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세련되지 못한 남침유도설이네요.

오랜만에 역사란에 왔더니 이런 글이 올라왔군요. 읽어보고 있다보니 좀 그렇고그런 내용인 것 같아 반론을 써볼까 합니다. 찬찬히 읽어보면 위 글에서 주장하는 남침유도설의 근거는 몇가지로 압축될 수 있겠네요.   1. 애치슨 라인의 설정을 통해 의도적으로 한국을 제외시켜 전쟁을 유도했다. 2. 미국의 첩보기관은 남침의 정보를 알고도 고의적으로 무시했다. 3. 대만의 본토 공격을 무력개입(7함대)을 통해 차단했으며 중공에 대한 적극적인 공격을 하지 않아 전쟁을 확산시켰다. 4. UN 의 요직에 소련인을 앉혀 정보를 유출시켰다. 5. 홍콩을 통해 중공에 군수물자를 팔아먹었다.   그러면 이 근거들이 얼마나 설득력이 있는 것인지 항목별로 한번 간단히 짚어보겠습니다.     1. 애치슨 라인의 발표는 50년 1월입니다. 하지만 이젠 익히 알려진대로 북한의 전쟁 준비는 그보다 훨씬 이전부터 계속되어왔죠. 그리고 미국은 2차세계대전 종결 이후 중국내전 과정에서도 미국은 직접적인 개입은 포기한 전례가 있고, 이후로도 공산권을 자극하는 움직임은 피하려는 경향을 보였습니다. 애치슨 라인에서 한반도와 대만이 제외된 것도 그 때문이죠. 이미 교전이 빈발하고 있는 지역을 방위선에 집어넣겠다고 미국의 국방장관이 발표해버리면 그 파장이 어떻게 될까요.   2. 단순히 보고건수와 같은 무의미한 숫자를 나열했을 뿐인데, 그게 어떻게 '미국이 북한의 남침계획을 몰랐으리라고는 절대로 판단할 수 없습니다' 라는 단정의 근거가 됩니까? 고해상도 위성과 같은 다양한 첨단장비가 등장한 지금에도 미국의 첩보기관이 미치지 못하는 영역은 많습니다.   3. 당시 세계정세에 대해 전혀 이해가 없기에 뱉어놓을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중국이 완전히 공산당에 의해 장악되고 소련은 핵무기를 발표했다고 말하는 상황에서 대놓고 확전을 주장할 멍청이가 어디 있습니까. 중공만 해도 대놓고 미국에 선전포고하지는 못했고, 한반도로 파병한 군대는 자원자들이 원해서 간 것이라고 둘러대는 상황이었죠. 전면전은 누구도 원하지 않았으니까요. 미국이 압록강과 두만강 이북에의 공격을 허용하지 않았던 것도 다 같은 이윱니다. 수풍댐도, 강의 다리도 반절은 중국의 소유였기에 맘대로 폭격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대만에 7함대를 보낸 것은 일단은 대만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었죠. 바로 49년에만 해도 중국 남동부 해안 일대의 군도들에서 계속해서 일련의 전투가 있었고, 금문도에서는 대만군과 중공군 간에 2만명에 이르는 사상자가 발생한 바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미국은 중국의 내전에는 불간섭한다는 원칙을 견지해 어떠한 행동도 취하지 않았었죠. 하지만 한국전 발발과 동시에 대만에 7함대를 보내면서 그 원칙도 깨지게 됩니다. 이 행동이 대만의 본토진공을 막기 위한 미국의 술수였다라.. 국민이라고 해봐야 수백만, 군인이 50만도 안되는 소집단으로 전락한 대만으로부터 중공을 보호하기 위해 7함대를 보냈다고요? 위와 같은 주장의 근거가 되는 발언을 한 사람이 맥아더라는데에도 주목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맥아더는 중국이나 소련과의 전면전도 불사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던 자입니다. 단순히 전쟁에서 이기겠다는 생각을 갖고 전략을 짠다면야 맞는 이야기죠. 만주의 중요목표물에 폭격(원자폭탄을 사용하자고 건의했단 이야기도 있지만, 정확한 근거는 없습니다.)하고, 국민당군을 끌어들이며, 전면적인 병력증원으로 한번에 중국도 밀어버리자는건데.. 이건 세계3차대전이죠 -_- 이런 정신나간 생각에 비하면 차라리 군수복합체의 음모 쪽이 좀 더 소박하고 인간답지 않습니까?   4. 지금도 그렇지만, 예전에도 형식상의 기구에 불과했던 UN 의 국장 자리에 소련인이 앉아있다고해서 기밀이 유출되었을거라고 생각하는건 너무 순진하지 않습니까? 글쓴이도 이건 좀 상식적으로 말이 안된다고 생각했는지 말을 흐리네요.   5. 50년도에 홍콩과 무역량이 늘어난 것은 사실입니다. 중국 본토와의 교역도 폭발적으로 늘어났지요. 당연한 일입니다. 2차세계대전 종결 후에도 4년을 끌어온 중국의 내전이 끝나고 복구에 들어갔으니 그럴 수 밖에요. 한국전쟁 후에도 중공에 대한 직접적인 제재는 취해지지 않았습니다. 교전국도 아닌데 할 수도 없고 말이죠. 하지만 본문에선 그 이후의 추이에 대해선 어떠한 언급도 하지 않고 있군요. 12월, 중공의 참전이 확실시된 이후에는 UN 의 전면적인 엠바고가 떨어져 군수산업과 관련이 있을만한 모든 물품의 반입과 교역이 금지되었고, 홍콩과 본토간의 교역도 대폭 감소하였습니다. 이게 홍콩 내의 산업이 발전하게된 계기도 되었죠. 금수조치는 54년까지 계속됩니다. 소련에 지원한 렌드리스 물품들이 중공으로도 넘어갔다곤 하지만 2차세계대전에서 같은 편이었던 소련에 군수물자를 보낸 것은 당시로선 당연한 일이었고, 추축국의 패망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그게 이후 중공에 넘어갔다는건 아이러니컬한 상황이긴 하지요. 하지만 계속해서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게 국제정세입니다. 더군다나 이걸 미국이 중국에 무기를 팔았다는 식의 바로 위의 주장(사실과는 다른)과 결부시켜 잉여군수물자를 처분하려 했다는 음모론을 만들어내는건 -_-     지금까지 봤다시피 미국이 전쟁을 꾸몄다는 주장의 근거라는 것들이 상당한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게 아니더라도 윗글의 구성에 대해서도 할 말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남로당의 공작으로 시작하다가 미국의 음모로 끝이 나는데요.. 결론에선 남로당 이야기는 싹 빠지고 미국만 남는군요. 왜 이런 결론이 나왔는지 알 수 없는 노릇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