.
손끝으로 눌러서
죽이는 순간
느닷없이 힘차게
방귀가 터져
보랏빛 나팔꽃이
배꼽을 쥐네.
키득거린 나팔꽃
당신이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