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 구 -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이 마침이 되시니라."
(롬10:4)
예수님은 종교의 중요한 요소들이라 할 수 있는 율법과 사제와 성전 문제로 인해 당시 종교지도자들과 많은 마찰을 빚으셨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가르침은 당시 종교지도자들의 가르침과 일치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특히 율법 문제로 인해 그들과 사이에서 많은 마찰을 빚으셨는데, 그들의 잘못된 가르침들에 대하여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말하노니"(마5:22, 28, 34, 39, 44)라는 반론을 전개하심으로써 많은 부분 그들의 가르침을 교정하셨습니다.
심지어 십계명에서도 준수를 명하고 있는 안식일인데도 불구하고 병을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고, 밀이삭을 잘라 먹는 제자들의 행위를 두둔하기도 하셨습니다.
안식일 날 48년 된 병자를 고쳐 주신 뒤 왜 안식일을 지키지 않느냐는 항의를 받았을 때엔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요5:17)고 말씀하심으로써 그들을 격분시키기도 하셨습니다.
이렇듯 예수님께서 율법에 대하여 파격적인 행동을 하신 이유는 예수님께서 선포하시는 하나님의 나라는 구약 이스라엘 나라의 연장이 아니고, 또 구약 율법에 의해 통치를 받는 나라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실 율법이라는 것은 인간들을 정죄하여, 심판을 정당화 시켜주고 사망에 이르게만 해줄 뿐, 인간을 구원해 주거나 의롭게 만들어 주지는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율법은 인류를 구원하러 오신 예수님이 떠받들고 추종해야할 대상이 아니라 오히려 손을 봐야만 하는 개혁의 대상일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사역에서 율법과의 충돌은 당연한 일이기도 했던 것입니다.
만일 예수님께서 착실하게 율법을 순종하셨고, 또 율법의 권위를 높여주고, 영광스럽게 해 주셨다면 예수님은 율법에 속박된 인류를 구원하시기는 커녕 더더욱 율법과 인간의 관계를 고착시키고 율법의 구속력만 강화시켜 주었을 뿐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전혀 구세주로 오신 분이라고는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오히려 더 엄격한 계율선생으로 오셨을 뿐인 것입니다.
사망은 죄에서 왔고, 죄는 율법으로 말미암아 있게 되는 것인데(고전15:56), 어떻게 율법을 그대로 둔채 사망에서 구출해 내실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셔서 우리의 죄값을 지불하셨을 뿐만 아니라 다시는 정죄당하지 않도록 율법의 역할도 끝내 버리신 것입니다.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
여기에서의 "마침"이란 헬라어로는 [텔로스]로써 "완성" 이나 "끝(end)"이라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서 율법의 완료됨과 종료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다시말해 율법의 할일이 다 완성되어서 끝이 났다는 말입니다.
율법의 목표는 죄인을 죽이는 것인데, 예수님이 죽으셨으므로 그 목표가 완성되었으니 더 이상 율법은 할 일이 없어졌다는 말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율법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더이상 정죄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들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롬8:1)
정죄의 직분인 율법이 사라졌으니 누가 정죄할 수 있겠습니까?
이것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의 특별한 신분입니다.
귀하신 친구 내게 계시니 나 주안에 늘 기쁘다.
그 피가 내 죄 씻으셨으니 나 주안에 늘 기쁘다.
나 주안에 늘 기쁘다 나 주안에 늘 기쁘다.
주 나와 늘 동행 하시니 나 주안에 늘 기쁘다.
-찬송가 434장-
첫댓글 토라교 사람들은 저 율법을 어떻게 생각할까요?